입학할 학교는 서울에있는「용산신학교」로 결정됐다. 나는 후에 임충신 신부와 김피득 신부를 이곳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불과 개학을 보름 앞두고 전격적으로 입학하는 특별한 경우였기 때문에 어머니는 밤잠을 못주무시면서까지 그 준비에 몰두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때가 내 나이 15세. 무엇때문이건「대처」에 가는 것은 난생 처음 겪는 일이었기 때문에 알 수 없는 흥분과 기대감이 마음을 설레게했다.
이렇게 안팎으로 준비를 마치고 마침내 떠날 날이 다가왔는데 본당 김성학 신부님께서는 바로 서울로 가지말고 황해도 안악군 매화동 큰 교우촌에 들렀다가라고 명하셨다. 매화동까지는 아버지 대신 공소유지 어른이 나를 데리고 가셨다. 김신부님은 당신 어머니 환갑잔치에 온 서울 중림동본당의 한 여교우에게 나를 부탁, 서울까지 동행시키려고 나를 매화동으로 보내신 것이었다. 그 교우는 당시 서울의 상황을 이것저것 알려주면서 나를 용산까지 데려가 주겠다고 했다.
그곳에서 사리원까지는 말을 타고 갔다. 그날 저녁은 여관에서 묵었는데 난생 처음 기차를 탄다는 설레임에 쉽사리 잠을 이룰수 없었다. 당시 기차는 말로만 듣던 신기한 풍물이었기에 나 역시 책을 톨해서만 막연히 기차를 알고 있는 정도였다. 이리저리 뒤척이고 있는데「삑」하고 기차 소리가 났다. 당시에는 경원선이 밤에만 다녔던 것이다. 나는 그 교우에서 말을 안하고 돌아올 때를 대비해 집주변지리를 익힌후 혼자서 몰래 여관을 빠져나와 철로변에 나가 보았다. 저 멀리서「시커먼 것」이 씩씩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새삼 그 모습에 감탄을 하며 여관으로 돌아와보니 여교우는 내가 없어졌다며 찾느라고 정신이 없었고 한바탕 난리가 벌어져 있었다.
우리는 그날 저녁 9시경에 서울행 기차를 탔다.
기차는 밤새 달리고 달겨 꼬박밤을 세운 후에야 서울 용산역에 닿았다. 처음해보는 기차여행에 워낙 기진맥진해 있었던터라 여교우는 역 앞에서 인력거를 불렀다. 인력거군은 한국말이라곤 낫놓고 ㄱ자도 모르는 일본 사람이었다.
우리는 그에게 용산신학교에 데려다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인 인력거군은 우리말을 알아들었는지 못알아들었는지 신학교 근처에 있는「일본요리집」으로 인력거를 끌고 가서는 돈을 내라고 협박조로 말했다. 그 요리집은 기생들처럼 보이는 여자들이 들락날락하고 있었는데 고향에서는 보지못했던 전기불이 집안 여기저기서 번쩍 거리고 있었다.
내게는 그때 돈이 있었으면서도 인력거군에게 미리 돈을 주면 신학교에 태워다주지 않을것 같아서『돈이 없다. 신학교에 가야한다』고 강력히 말했다.
그 사람은『신학교에 가야 돈이 있다』는 말에 기가 죽었는지 마침내는 등(燈)을 들고나와서 신학교를 찾기시작했다. 나는 본당 신부님이 말씀하신대로 함벽정(涵碧亭)이라는 글씨만 찾고 있었다. 얼마를 찾는가했더니 인력거군은『못찾겠다. 할 수 없다』라고 투덜거리며 요리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래서 막 그 사람뒤를 따라가는데 갑자기 신학교 담이 보이고 함벽정이라고 쓴 글씨가 눈에 띄었다. 신학교를 찾았으므로 25원을 인력거군에게 주었다. 당시에는 똑같은 10원이라도 시골이냐 서울이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랐다.
신학교문을 두드리니 문지기 영감님이 뛰어나왔다. 문지기 영감님은『아직 학교문을 열시간이 안됐으니 일단 내방으로 들어오라』고해 그방으로 들어갔다. 조금 드러누워 있다가 문을 열기를 기다려 학교로 들어갔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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