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인간적인 차원에서 볼 때 너무나도 모순된 점이 많다. 오늘의 복음의 말씀도 역시 그런 예의 하나이다. 요즈음처럼 노사분규가 극심한 시대에 이른 아침에 고용되어 일한 사람이나 오전 9시, 12시, 오후3시, 그리고 일이 끝나기 1시간 전인 오후 5시에 고용되어 일한 사람에게 똑같은 임금을 지불한다면, 그야말로 대소동이 벌어질 것이다. 사실 이것은 심히 모순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그래 이른 새벽부터 죽도록 일한 사람이나, 해질 무렵에 겨우 1시간 일한 사람을 똑같이 취급한다는 것은 심히 공정성을 잃은 처사라 아니할 수 없다. 아무리 고용주의 선심이라 할지라도, 새벽부터 일한 사람의 약을 올리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얼마나 열 불나는 일이겠는가? 그래 12시간 노동한 사람과 1시간 노동한 사람의 품삯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그것도 첫번부터 새벽에 온 사람에게 약속된 품삯을 주고, 나중에 몰래 선심을 썼으면 모르겠는데『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사람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사람들에게까지 차례로 품삯을 치루었다.』그래서『맨 처음부터 일한 사람들은 품삯을 더 많이 받으려니 했다.』그러나 주인은 약속한 대로, 맨처음부터 일한 사람에게도 1데나리온 밖엔 주지 않았다. 약속이 그러하니까 할 말이 없겠지만, 그래도 몹시 심사가 사나와 주인에게 투덜거리며 따졌다. 『막판에 와서 1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저 사람들을 온종일 뙤약볕 밑에서 수고한 우리들과 똑같이 대우하십니까?』그러나 주인의 대답은 냉혹했다. 『내가 당신에게 잘못한 것이 무엇이요? 당신은 나와 품삯을 1데나리온으로 정하지 않았소? 당신의 품삯이나 가지고 가시오. 나는 이 마지막 사람에게도 당신에게 준 만큼의 삯을 주기로 한 것이오. 내 것을 내 마음대로 처리하는 것이 잘못이란 말이요? 내 후한 처사가 비위에 거슬린단 말이요?』
일반적으로 생각한다면 지당한 말씀이지만. 요즈음처럼 노사분규가 심한 세상의 인심으로 봐서는 아주 잘못된 처사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우주적인 차원에서 하느님의 심성, 즉 아버지의 마음으로 본다면 너무나도 지당하고, 눈물나는 공정성, 무한한 사랑의 흐름일 뿐이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못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마태오 5,45).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차원에서 우리의 신앙을 생각하는 습성이 너무나도 희박하다. 기껏해야 고용주와 고용인으로서의 믿음이나, 아니면 주인과 노예로서의 믿음을 가지고 있다.
사실 노예로서의 믿음이나 고용인으로서 믿음을 본다면 오늘의 복음은 모순된 것이며, 감동은 커녕, 여기에 나오는 맨 처음부터 일한 사람들처럼『그들은 돈을 받아들고 주인에게 투덜거리며 따질』것이다.
그러나 아들로서의 믿음의 차원에서 본다면, 이는 너무나도 가슴 벅차고 왈칵 눈물이 솟아날 사랑의 말씀이다.
즉, 새벽부터 (유년기부터) 아버지와 더불어 포도밭을 가꾸는 행복한 삶을 산 아들과 인생의 유년기는 물론이요, 청년기, 장년기를 고아와 같은 신세로 떠돌아다니며 지내다가, 이제는 아예 의지할 곳도 없고, 혼자 버틸 힘도 없게 된 노년기에 이르러서야 겨우 아버지를 만난 사람을 비교해 보라. 아버지의 그 지극한 사랑은 그 고생 많았던 아들에게 먼저 베풀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돌아온 탕자를 얼싸안으신 아버지의 그 벅찬 기쁨과 아버지의 품에 안긴 아들의 가슴 터질 감격을 우리는 너무나도 모른다. 오늘의 복음도 그런 맥락에서 대해야 한다.
『오, 하느님 아버지, 우리가 우리의 고집으로 아버지를 외면하고, 이 뜬 구름같은 세상을 방황했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우리를 찾으사, 집 떠나지 않고 아버지께 효성했던 아들과 똑같이 대해 주시나이까! 아버지! 입이 만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감사한다는 말은 너무나도 아버지의 그 크신 사랑에 보답하기엔 초라한 말입니다. 이 벅찬 가슴을 아버지께 드립니다.』
행여, 맨 처음부터 일했던 사람같은 불평일랑 이제는 그만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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