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아버지의 파견과 보증을 받고 사람들을 영원히 먹여 살릴 음식을 찾으라고 말씀하실 때 청중은 아직도 그 뜻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영원한 생명은 요한복음서의 특징적 표현으로서 공관복음서(마태오, 마르꼬, 루가)의 하느님나라에 해당하는 말귀이다.
요한복음서는 이미 물과 영으로 다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단언한 바 있다(3장3~5), 그리고 다니엘 예언서는 일찍이 생명의 책에 기록된 사람들은 티끌로 돌아갔던 대중이 잠에서 깨어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바로 엊그제 대책없는 광야에서 기적의 빵을 배불리 먹고도 군중은 아직 그 뜻을 깨닫지 못하고 아직도 세속적인 욕심에만 잠겨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예수께 물었다.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전에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때(4장1이하) 제자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는 것이 나의 양식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하느님의 일은 예수께서 주시는 양식을 받는 것이며 사람의 아들이 주시는 양식을 받는 것은 그 분이 하느님이 보내신 메시아임을 믿고 그 분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다.
그분을 믿는 것은 그분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그 분이 하신 일을 사실 그대로 인정하는 순진한 마음이 요구된다. 영원한 생명은 오직 그 분을 믿는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하느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그분께 대한 단순한 믿음이 아니고 그 분을 믿는 적극적인 행위를 뜻한다. 요한복음서는 이 믿음을 믿기만 하면 되는 알맹이 없는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믿음이라는 명사를 사용하지 않고 행동을 표시하는 「…을 믿는다.」라는 동사를 사용한다.
여기서 「하느님의 일을 한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을 연결시킨 것은 하느님의 일은 사람이 자기 계획에 따라 하는 일과는 다르다는 뜻이다. 하느님의 일은 역시 하느님의 뜻을 따라 움직이는 믿음의 행위이다. 사도 성 바오로가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는 것은 율법을 지키는 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얻어진다(로마 3.28)고 했던 것도 하느님의 일과 인간의 일을 구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영성적 행위가 긴요하다는 것을 가르치려는 것이었다.
신앙이라는 것은 일이 아니고 믿음으로써 살아가는 삶이다. 그 삶은 예수는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진리와 생명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사신이며 하느님이 보내신 사람의 아들이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믿음이다.
이러한 믿음을 요구하는 예수께 불신의 군중은 또 한번 도전한다. 자기들이 믿을 수 있도록 표징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그 많은 기적들을 제 눈으로 직접 보고도 아직 못 믿겠단다. 그들이 요구하는 표징은 「하늘에서 빵을 내려 그들(조상들)을 먹이셨다」라는 성경말씀을 믿기 위하여 조상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은 과거 사실과 같은 표징이었다.
「하늘에서 빵을 내려…」운운한 것은 느헤미야서 9장15절의 『하늘에서 양식을 내려 그들에게 주셨다』라는 대목과 시편78장24절의 『그들이 먹을 만나를 비처럼 내리시고…』라는 말귀를 가리키는 듯하다.
그들의 선조들이 귀양살이에서 해방되어 가나안복지를 향하여 광야에서 헤멜때에 모세의 주선으로 만나를 하늘에서 받아먹은 사실은 출애굽기 16장4절 이하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고 유대아 후손들은 이 사실을 모세를 민족의 해방자로 믿는 징표로 삼고 있었다. 그들은 이 만나를 「하늘의 빵」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예수께서 광야에서 주신 빵의 증식은 보잘 것 없는 보리빵이며 지상의 빵이 아니었는가. 그러니 「하늘의 빵」을 주신 모세처럼, 아니 그보다도 더한 무슨 표징을 보여달라는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이미 이러한 표징들을 여러 번 반복하여 보여주었다. 그들의 요구대로 굉장한 기적으로 표징을 그들에게 보여주었더라도 그들은 역시 믿지 않았을 것이다.
구약성서에서 하느님이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보여주었던 그 많은 표징들도 그들의 마음을 돌리는데 별 효과를 얻지 못하였다. 그 표징들은 하느님의 영성적인 결과를 깨닫게 하고 그들을 하느님의 영성적 백성으로 형성하는데 있었고 그 표징들을 본 백성들은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가호만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예수께서 베짜타 연못가에서 38년이나 앓고 있던 앉은 뱅이를 고쳐주신 것은 불치병을 낫게하고 사람들을 놀라게 하려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요한 5장). 오로지 하느님이 보내신 천상적 능력자이며 하느님의 고통을 덜어주려고 오신 구세주이심을 알리고 믿게끔 하려는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도전자들의 마음을 돌리시려고 모세의 만나 기적의 본 뜻을 해설하셨다. 하늘에서 빵을 내려 주신 분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시지 모세가 아니었다는 것을 명확히 하셨다. 만나가 「하늘의 빵」이었다면 그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주셨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광야에서 예수의 기적의 빵을 배불리 먹었을 때도 그 빵을 주신 분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보내신 사람의 아들임을 믿지 않으면 그 빵은 다시 배고프게 될 세속의 빵일 따름이다.
『내가 바로 하늘의 빵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그들은 격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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