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성체성사에 대해서 계속해서 가르치고 있다.
주교단에서는 88년을 「성체안에 하나되어」의 해로 정하고 있으며 89년에는 국제 성체대회가 있다. 성체성사가 일반교회생활에서 멀리있는 것 같기 때문에 교회는 이를 강조하고 가르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이 성체성사를 세우셨다. 예수님은 최후만찬 때 헤어지기 섭섭해서 징표를 만드신 것 같지만 사실은 이를 위해 오랫동안 제자들에게 뜸을 들이셨다. 요한복음 6장에서 보리떡과 물고기로 기적을 행하는 사건 이후 구름같이 모이는 사람들에게 지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내 기적의 뜻을 알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썩은 양식을 찾지말고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얻도록 힘써라. 이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주려고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자기가 생명의 빵이니 그를 먹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가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라고 했다. 자기가 생명의 빵이나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될 것이다. 그러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우리가 그 부모를 아는데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라니….
사람들은 의아했다. 어찌 자기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고 하는가. 그들은 예수님의 말을 말 그대로 알아들었다. 그리고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너희도 못 믿겠거든 떠나가라. 베드로 사도는 아주 재미있는 성격을 가진 분이며 순직한 분이다.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물위를 걷기도 했던 분이다.
그는 즉흥적으로 나서서 「당신께서 영원한 생명을 지닌 분이신데 우리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계속 그 뜻을 알아들으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듯은 무엇인가? 라고, 그 후 최후의 만찬에 예수님이 빵과 술을 들어 내 살을 먹고 내피를 마시라고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은 쉽게 알아들었을 것이다. 성체성사 안에 담긴 참뜻을 마태복음에서 보자.
미사전문 : 예수께서 빵을 들어 축복하시고…
잔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올리시고 그들에게 돌리시며 너희는 이 잔을 받아마셔라, 이는 죄를 용서해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다.
이 말 안에 담긴 깊은 뜻을 보아야한다. 성체신심을 논하기에 앞서 성체성사 안에 예수님께서 참으로 살아계심을 믿는 것으로 출발해야 한다. 성체 안에 예수님이 참으로 살아계심을 믿는가? 의심해 본 적은 없는가?
본인은 사제되기 전에 많이 생각했다. 그러나 믿을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 믿을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 만일 한번도 의심을 안했다면 그는 큰 믿음의 은사를 가진 사람이거나, 예수님이 계시면 어떻고 안계시면 어떤가. 성체 안에 예수님이 계셔도 괜찮고 안계셔도 괜찮습니다.
그냥 성체안에 예수님이 계신다고 치고살지요! 라는 식의 생각을 가진 신자들로서 의의로 많은 율(아마90%)을 차지하고 있다 주일날 미사참례 잘하는 것이 곧 신앙이 있다고 말할수는 없다. 하느님 현존에 대한 믿음이 없이도 목회는 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가?
이런 사람들을 실천적 무신론자라고 한다(어떤 통계로 보면 참으로 하느님이 계신다고 믿는가? 라는 질문에 목사님들 중 21%만이 예라고 대답)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외적으로 신앙을 가진이들 중에 실제 생활안에서 하느님이 없는 걸 마음에 전제로하고 사는 이들이 많다. 이런 실천적 무신론자들이 교회 안에 무척 많은 것 같다. 우리 자신에게 솔직히 질문해보라. 나는 정말 예수님 살아계심을 확신하는가? 의심을 안해 본 이들 중 많은 이들 가운데는 하느님이 계셔도 괜찮고 안계셔도 괜찮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도 않은 것이다. 사람들이 내게 「신부님은 성체안에 예수님의 현전하고 있다고 믿는가?」 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즉 성체를 축성하는 그 행위를 통해서 볼 때 성찬에 현존하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모순이 되지않는다. 인간의 말은 각각 무게가 다르다. 어떤 말 중에는 빈말도 있고 헛소리도 있다. 그런가하면 어떤 말은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어 그말이 사건을 이루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대통령의 어떤 말이 어떤 힘을 발휘하는 위력이 있다든지, 또는 재판정에서 판사의 언도는 그대로 형집행의 힘을 갖는다. 이런 경우 그말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개인의 인격이나 덕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의 직분에서 나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세울 뜻도 없고, 또 세우신 일도 없는데 교회가 이를 가르치면서 사제가 축성하여 이를 예수님의 몸이라고 한다면 이는 예수님의 이름을 팔아 사기치는 것이다. 이것은 여담이지만 개신교 신자들이 성서를 어떻게 읽은 것인지 궁금하다. 즉 예수님이 분명히 우리에게 오시기 원하셨고 성체성사를 세우기 원하셨다.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때 성체성사를 세우셨고 이 예를 행하라고 하셨다. 전능을 가진 예수님께서 보증하고 계시는 말씀. 「이는 내 몸이고, 내 피니라」라고 선언하는 사제의 축성은 사제의 사적인 선언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진 말씀과 행위에 따른 것이다. 사도들은 초세기부터 예수님 말씀을 그대로 알아듣고 믿고 그대로 따랐다. 사복음서보다 훨씬 먼저 씌어진 고린도전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너희들이 성찬의 음식을 먹으려고 할 때 너희 자신들을 되돌아보라. 다른 음식 먹을때와 같이 무분별하게 먹지말고 정말 자기가 그 음식을 먹을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살펴보고 성찬예식에 참석하라. 사도들은 초대교회로부터 성찬식을 계속해왔고 주님께서 원의와 약속으로 보증해 주셨다. 그래서 교회로 부터 합법적으로 인정받은 (서품된)사제가 교회가 정한 미사성제의 절차에 다라서 「이는 내 몸이라. 이는 내 피니라」 하고 성체를 축성하면 그 한마디의 말은 위력을 지니며 밀떡과 포도주는 예수님의 몸과 피가 되며 예수님은 성체안에 현존하게 된다. 그것을 믿어야 한다.
이것이 근거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를 보증하시고, 원하시는 것이고 교회에서 이를 위탁했기 때문에 성체축성하는 거기에 예수님의 뜻이 작용하는 것이다.
전능하신 예수님께서 보증한 말씀이기 때문에 위력이 있다. 그리고 사제의 말은 개인의 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직분에서 나오는 것이다. 성사를 집행하는 사람에 다라서 성사의 은혜가 크고 작은 것이 아니라 성사의 은혜는 성사를 받는 이의 믿음의 정도에 따라서 좌우될 수 있다. 인간 사회안에서도 말하는 이에 다라서 말의 위력이 다르다. 큰힘을 지닌이가 이를 보증할 때 그말은 엄청난 힘을 가지면서 세상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마산교구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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