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빵, 하늘에서 내려오는 빵, 생명의 빵 이 세가지 사상은 요한복음서의 특징이며 이 교리는 요한의 시대의 교우들에게 우리는 썩지 않는 빵, 영원한 생명을 주는 빵을 예수께서 주신 양식으로 받아먹고 있음을 일깨워주는 복음이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실 때 그 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세속적으로만 생각한 이교도여인은 그 물을 자기에게도 좀 달라고 하였다.
다시는 물가에 오지 않아도 되는 안일한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지금 예수님과 빵에 대한 토론을 하고 있던 사람 중 몇 사람도 같은 요구를 하였다.
그 빵을 저들에게도 좀 달라고, 그들은 예수가 하느님의 양식을 주겠다고 선언한 말씀을 받아들이기는 하였지만 예수 자신이 그 빵이라는 뜻을 깨닫지는 못하였다.
요한복음서는 복음서 초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혈육강생을 소개하면서 그분은 영원으로부터 계셨던 하느님의 말씀이며 그 말씀을 통하여 모든 것이 생명을 얻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다라고 하였다.
지금 요한복음사가는 사람들 가운데 함께 사시는 예수가 바로 세상에 생명을 주는 하늘의 빵이라는 점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내가 곧 생명의 빵이다」라고 하신 예수의 말씀은 예수께서 주시는 양식이 사람들이 매일매일 먹어도 배고픈 일용품의 빵이 아니고 양으로 따지지 않는 영적인 양식이다라는 뜻이다.
성 이냐시오는 죽지 않는 불멸의 약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이다」라는 표현은 요한신학의 특징으로 하느님이 자기 계시를 할 때 쓰는 표현이다.
출애굽기에서 하느님이 모세에게 당신을 소개하면서 「나는 네 선조들의 하느님이다」(3장6)라고 했고、 모세가 하느님의 이름을 물었을 때 「나는 나다」라고 대답하셨다.
요한의 복음서에서도 「나는 ~이다」라는 하느님 계시의 표현이 여러 번 예수님의 입을 통하여 나타나 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한8, 12), 「내가 나의 증인이다」(8, 18), 「나는 양의 문이다」(10, 7): 「나는 착한 목자이다」(11, 11):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11, 25):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4, 6): 「나는 포도나무요」(15, 1).
앞서 말한대로 「하늘의 빵」개념은 요한복음서에서 상당히 소중하다.
그 기원은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만나를 얻어먹은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율법이 그들 생활의 빵과 같았고 로고스(그리스어로 이치, 말씀이라는 뜻)는 그들 생활을 지도하는 양식으로 생각되었다.
신약성서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이 로고스이며 하느님은 그 말씀으로 인간을 먹이신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말씀이다.
이러한 뜻으로 「나는 생명의 빵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짓기 위하여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예수께 오는 사람과 예수를 믿는 사람은 결국 같으며 따라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빵을 얻는 조건은 예수를 믿는 결단일 뿐이다. 이 믿음을 통하여 예수께서 주시는 빵을 먹는 사람은 예수와 하나가 된다.
구약성서 집회서는 사상적으로 지혜를 인격화하여 「나를 먹는 사람은 더 먹고 싶어지고 나를 마시는 사람은 더 마시고 싶어진다.」라고 했는데(24장 21) 이 지혜는 오늘날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난 것이다.
이렇듯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인 계시와 사람의 양식과의 관계는 구약성서에 그 뿌리를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구약성서에서는 하느님의 말씀과 지혜가 동일하게 취급되면서 지혜는 생명의 양식이며 생명의 근원이라고 찬양된다. 잠언서는 지혜를 주님이 주시는 선물이며 인간의 마음속에 스며들어 빗나간 길로 인도하는 악의 길에서 사람을 구한다(2, 12, 15)고 하였다.
구약성서의 지혜는 율법준수에 있으며 율법을 따라 사는 사람은 죽지 않고 살 것이라고했다. 이제 그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났다. 율법이 약속한 생명은 장수, 부, 성공, 명예 등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한 생명은 세상 생명을 훨씬 넘는 영원한 하느님 나라의 생명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로 오는 사람은 그를 믿는 사람이며 그를 믿는 사람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점지하여 주신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아버지의 선물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하느님의 일을 하러 온 구세주인만큼 이들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아버지께서 내게 맡기신 사람은 내게 올 것이며 결코 물리침을 받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마지막 날에 모두 하느님의 생명으로 살게 될 것이다.』이것이 예수의 약속이다.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며 이것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다』예수께서는 바로 이 하느님의 뜻을 이루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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