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개인적 양심은 윤리의 주체이며 생활의 절대적이고 최종적 규범이지만 인간은 태어나서 성장、성숙의 과정을 통하여 윤리적 가치와 규범을 배우지 않으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없다. 즉 양심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인간은 본성(本性), 자연(自然), 자명(自明), 합리(合理) 등의 근거로 윤리적 행위를 요구하거나 행동을 평가한다.
인간이 배우거나 가르치는 윤리규범들은 모두 객관적 진리와 주관적 인식이 일치할 때 그 본 기능을 발휘하게 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개인의 주관적 생각이거나 상대의 자유를 빼앗고 억압하는 타율(他律)의 이질성을 면치 못한다. 전자의 경우는 상황윤리주의에 빠지게 하고 후자의 경우에는 율법주의에 빠지게 한다.
인간이 참되고 자유로운 윤리생활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바른 윤리규범을 발견해야 하며 그 규범을 성실히 지켜야 한다. 이때에 율법주의적 경직성이나 개인주의적 무질서가 극복되고 성숙한 인간 사회가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른 윤리법은 자연법에 기초하고 계시법으로 조정되며 인간의 법으로 실생활에 응용될 수 있는 것이다.
자연법(自然倫理)
『사람들이 하느님께 관해서 알만한 것은 하느님께서 밝혀, 보여주셨기 때문에 너무나도 명백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실 때부터 창조물을 통하여 당신의 영원하신 특성을 나타내 보이셔서 인간이 보고 깨달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로마1.20)
우리는 흔히 순리(順理)대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곧 하늘의 이치. 창조주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내용으로 해석된다.
또 무리와 폭력을 행사할 때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이는 곧 순리대로 살지 않으면 그 법을 만드신 분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인식과 희망을 내포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자연법이라고 하는 것은 창조주의 뜻이 들어 있는 질서를 의미하며 창조주의 질서는 피조물에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자연법이 실제로 윤리규범이 되기위해서는 자연 안에 담겨있는 질서를 알아내고 따르는 데 있다. 윤리에서 자연법이라고 할 때는 현상계의 모든 사실과 인간의 도덕들을 광범위하게 포괄해서 사용하여야 한다.
1, 물리 및 생리법칙(物理. 生理)
인간은 자연을 개발하고 문명과 문화를 이룩하여 인류 발전에 이바지해 왔다. 그는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분명한 법칙을 지니고 있으며 그 질서에 따라 생육(生肉), 변화, 발전한다는 것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은 많은 것을 발견하여 인류를 무지에서 해방시켜 주었고 인간의 삶을 보다 인간화시켜 주었다. 그러나 진리를 과장하고 확대하여 혼란과 무질서와 오해를 야기시키고 있으며 삶의 터전인 자연을 파괴하는 결과도 가져오고 있다. 그러므로 종교교리와 과학은 서로 보완되고 상승작용을 할 수 있으나 과학주의는 균형을 깨뜨려 위험을 초래한다.
인간이 자기 능력을 자연의 법칙과 질서에 따라 인간을 위해 유용하게 활용하는 것이 창조주의 뜻임을 알아야 한다(창세기1, 27~30: 2, 15~17).
2, 윤리법칙(倫理法則)
동서고금을 통해 어디에서나 언제나 인간의 존귀함을 알았고 서로간의 차이는 있으나 삼강오륜(三綱五倫)을 알고 있다. 그러나 계층과 인종의 차별은 극심했다. 비록 국제연합이 제한없이 모든 인간의 인권을 성대하게 선언했으나 아직도 실효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인간은 실정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연법상 즉 생득적으로 자유와 평등의 권리를 가지며 자기의 삶을 인간답게 영위할 권리를 갖는다. 인간의 품위와 자유, 개인의 성장과 발전, 노동에 대한 권리와 의무 등은 인간이 공동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한마디로 인간은 역사 안에서 진선미(眞善美)를 추구하며 교류하고 전수하므로 다른 동물과 구별된 생활을 한다. 그리고 형이상학적인 것에 개방성을 지닌 존재로서의 위대함이 나타난다. 그러나 동시에 이 진리에 역행하는 행동들을 자행하였다.
3, 종교와 신앙
인간은 절대자에 대한 갈구와 자기 완성에 대한 희망을 지니고 살며 절대자와의 만남을 통해 이 희망을 키워간다. 그러므로 인간의 기본적 권리 중에 신앙의 자유가 포함돼 있음을 알고 또 요구하고 있다. 인간의 품위는 절대자와의 만남에서 위축되지 않고 고양되며 완성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절대자 앞에 모두가 평등하며 절대자의 뜻에 따라 각자가 자기 소명을 다할 때 오히려 평화공존이 용이하게 된다.
위에서 간단히 자연법의 특성을 살펴보았다. 윤리적 자연법은 양면성을 가졌다. 연역적 원리로 본다면 창조주의 창조의지를 나타내는 질서이고 귀납적으로 본다면 과학적 진리와 미풍양속을 기초로 하는 윤리 도덕률 들이다.
그러므로 자연법은 우리가 충실히 지켜야 할 불변적 삶의 길이지만 그를 옳게 이해하기 위하여는 진실한 연구와 맑은 양심의 식별이 선행되어야 함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창조주 하느님을 거역하고 자기 욕망에 사로잡혀 온갖 불의와 불경을 저질러 본래의 질서는 무너지고 또 파괴되고 있기 때문이다(로마1,18~2,16).
자연법 중 가장 위대한 법칙은 지성적 존재인 인간이 영원하신 하느님의 뜻에 동참하는 것이다(토마스 아퀴나스).
그리하여 자비하신 하느님의 지혜와 섭리로 창조하신 자연의 질서를 인간이 배우고 이를 통하여 자신이 성숙과 완성에로 불리운 존재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충실히 생활하는 데 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