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수난을 간접적으로 말씀하시면서 당시의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하고 계신다. 구약 당시의 포도원은 곧 이스라엘을 말하지만, 오늘의 현실에서는 이 세상을 지칭한다(구약에서는 포도원에 대한 비유가 많이 나온다. 당시의 이스라엘 나라의 농업은 대부분 포도농사이기 때문이다). 포도원의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소작인은 당시의 지도자들이다. 그리고 하느님(주인)께서 기대하시는 소출은 참 믿음과 사랑의 정신이다. 소출을 받으러 간 종들은 예언자들을 뜻한다.
그런데 주인은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맡기고 멀리 떠나갔다. 이는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권한을 잠시 동안 감추시고 기다리시는 기간을 말하는데, 바로 지금이 그 기간이라 할 수 있다.
주인은 소출을 셈할 시기가 되어, 먼저 종들을 보낸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도조를 낼 생각은 고사하고、오히려 하느님의 종들을 『하나는 때려주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쳐죽였다』때리는 것은 곧 주인을 능멸함이요, 죽이는 것은 주인을 하찮게 여기고 깔보는 일이요, 돌로 쳐죽임은 곧 죄인으로까지 여김을 뜻한다. 실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그러나 주인은 그래도 참고、저들이 참회하고 응분의 도조를 갚을 것을 기대하면서, 마지막으로 『내 아들이야 알아 보겠지』하며 당신의 외아들을 보냈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뉘우침은 고사하고 『저 자는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이고 그가 차지할 이 포도원을 우리가 가로채자』하고 서로 짜고는 『그를 포도원 밖으로 끌어내어 죽였다』.
이는 예수님 자신이 예루살렘 성 밖에 끌려나가 죽임을 당하실 것을 미리 예언하신 것이다(구약에서는 예루살렘 성 밖으로 끌어낸다는 것은 이방인으로 취급당함을 뜻한다). 사실 현 세계는 하느님을 인간의 생활 영역 밖으로 몰아내고, 인간이 이 세상의 주인인양 행세하며 살고 있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로 자신의 잔재주만 믿고 사는 현대인들은 대부분이 무신론자다. 공산주의자들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물질에 눈이 먼 자본주의자들 역시 하느님을 믿지 않는 것은 매한가지다.
그런데 그런 현상은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가? 우리들 신앙을 가졌다고 자처하는 사람들로부터 연유된 것이 아니던가? 종교는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종교는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종으로서의 위치에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군림하는 자세, 그렇게까지는 아닐지라도, 남 앞에 스스로를 과시하고 자신의 종교가 제일이라고 뽐내는 자세를 취하지 않았던가? 물론 우리는 그러한 긍지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럴수록 겸허한 자세로 보다 적극적으로 봉사는 자로서 사회에 임해야 할 터인데、그렇지가 못해서 남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들이 있지 않았을까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아아, 그러나 그것은 우리들만의 불행이 아니라, 사회 전체 아니 인류 전체의 불행을 자초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
오늘의 복음에서와 같이 불충한 소작인 들은 주인의 아들(하느님의 아들)을 죽임으로써 해방된 것이 아니라、결과적으로는 스스로를 죽인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신이 죽었다』고 외쳐대는 사람들은 사실은 인간 스스로를 죽인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오늘날의 이 비인간화된 세상을 보라. 살인을 파리 죽이듯이 하고, 폭력ㆍ폭행ㆍ사기ㆍ협잡, 인정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차가운 세상이 되고 말았다. 그것은 모두 신(하느님)을 생활권 밖으로 끌어내어 못 박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하느님이 높으신 주춧돌(모통이돌)을 버림으로써, 그 집이 무너져 저들을 깔려 죽게 만든 것이다. 그것은 당연한 응보이다.
버린 돌이 모퉁이 돌이었는데 왜 그것을 모를까? 이제까지 기다리시는 하느님의 인내하심을 왜 모를까? 반성과 회개, 다시 착하고 충성스런 소작인으로 되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주인의 심정을 헤아려 빨리 제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먼저 우리 교회가, 그리고 성직자가 그 모범을 보이고 우리 신자들이 모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처럼 살도록 인도해야만 하느님의 기다리시는 그 성심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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