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본성의 오염
4. 성 바오로의 로마서에 나오는 것과 비슷한 묘사가 2차 바티깐 공의회 사목헌장에 나온다는 사실을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의 증상을 드러냅니다. 『…온갖 종류의 살인, 집단학살, 낙태, 안락사, 고의적인 자살과 같이 생명자체를 거역하는 모든 행위와 지체의 상해, 육체와 정신의 고문, 심리적 탄압과 같이 인간의 완전성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와 인간 이하의 생활조건, 불법감금, 유형, 노예화, 매춘부녀자와 연소자의 인신매매, 또는 노동자들이 자유와 책임을 가진 인간으로 취급되지 못하고 단순한 수익의 도구로 취급되는 노동의 악조건과 같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모든 행위 등, 또 이와 비슷한 다른 모든 행위는 실로 파렴치한 노릇이다. 그것은 인간 운명을 당하는 사람보다 불의를 자행하는 사람을 더럽히는 행위로서 창조주에 대한 극도의 모욕이다』(사목헌장 27).
이 공의회 본문이-교회사목자들과 또한 가톨릭·비가톨릭 학자들과 교사들에 의한 그토록 많은 고발 가운데-오늘의 세계안에서 「죄악의 상황」을 어느 정도 대표적으로 드러내는가를 밝히기 위해 역사적 분석을 하거나 통계학적 계산을 할 때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양적인 차원을 떠나 이러한 사실들이 있다는 것은 성서와 교회교도권이 가르치는 바와 같이 인간 본성의 「오염」이라는 슬프고 무서운 증거임이 확실합니다. 다음 교리에서 이것을 다룰 것입니다.
죄에 대한 인간의 체험
5. 현재로서는 두가지를 지적하겠습니다. 첫째는 「하느님의 계시」와 그 올바른 해석자인 교회교도권이 인류 역사내 죄의 보편성과 현존에 대해 끊임없이 그리고 체계적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세세대대로 되풀이되는 이 죄악의 상황이 개인과 사회생활 속에 나타나는 윤리적 병폐라는 심각한 현상을 통해 역사안에 『외부로부터』 감지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우리의 시선을 인간의 『내부』로 돌린다면 아마도 그것은 더욱 더 뚜렷이 인식될 수 있고 이것은 우리에게 충격적인 일입니다.
사실 2차 바티깐공의회의 사목현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의 계시로 우리에게 알려진 이 사실은 우리 경험과 일치한다. 과연 인간은 제 마음을 살펴볼 때 자신이 악에 기울어져있고 착하신 창조주로부터는 올 수 없는 여러가지 죄악에 빠져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은 가끔 하느님을 자신의 근원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함으로써 궁극 목적에로의 당연한 질서마저 파괴하고 자신과 이웃과 모든 피조물과의 조화도 깨뜨렸다』(사목헌장13)
무죄한 사람은 없다
6. 우리시대 교회 교도권의 이러한 발언들은 역사적·영적체험 자료들을 담고 있을 뿐아니라 또한 무엇보다 우리가 인간의 지상역사의 최초의 죄에 대한 증언으로서 앞에서 분석한 창세기 3장의 묘사로 시작, 성서의 여러 책 속에 거듭되는 가르침을 충실하게 반영시키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죽을 인생이 어떻게 하느님 앞에서 올바를 수 있으랴? 그 누가 자기를 지으신 이 앞에서 깨끗할 수 있으랴?』(욥4, 17)라는 욥의 고뇌에 찬 질문을 되새길 뿐입니다. 『그 누가 부정한데서 정한 것을 나오게 할 수 있겠습니까? 』(욥14, 4) 『죽을 인생이 어찌 깨끗할 수 있겠는가? 여인에게서 난 사람이 어찌 죄없을 수 있겠는가?』(욥15, 14)그리고 다른 비슷한 질문이 잠언에 나옵니다 『「나는 마음에 거리낄것 없다. 나는 죄가 없이 깨끗하다」고 할사람이 어디 있느냐?』(잠언20, 9).
시편에도 같은 부르짖음이 울려나옵니다. 『이종을 재판에 붙이지 말아주소서. 살아있는 사람치고 당신 앞에서 무죄한자 없사옵니다』(시편143, 2) 『모태에서부터 잘못된 자들, 나면서부터 빗나가서 거짓말만 하는 자들』(시편58, 3) 『이 몸은 죄몸은 죄중에 태어났고, 모태에 있을때부터 이미 죄인이었읍니다』(시편51, 5).
이 모든 것들이 구약의 느낌과 생각의 연속성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적어도 이들은 죄의 보편적 상황이라는 어려운 문제를 제기합니다.
죄의 뿌리는 마음속에
7. 성서는 우리로 하여금 인간 내부에서, 그의 양심속에서, 그의 마음속에서 죄의 뿌리를 찾도록 촉구합니다. 인간이 죄중에 『태어났다』고 말하고 『깨끗한 마음을 새로 지어주소서, 오 하느님』(시편51, 10)이라고 하느님께 부르짖는 시편 51에 이 생각이 표현돼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의미로 인간본성에 『선천적』이 되게 하는 죄의 보편성과 그 유전적 특성은 성서에 자주 언급됩니다. 그래서 시편 14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두들 딴 길 찾아 벗어나서 한결같이 썩은 일에 마음 모두어 착한 일하는 사람 하나 없구나. 착한 일하는 사람 하나 없구나』(시편14, 3)
인간의 갈등
8. 『마음의 완고함』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이러한 성서적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마태오19, 8참조). 성바오로는 이 『마음의 완고함』을 주로 윤리적 나약함으로 그보다 선을 향하지 못하는 일종의 무능으로 설명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육정을 따라 사는 사람으로서 죄의 종으로 팔린 몸입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지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로마서7, 14~15). 『마음으로는 선을 행하려고 하면서도 나에게는 그것을 실천할 힘이 없습니다』(로마서7, 18). 『곧 내가 선을 행하려 할 때에는 언제나 바로곁에 악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로마서7, 21). 이러한 말들은 흔히 지적되듯이 이방인 시인의 『나는 더 좋은 것을 보고 좋아하면서 더 나쁜 것을 행한다』는 말에 연결된다(Ovid Metamorph.7, 20참조). 두경우 모두 (다른 많은 영성가들과 문학의 전 분야에서도)인간 체험 중 곤혹스러운 한면을 보여줍니다. 원죄에 대한 계시만이 그것에 어떤 빛을 던져줍니다.
선을 위한 인간의 투쟁
9. 특히 2차 바티깐 공의회에 의해 표현된 우리시대 교회의 가르침은 『창조주의 사랑으로 조성되었고 보존되는… 죄의 노예상태에 떨어진… 세계』(사목헌장2)에 대해 말할 때 바로 이러한 계시진리를 반영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 인류역사는 암흑의 세력에 저항하는 인간의 악전고투로 엮어져 있으며 이 투쟁은 태초부터 시작되어 주님의 말씀대로 마지막 날까지 계속 될 것이다.
이 전투에 말려든 인간은 선에 충실하기 위해서 끝없이 싸워야하고 하느님의 도우심과 비상한 노력없이는 자신의 통일을 획득할 수 없다』고 같은 사목헌장이 말합니다.(사목헌장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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