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유난히 건조기가 무덥다. 태양이 펄펄 끓고 있다고 나는 표현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 숨을 쉴 수가 없다. 모래를 실은 뜨거운 바람이 온 몸을 휘감을때 이것을 어떤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해가 갈수록 태양이 뜨거워 지는것일까? 아니면 올해만 유난히 뜨겁단 말인가?
사하라 사막의 모래와 적도의 공기층의 오존(?) 때문에 건조기 때 하늘은 거의 불투명하게 뿌옇다. 비를 몰고올 구름은 어디서 쉬고 있는가?
벌써 몇달째 비 한방울이 안온다. 우리나라는 가을부터 겨울에 추위로 나무들이 나목이 되는데, 여기는 고갈과 더위 때문에 심한 건조기에 나목이 된다.
자연이 마르고, 땅이 마르고, 사람도 마르고, 목도 마르고, 피부도 말라서 갈라져 터지고 따라서 사람들 마음도 메마른다. 그래서 심한 건조기 때는 사람들이 술을 많이 마시고, 툭 하면 싸우고, 대단치 않은 이유로도 싸움을 하며 칼을 휘두르기도 한다.
말이 쉽지 이 아프리카 땅에 비 한방울 안 온다는 것은 하나의 죽음이다. 멀고, 가까운 모든 샘들, 모든 물 줄기들이 바닥을 드러낸다. 씻는 것은 3번째 4번째 얘기다. 마실 한 방울의 물이 필요하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울 힘이 없을때까지 울며 물을 찾아 헤맨다. 땅속 깊이에는 분명히 물이 있다. 그것을 알지만 맨손으로 어떻게 한단 말인가?
이것을 보고 겪는 나는 이렇게 하느님께 호소한다. 『하느님 보소서. 허기지고. 목말라 넘어져 있는 형제들을. 목이 말라 숨져가는 저 가련한 까만 꼬마에게 한방울의 물로써 목을 축여 살아아게하소서, 어떤 나라에서는 물이 철철 넘쳐 흐르는 반면, 이들은 갈증으로 죽어 가나이다. 이들의 땅을 깊이 파서 우물을 만들어 이들도 시원한 물을 마시여 해갈할 수 있도록 도움의 형제들을 이들에게 보내주소서』하며 주님께 간곡한 호소를 한다.
나는 하느님께 왜 이 백성들은 이렇게 만드셨느냐고 묻지는 않는다. 나는 안다. 하느님께서 이 백성들을 만드시고, 어여삐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하느님 안의 한 형제, 자매이다. 주님은 『너희는 만방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다. 모두가 만방으로 뛰어 나갈 수는 없다. 어떤이는 현장으로 뛰어가고、어떤이는 자기자리에서 간접적으로 복음을 전한다.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은 기쁜 말씀과 기쁜 생활을 전하여, 그들 또한 주님 안에서 평화를 누리며 살도록 하라는 기쁜 말씀일 것이다. 말씀을 전하기도 어렵지만, 기쁜 생활을 동시에 전하기도 쉽지 않다.
신부님과 나는 1주일에 한번씩 병자들, 노인들을 위해 봉성체를 모시고 마을방문에 나간다. 신부님께서 그들에게 성체를 영해드리면 기도를 하는둥 마는둥 하며 옆눈으로 나의 손을 쳐다본다. 즉 배고프다는 표현이다. 신부님께서는 『흠』『흠』하시며 기도부터 열심히 하라고 말씀 하셔도 그들의 한쪽 눈은 나의 손에서 떠나지 않는다. 당장 배고파서 죽을 지경인 그들에게 영성체로써 평화 속에 머물어라고 나무랄수 있겠는가? 그들이 필요한 것은 동시에 두가지 배고픔을 벗어나고 싶은것이다.
그러나 선교사의 생활자체도 가끔가다가 먹고사는 일에 허덕일 때가 있다. 그러나 신부님과 나는 마을방문 날은 더욱 허리를 졸라매고 그들과 나눠야한다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는 날, 그들의 슬픔과 절망에 찬 눈들을 어찌 뒤로하고 그들을 떠나올 수 있는가!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배고픈이에게 먹을것을, 헐벗은이에게 입을 것을 주라고 주님은 말씀하셨고、우리들의 등을 밀고 계신다. 서로 나누라고.
나는 마을을 돌며 환자와 배고픈 자를 찾아다닌다. 나도 사실 빈손인 주제에 무엇을 어떻게 하겠단 말인가? 나는 빈손이지만 주님의 손은 빈손이 아니라는 것을 믿을 뿐이다.
어떤 간질병 환자는 불 위에 넘어져 다리에 화상을 입고 병원에 가도 약도 없지만, 갈 수가 없어 썩는 냄새를 내며 집에 누워있는가 하면, 어떤 부인은 전신 마비로 욕창이 생겨 뼈가 보인다. 있는 약과 물건을 다하여 그들을 치료하지만 영양실조로 그들의 상처는 좀처럼 잘 아물지 않는다.
나는 그들에게 두가지를 동시에 주지 않으면 안된다. 상처치료와 영양 보충을, 이 이론을 모르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현실에서 가끔 나의 빈손만 들여다 볼 때 나의 가슴에는 아무 말이 없다.
『주님, 보소서. 이 빈손을』하는 한마디뿐이다. 상처치료와 음식을 동시에 주면 눈에 띄게 상처가 빨리 아문다. 궁핍에 대한 안타까움도 초기의 시련이지, 이것도 세월에 따라 단련되어가는 자신을 바라볼 때 하늘을 보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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