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영이가 불안해서 학교에도 못가겠다고하니 어쩌지요? 야단만 칠수도 없구요. 이런 문제를 어디에다 호소해야 할런지、수녀님이나 신부님께 갈까도 했는데…』
시영이가 받았다는 편지 세통을 읽고 있는 내 옆에서 어머니는 열심히 보충설명을 한다.
과연 편지내용은 협박으로 일관되어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시영이 어머니와 약속한 대로 시영이가 나를 찾아왔다. 그런 어마어마한 협박을 당하고 있는 현실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였다.
시영이의 학교 외의 일상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었다. 도무지 공부라든가 질서라든가 하는、보통 여고생들의 의식과는 다른 아이였다. 협박편지의 두려움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다운 신선하고 발랄함 대신 지치고 체념한 기성세대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시영이.
『내 친구가 그러는데 외국으로 유학가는 길이 있다고 했어요. 선생님께서 자세한 내용을 알아 주세요』
시영이는 막다른 골목에서 당혹해하는 그런 태도여서 또다시 나를 서글프게 만들었다. 성당에는 발을 끊은 지 오래 되었다는 말을 시영이 어머니로부터 확실히 들었기에 시영이에게 확인했더니 천연덕스럽게 잘 다닌다고 했다. 아무렇게나 대답을 하는 습관이 깊게 들어있는 시영이였다.
나는 시영이에게 약속을 받은 두 가지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일기를 쓰는 일과 학교에 일찍 등교하는 일이다.(아침 자율시간을 늘 핑계를 대면서 늦었었다)일상적인 것들에 재미를 붙이게 하고자 함이었다. 그런 일들은 어머니의 도움이 절대로 필요했기 때문에 토요일 마다 전화를 주고받았다.
『시영아 또다시 편지가 오면 너랑 같이 그 애를 만나자』
시영이와 상담하면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후에는 당연히 그 따위편지는 올리가 없었다 『○으로부터』라는 그「○」은 실존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친구와 어울려 다니는 남자 친구를 보면서 막연히 자신도 그런 친구를 갖고싶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일기에 썼다. 그냥 그런 무서운 협박편지도 써서 봉투에 넣고는 겉봉에 자신의 이름도 적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눈에 띄일게 뻔한데도 감추지 않았던 것이다. 명동언덕의 상담실에서 만난 그 소녀의 썰렁한 눈빛을 가끔 생각한다. 가출하지 않고 졸업했다는 그의 어머니 전화도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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