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눈물이 쏟아질 정도로 엄격한 학교 규율은 대신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딱 한번 예외가 있었다. 그것도 신학생 전원이 퇴학당할 소지가 있는 엄청난 사건이었는데도 말이다.
그일은 우리 나라 조선의 자주독립을 위해 전 국민이 참가했던 1919년「3ㆍ1만세」사건과 관련된다. 신학교에서도 밤새도록 한숨도 자지않고 『대한독립 만세』를 소리 높이 외쳤던 것이다. 소신학교 학생들은 빼놓고 나까지 포함해 대신학교 학생 30여명이 동참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신학교 뒤쪽으로는 철도국에 다니는 일본인 직원사택이 죽 늘어서 있었는데 우리는「그놈들이 들으라」고 일부러 그쪽 창문을 활짝열고 만세를 목이 터져라 불렀다.
신학교 설립사상 처음 있었던 이 일은 당시 일본이 지배하던 사회적인 분위기도 있었지만 일단은 그 엄격한 학교규율을 깨고 마음대로 단체행동을 했다는데서 당연히 퇴학을 당학을 당할 큰 사건이었다. 함께 만세를 부른 신학생들도 그 정도는 이미 각오를 한 터인지라 옷방에 가서 각자의 짐을 꾸렸다. 퇴학이 분명하다고해도 우리들은 계속 만세를 불렀다. 교장 신부님과 또 한분의 신부님이 와서 우리들을 몹씨 책망했다. 다음날 옷을 다싸가지고 마지막 미사참례를 하러 성당으로 모였다. 이미 교장신부님이 주교관으로『모든 처분을 기다린다』는 연락을 보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미사가 끝나면 바로 퇴학명령이 내리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미사가 끝났는데도 아무도 나가란 말을 하지 않았다. 조과를 마칠때 까지도 아무말이 없기에 우리들은 이제나 저제나 기다릴 뿐이었다. 얼마후 민주교님이 직접 우리들에게 오셔서『퇴학은 시키지 않을 작정이니 마음 놓고 공부하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지금도 그 이유는 알수 없지만 어쨌든 공부는 계속할 수 있게 된것이다.
그 이후에도 일본순사들이 신학교로 찾아오지 않은것을 보면 「일본사람이오면 발길로 뻥뻥찰정도로 무섭던」진교장신부이하 외국신부님들의 힘도 한몫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이 당시 상황을 잘모르는 사람들이 만세사건때문에 신학생전원이 퇴학당했다고 알고있는것 같은데 이는 사실과는 다르다. 이 자리에서 다시 밝혀두지만 만세를 불렀다는 이유로 퇴교당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3월 1일도 다가오고해서 모처럼 그때 사건을 기억에 남은대로 적어보았다. 다시 신학교 시절 생활 얘기로 되돌아가보자. 그 당시에 내가 쓰던 방을 설명해보겠다. 갓 신학교에 입학해서 배정받았던 방의 모습은 이러했다. 그방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커다란 쇠침대였다. 가장자리에는 특별한 장식이나 받침대가 없었지만 사람이 누워도 떨어지지 않도록 발끝과 머리 맡에 쇠로 높게 만든 장식이 달려 있었다. 이렇게 비상조치를 취해놓았는데도 침대는 본적조차없는 학생들이 대부분인지라 잠을 자다가는 떨어지기가 일쑤였다. 나 역시 몇번인가 자다가 떨어진 기억이 있다.
침대 위에는 두붐한 요가 깔려 있었는데 길이는 침대 기장대로 보통 1발 이상 둘레는 한아름되는 크기로 감은 질긴 광목을 사용했고 안에는 묶은 짚단을 넣어 두툼하게 만들었다.
침대 밑에는 개인 생활에 필요한 세수대야ㆍ수건ㆍ비누 등을 차곡 차곡 놓아두었다. 아침 일찍 종소리에 눈을 뜨면 그방에서 제일 나이 많은 학생이 벌떡 일어나 『주를 찬송합니다』라고 라틴말로「계」를 외우면 나머지는 즉시『주께 감사합니다』라고「응답」을 했다. 나도 처음에는 라띤말을 몰라 쩔쩔맸었는데 신학교 생활은 언제 어디서나 이「계」와「응답」을 해야했기 때문에 나중에는 자면서도 입전으로 외울 정도로 숙달이 됐다. 아마도 언제 어디서나 항상 주님을 생각하며 기구한다는 뜻으로 기도를 바쳤던것 같다. 신학생들은 무엇을 하던 각자에게 부여된 번호에 따라「번호생활」을 했다. 잠잘 때도 자기번호가 새겨진 침대에서 잤다. 나의 번호는「3번」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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