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백 50년전, 아씨시의 프란치스꼬 성인을 그 자신을 위해서 또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그가 가르쳤던 사람들을 위해서 이 기도문을 만들었습니다.
주여 나를 당신의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는 사랑을 가져오게 하고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되게 하소서. 위로 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아멘.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 예수님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교 정신의 시작은 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들 중의 한 사람이 되셨는데 죄를 제외하고는 우리와 모든 것에서 같습니다. 그리고 그는 계속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회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사람하셨는가? 그분은 자신을 생명외 빵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분은 여러분과 내가 먹고 살 수 있도록 자신을 생명의 빵으로 삼으셨습니다. 당신 자신을 그렇게도 작고, 연약하고 그냥 빵으로 살으셔서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굶주림을 채우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성부이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결코 그렇게는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을 가장 단순한 음식인 빵을 들어 어린이조차 먹을수 있고, 어린이도 이해할수 있도록 빵을 그분의 몸으로 만드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만약 너희가 내 몸을 먹고 내피를 마시지않으면 살 수 없다』그분은 성부를 사랑할 수 있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가 서로를 사랑할 수 있게 하기위해서 그리스도의 몸을 필요로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사랑의 선하심은 여러분의 사랑과 나의 사랑에 몹시 굶주림을 갖고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사랑을 위해 주님은 굶주림을 채워주시고자 하셨고, 그분 자신을 굶주린 이, 발가벗은 이, 짐 없는이가 되셔서 우리가 그를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알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고, 봉사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우리 사랑의 선교회의 수녀들과 수사들이 사회 사업가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들은 이 세상의 마음 한 가운데에 있는 관상자들이니 그분의 삶은 성체성사로 짜여진 삶으로써, 빵의 모습으로 그분을 만지며, 괴롭힘 당하는 가난한 자들의 모습에서 그분을 발견하는 삶인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는 조건을 만들어 주셨으니 죽음의 시간에 여러분과 내가, 그리스도인이든지 아니든지 하느님 사랑의 손으로 창조된 인간이면 누구든지, 그분 사랑의 모습으로 창조된 이는 누구든지 해당되는 것으로서, 우리가 그분 앞에 갈 때 가난한 이들에게 했던 일과 가난한 이들에게 대했던 태도에 대해서 심판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굶주렸을 때에 너회는 내게 먹을 것을 주었다』 나는 빵만 굶주린 것이 아니고 이해받는 사랑에도 굶주렸고, 원함을 받고, 알아주기 바라며. 누군가에게 어떤 누구가 되고자하는데 굶주려있다. 옷 한조각이 없어 헐벗은 것뿐 아니라.인간의 존엄성과 존경에 헐벗었고, 가난한 자들에게 행해지는 불의에 헐벗었노라. 벽돌로 만든 집이 없어 집없는 자된 것이 아니고 단칸방 안에서의 지독한 고통으로부터, 그리고 아무토 원하지않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데서 어느 곳으로 혼자 가든지 아무도 상판관조차 않는데서 집없는 자되었다. 우리는 그곳에 있었는가? 그들을 알고 있는가? 그들을 보고 있는가? 가난한 이들은 우리들의 사랑과 동정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가 그들에게 주는것 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줍니다.
언제인가 수백만의 피난민들이 인도에 피난 왔던 어려웠던 시기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는 인도정부에게 다른 종교인들도 좀와서 우리를 도와 피난민들에게 봉사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러자 여러 종교단체로부터 16~17명의 수녀들이 와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6개월을 지냈습니다. 그냥 사랑해주며, 봉사해주며, 사람들에게 따뜻한 사랑의 보살핌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그들이 떠날 때에 그들은 자기들이 준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받았노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이해하는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몇 달전 우리는 한밤 중에 캘커다 길거리에 나가서 너댓 사람을 들어다가 선종의 집에 눕혔습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아주 위독한 상태여서 내가 돌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사랑으로 그녀에게 해 주었습니다. 그녀를 침대에 눕혔을 때 그 여자는 내 소매를 붙들고는 그렇게도 훌륭한 미소를 지으며 「감사해요」라고 한마디 말하고는 임종 했습니다. 그녀는 내게 그렇게도 큰 사랑을 주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내가 그녀였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라고. 나는 아마도 주의를 끄는 어떤 행동을 하려고 노력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는 배가 고픕니다. 아니면, 나는 추워요. 그리고 나는 죽어가고 있어요』라든가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도 훌륭하고 아름답게 자신을 주었던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은 굉장한 사람들입니다, 캘커타애서 우리는 설탕이 없어 어려울 때, 네살짜리 한두 어린이가 찾아왔습니다. 부모와 함께 온 그애는 작은 설탕상자 하나를 내게 가져와서는 『나는 사흘동안 이 설탕을 먹지 않을 테니 이것은 수녀님 댁 아이들에게 주세요』이 어린 꼬마는 굉장한 사랑으로 사랑했던 것입니다.
몇주 전에 어떤 사람이 저녁때 우리 집을 찾아 왔는데 『아이가 여덟명 있는 한 두 가족이 있는데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었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쌀을 좀 가지고 즉시 그 곳으로 갔지요. 그리고 작고 굶주린 얼굴과 허기로 빛나는 눈을 보았습니다. 그 어머니는 내 손에서 쌀을 받자 둘로 나누어 가지고 나갔습니다. 잠시후에 돌아왔을 때 나는 그녀에게 어디갔다 왔느냐고 묻자, 그녀는 『그들도 역시 굶고 있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녀의 이웃집은 모스렘 가족이 었는데 역시 아이들이 많았고 그들 역시 굶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진정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쪼개여 나눈 것입니다. 나는 어린 것들의 그 얼굴을 어떻게 여러분께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고통당하고 있다는 것, 그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내가 그들의 집을 떠날때 쯤 그들의 눈이 기쁨으로 빛나고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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