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의 포로가 됨
마당은 부하에게 진공품을 모두 가져오게 하여 하나하나 펼쳐보다가 십자고상이 담긴 상자를 열었다. 십자가에 여위신 예수가 가시관을 쓰고 선혈을 흘리는 고상을 보고 마당은 놀라서 비명을 지르며 이렇게 말했다. 『이 물건은 분명히 황제폐하를 죽게하는 저주물(詛呪物)이지. 나는 벌써부터 당신을 의심해왔어. 바로 이것이 그 증거물이야』리치 신부는 예수 강생의 오묘한 진리를 설파했으나 무식한 마당이 이해할리 만무였다. 마당은 리치 신부를 꾸짖으면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황제폐하를 시해하려고 했으므로 대역죄를 면치 못할 것이요 당신을 북경으로 압송하여 투옥시키겠소』병비도(兵備道)는 리치 신부를 동정하여 마당을 달랬다. 『여기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은 서방의 성인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대신 죽은 사람입니다』
마당이 이번에는 상자 안에서 성작을 끌어내었다. 마당은 도금한 성작을 순금으로 알고 가져가려 하므로 리치 신부가 은전 2백량이 든 돈주머니를 마다에게 주고 성작을 빼앗기지 않았다.
11월이 되어도 자금성에서 아무런 회답이 오지 않았다. 고묘(古廟 민간신앙) 앞마당에서 쌀 타작을 하여 하루종일 쌀겨가 날아들어오고 방에는 난로가 없어 몹시 추웠다. 전갈하기를 『마당이 이름을 내고 싶어서 리치 신부님이 황제를 시해하려고 저주를 도모했다고 고소하려고 합니다. 속히 신부님 일행은 본국으로 돌아가시고 십자고상은 증거물이 될 것이오니 훼손시켜 주시기 바랍니다』리치 신부는 이미 이 험악한 분위기를 다 알고 있었으나 십자고상을 훼손시키지 않았고 황제에게 진공도 포기할 수 없었다.
황제에게 진공
구정때 전화위복이 되어 황제에게서 진공을 하라는 연락이 왔다. 황제는 리치 신부의 진공을 잊고있다가 갑자기 생각이 떠올라 시종하는 환관에게 서양인이 자명종을 진공한다고 하더니 왜 나에게 자명종을 가져오지 않느냐고 물었다.
화관이 그 서양인은 황제페하의 봉지(奉旨)를 내리게 하여 리치 신부 일행은 마당의 손에 들어간지 6개월만에 진공하게 되었다. 리치신부 판토자 신부 종명인 수사는 정부에서 제공하는 말 8필에 나누어 타고 30여명의 역부와 함께 북경으로 향하였다.
도시를 지날 때 마다 말을 바꾸어 탔으며 황제에게 진공하는 사절단이므로 사람들이 모두 상빈(上賓)대우를 하였다. 리치 신부는 신종황제에게 직접 진공을 하고 선교의 자유를 얻으려 하였다. 그러나 명나라 황궁법에 황제는 양이 (洋夷)를 직접 알현할 수 없게 되어있어 직접 진공을 못하게 되었다. 리치 신부의 진공품은 다음과 같다.
①천주성당 1폭 ②고화(古畵)천주성모상 1폭 ③천주성모상1폭 ④일과경1권 ⑤성인유뮬 ⑥만국지도1권 ⑦자명종대소2개 ⑧프리즘2개 ⑨서양악기 1대 ⑩유리거울 1개 유리병 1개 ⑪물소뿔(약용) ⑫사각루(沙刻漏) ⑬복음성경 1권 ⑭서양옷감 47필 서양포(西洋布) 5필 ⑮서양은전 4개.
리치 신부의 원래 계획은 이렇게 자신이 진공하는 것이 아니었다. 로마 교황청에서 중국 황제에게 직접 사절단을 파견하여 귀중한 예물을 당당하게 진공하려고 했는데 뜻대로 되지않아 리치 신부가 진공하게 된 것이다. 1601년 음력 1월 27일 리치 신부는 진공품을 궁문에 진정(進程)시켰다. 진공하는 동안에 한발의 포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북경사람들은 이포소리를 듣고 누가 황제에게 진공하는 것을 안다. 리치 신부가 알아보니 진공품은 통정사(通政司)의 손을 통해 어전에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통정사는 일종의 환관의 벼슬이다. 조정에서 리치 신부의 진공을 정식으로 받은 것이 아니었다.
가톨릭 미술이 중국 미술사에 끼친 영향이 실로 막대하여 16세기 이후 중국미술에 변화를 가져왔다. 신종황제는 유화로 그린 예수성화를 보고 놀라며 『이것은 활불(活佛)이 아니냐』하였다 한다. 중국인들이 선중심의 동양화만 보아오다가 입체감있게 그린 서양화를 보고 모두 놀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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