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관은 상당히 크고 감옥처럼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방에는 문도 없고 의자와 침대도 없었으며 누추하여 마치 짐승 우리와 같았다. 중국인들은 중화사상이 강하여 외국인을 야만시하고 경시하였으므로 외국사절단이 유숙하는 곳을 이처럼 누추하게 해 놓았던 것이다. 이조시대 중국사신들이 우리나라에 오면 유숙하던 모화관이 화려하고 대접이 극진히 융숭했던 것과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사이관 차역(差役)은 황제를 참배하는 일 외는 절대로 외출을 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진공한 외국사절단은 손님이 아니라 수인(囚人)과 같았으며 진공한 사절단이 많아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하며 리치 신부는 사이관에서 조선인도 만났다 한다. 진공한 사절단원은 약 1천여명되었으며 진공 사절단중에 대부분이 진공을 가장한 장사꾼이었다. 진공은 형식적으로 하기때문에 진공품도 좋은 것이 거의 없었다. 황제에게 진공할검을 사이관 공터에서 나무를 깎아 자루를 만들어 끼우는가하면 진공하는 갑옷을 폐철(廢鐵)로 만들어 녹이 슬어있기도 하였다. 말을 진공하는 사절단도 있었는데 북경까지 오느라고 말이 수척해있거나 사이관에서 진공할 말이 죽기도 하였다. 중국정부에서 진공사 절단에게 교통비와 체류비를 부담하고 예물까지 증정해야 하므로 국가의 경비가 막대하게 들었다.
예부에서도 두 서양신부가 학식이 높고 이런 상업적인 사절단과는 다르므로 우대를 하여 사이관 중에도 예부 관원이 거처하는 곳으로 옮겨주었다. 황궁에서 진공사절단은 입궁하라는 연락이 왔다. 리치신부와 판토자 신부는 황제에게 선교의 허락을 얻으려고 꿈이 부풀어 황제 앞에 가서 절하는 연습을 하였다.
황제를 참배하는 날 비단옷에 도금한 관을 쓰고 손에는 넓이 3촌, 길이 8촌되는 홀(笏)을 들고 다른 진공사절단과 함께 예부 관원의 인솔하에 자금성 남문을 통해 태화전(太和殿)으로 들어갔다. 진공사절단은 차례로 어좌에 가서 절을 하고 어좌 앞에서 「만세(萬歲)」한마디 하고 나온다. 리치 신부 판토자 신부는 차례가 되어 어좌 앞에 가서 절을하고 만세를 부르고 발을 드려다보니 황제는 없고 빈의자만 있었던 것이다. 20여년동안 꿈꾸어 오던 진공이었고 만난(萬難)과 위험을 무릅쓰고 진공하였는데, 선교의 허락을 받기는 커녕 황제의 얼굴 한번 못 보았다. 마치 성금요일의 빈 감실과 같았다. 리치신부는 여기서 좌절하지 않고 관직에 있는 사람들을 통하여 다방면으로 노력하였다. 예부시랑 주국조(朱國祖)는 리치 신부를 북경에서 쫓아내려고 황제에게 모략하는 상소를 3번이나 올렸다. 신종황제는 주국조의 이런 상소에도 불구하고 리치 신부의 북경거주를 구두로 허락하였다.
북경에 성당세움
리치신부는 사이관에서 3개월동안 거주하였는데 여러 관원과 예부 관원의 도움으로 사이관에서 나오게 되었다. 진공 사신이 사이관에서 나와 북경에 거주하는 것은 아주 드문 관계였다. 예부의 채모관원은 리치신부가 사이관을 떠나 후에도 쌀·고기·소금 채소류 등을 보내 주었다.
리치신부가 1601년 북경에 도착하여 1610년 서세하기까지 9초를 세웠다. 리치 신부는 중국 예수회 관구장으로 있으면서 강소성 절강성 강서성 광동성 교회를 지도하였다. 리치 신부는 북경에 온 후 사교의 범위가 더 넓어져 많은 관리들과 학자들과 친분을 갖게 되었으며 저작도 많이 하게 되었다.
리치 신부는 중국 특수환경에 맞추어 신중하고 온건한 방식으로 선교하였다. 선전하는 식의 선교로 목전에 수천 수만의 신자를 입교시키는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당시 미주 남양 인도 일본 등지에서 선교사들이 채택한 선교 방식과는 달랐다. 리치 신부는 우회(迂回)적이고 완진(緩進)의 방법으로 신중하게 선교하였으며이것은 곧 정확무오(正確無誤)의 선교방법이라 하겠다.
1605년 8월 리치 신부는 40간 가량되는 헌집을 구입하였다. 이집은 풍수에 좋지않고 요귀가 출현하여 중국인들이 싫어하는 흉가를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하였다. 이집은 선무문(宣武門) 근처에 있었으며 현재 남당(南堂)의 기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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