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명씩 줄을 지어 행진을 했기때문에 「고아」라는 오해도 받기는 했지만 함께 산보를 다닐때는 언제나 즐거웠다 수색·자하문 밖은 물론 홍제돈근처까지 산책을 다녔고 인왕산·홍릉·관악산도 즐겨찾던 산보 장소였다. 서울에서는 주로 이런 곳들을 찾아다녔고 서울을 벗어나서는 수원 갓등이 행주산성 등도 가끔씩 놀러가고는 했다. 이때도 물론 2열로 행진을 했다.
많은 놀이장소 중에서도 지금의 동작동 국립묘지안에 있던 「동지기마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신학생들이 누릴수 있었던 휴가는 「대첨례날」과 「주일」에 주어졌는데 햇볕이 맑고 날씨가 선선한 봄가을이면 특별히 매주 목요일마다 이 동지기 마을을 방문하곤 했다. 이를테면 이 동지기 마을로 놀러가는 날은 주중에 특별히 실시되는 특별휴가였던 것이다. 매주 일요일이면 공부는 폐하고 성무일도를 바치며 쉬기는 했지만 그것도 여전히 학교 울타리 안에서 이뤄지는 휴가라 교우들이 전부 모여 학교를 떠나 함께 즐기는 「목요일」은 그 중 기다려지는 날이 아닐 수 없었다. 동지기 마을에는 「신학교 별장」이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밥도 먹고 쉴 수도 있었다. 동지기 마을로 가는 날이면 우리들은 일찍 일어나 조과신공과 묵주신공을 마치고 2명씩 짝을 지어 한강변 모래사장으로 나갔다.
그 마을에 사는 교우 신학교 별장까지 안내했다.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 그 마을에 닿으면 2시간 정도가 소요됐는데 곧바로 미사를 봉헌하고 조반을 먹은후 저녁먹을 때까지는 개개인에게 자유시간이 허용됐다. 살얼음판을 걷는것 같은 엄격한 생활에서 잠시라도 자유를 얻은 우리는 친한 동무끼리 모여 산에가서 꽃도 따고 노래도 부르며 정말 하루를 유쾌히 보내곤 했다.
이때는 성가는 두말 할것도 없지만 「노세노세」「애국가」같은 세속창가도 목소리를 높히며 부를수 있었다. 대신학생이 된 다음에는 한강에 철교가 생겼기 때문에 배를 타지 않고도 그곳으로 갈수 있게끔 됐다.
신학교를 다니면서 즐거웠던 일을 꼽으라면 이 동지기 마을 휴가와 함께 식사시간도 꼽을 수 있다. 나같은 경우에는 고집스러운(?) 신학교 식단때문에 후일신부가 돼서도 얼마간 고생을 한 기억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음식을 괜찮은 편이었다. 하얀 쌀밥에 나물국이 있었고 간장·고추장 등 기본 양념류와 함께 김치·깍두기반찬 철철이 그 계절에 맞는 조기·명태·젓갈류가 상에 올랐다. 봄이면 식량이 없어서 사람이 굶어죽는 「보릿고개」가 다반사였던 사회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그 정도면 상당히 짭짤하게 꾸며진 중류이상의 식탁이었다. 더우기 신학생들은 대부분 시골출신이었기 때문에 식사시간이면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왕성한 식욕을 자랑하곤 했다.
그러나 유독 한가지 매주일마다 정심때면 빼지않고 나오는 「쇠고기 미역국」이 고역이었다. 처음에는 하얀쌀밥을 기름이 도는 쇠고기미역국에 말아먹는 것도 별미였지만 소신학교 입학때부터 대신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6년간을 매주일마다 쇠고기미역국을 먹게되니 질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닭고기·돼지고기 등 쇠고기보다 값도 싼 다른 고기도 많았는데 왜 유독 쇠고기 미역국만을 고집했던 것인지?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당시 시장을 보러다녔던 사람탓이었던 것같다.
신학교측에서는 돈만주고 그 사람이 다 알아서 식단을 짜고 장을 보았는데 자기가 쇠고기 미역국을 좋아했던지 융통성없이 주일이면 그 국을 준비했던 것이 아닌지.
이때 얼마나 쇠고기 미역국에 신물이 났던지 후에 신부가 돼서 신학교 동기였던 동무가 회장직을 맡고 있던 공소를 방문했을때 쇠고기 미역국을 대접한다는 말에 도저히 못먹겠다며 극구사양한 일이있다. 당시 공소로서는 구하기 어려운 쇠고기 미역국을 특별히 끓여주겠다는 「정성된 제안」이었지만 나로서는 신학교시절에 줄기차게 먹던 그 미역국이 선하게 떠올라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일은 그이후에도 한참동안 지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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