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의 고향이라는 말은 사용할 수 없지만 갑자기 고향을 하나 더 얻은 것 같은 기쁨을 준 곳이 유고슬라비아였다. 기왕 외국에 사는 신세에 고향이라고 찾아와도 기와집 초가집 다 없애버리고 아파트와 자동차만 늘고 있을 바에야.
더구나 중고등학생에게 교복도 벗겨버리고 정들은 교정(敎庭)조차 낯선 곳으로 옮겨앉는 처지에 장소야 어디던 마음에 들면 고향인데 천상의 어머니께서 그 나라 방문을 매일 하신다. 누구나 쉽게 비디오 카메라로 찍어올수도 있겠지만 미국서 감명있게 본 한 비디오 테이프가 한국말로 번역되었다고 자막에 나오기에 안심했으나 아직 잘 알려지지는 않은것 같다. 한국에 보내시는 성모의 메세지도 감당하기 힘든 이때 여기저기 자꾸 쏟아지는 하늘의 요구에 정신이 없겠지만 그만큼 때가 급한지도 모른다.
유고슬라비아 항공은 일등석을 아드리에틱(지중해) 클래스라 불렀고 비행기 안에서부터 분위기가 자유로와 동독을 벗어나니 살 것 같았다. 이런 기분은 후에 모스크바에서 북경에 왔을 때도 비슷하였다.
비행기 꽁무니에 입구를 만들어놓고 일등석에 타는 사람은 끝까지 걸어서 앞으로 가도록 불편을 주었지만 나중에 폴란드나 모스크바, 북경 등으로 가는 항공사는 일등석 제도가 없다는 바람에 표를 가지고도 일반석에 앉아야 했다.
그런데 비행기를 타면 앞부분에 특수석을 만들어 놓고 공산당의 특권 신분들이 커튼을 내리고 일반석과 차단되어 앉았다. 사회제도권 안에서는 결국 돈으로 산 비행기표는 무력해지고 권력으로 신분을 구별하면서무산계급의 해방을 외치는 것이다.
수도인 베오그라드는 다뉴브강과 사바강의 합류점을 중심으로 옛적부터 시인과 화가들이 활동을 했다지만 포르노 영화가 대담하게 선전되어있고 국립 우체국에서 파는 그림엽서는 아이들 보기엔 부끄러울 것들이 많았다. 거리는 석탄을 많이 쓰는 탓인지 온시가지가 검으며 하늘은 회색 빛으로 흐린채 하루종일 눈도 비도 아닌 것이 내려 도로만 오염시키고 있었다. 한번 보고 그냥 지나 칙시는 아까울 멋쟁이가 많았고 거리는 복작거리며 자동차는 박치기를하여 운전사들이 내려서 싸움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체로 국민성은 여유있고 모두 마음이 태평스러워 보였다.
남부지방으로 갈수록 해안지대는 물론 내륙도 아름답고 남자의 7할은 영화배우 오마 샤르프처럼 멋있으며 사춘기 처녀들은 브룩 쉴지를 연상시키리만치 예뻤다. 피부는 하얀 대리석처럼 맑고 눈썹은 그린 것보다 아름다웠다. 그런데 사십대 후반만되면 여자들의 피부가 어딘지 질겨보이고 얼굴이 꼭 남자같은 모습으로 변해서 소위 말하는 여성미가 없어졌다. 기후나 음식과도 관계가 있겠지만 우리 눈이 화장한 여자들에게 너무익숙해진 탓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회주의 국가의 여성은 남자와 같은 육체노동에다 화장품도, 아름다운 옷도 공급받지 못하여 타고난 미(美)를 유지할 수도 없다. 혁명초기에는 남녀동권(男女同權)이라 하여 여자도 동참하는데 혁명이 성숙되면 여자는 지도층에서 멀어지고 결혼이 이유가 되어 가졌던 지위마저 상실하는 경향이 있어 결국 일은 일대로하고 여자로서의 특수성은 인정되지 않는 것 같다.
할일도 다 못하면서 이번 여행에 나선 이유는 유고슬라비아의 한 작은 남부도시 「메주고리에(Medjugorie)」라는 마을에1981년 6월 24일 요한세자의 탄생일부터 오늘 이 시간까지 매일 성모님이 나타나셔서 온 인류에게 메세지를 주고있기 때문이다. 반산반의로 가보는 사람이나 단체에 끼일 기회가 있어 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루르드」도 혼자 찾았듯이 되도록 남들이 적게 올 겨울이 좋은데 한국에도 와야하므로 대서양 건너 세계일주를 하게되니 경제부담이 크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만약 살고있는 집에 세를 들 사람이 있으면 성탄을 「메주고리에」에서 보내고 싶다고 성모께 전하였는데 이틀만에 찾아온 사람이 우리집 아니면 안된다고 남편도 없는데 매일 나를 졸랐다.
우리집엔 각종 파인이 다 드나들기 때문에 응접실엔 되도록 종교냄새를 피하는 대신 침실엔 건출설계를 할때부터 성모상 둘 자리를 마련하여 상당한 크기의 동고상이 있는데 이혼 후 냉담을 하여 아들 둘을 데리고 15년전에 재혼했다는 이 부인은 우리집에 왔을 때 침실의 성모상이 가슴에 부딪혀와 숨이막히더라고 나중에 말했다.
공산국가의 여성에 관심이 많은 나를 그런곳에 불러서 적은 일거리도 주셨는데 미국에서 단체로 온 한순례객은 영어권 담당의 신부님에게 자기는 성모님께서 불러서 왔는지 아니면 그냥 오게 되었는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신부님의 대답은 미국에사는 사람은 다른 나라에 비해 돈의 여유가 있으니 왔겠지만 성모님이 부르시지 않았는데 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응수하였다. 그곳에 다녀간 사람이 마음 변하지 않기는 어렵기 때문에 많은 수의 미국 사람이 불려오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둘 가운데 설치된 즉석 고백소에 앉아 있어보면 별별 사람이 기가 차는 내용의 고백을 해오는데 인정많고 이해심있는 어떤 신부님이 괜찮다고 했다해서 보속도 안하고 대죄를 그냥 넘기려하는 사람이 많음을 그곳신부님은 안타까워 하였다. 돌아가서 그런 신부님 보게되면 「인기」에 신경 너무 쓰지 말라고 전해달라 하였다.
유고슬라비아는 6개의 공화국이 1945년에 연방정부를 만들어 통합되었고 다섯 민족에 그리스 정교, 가톨릭, 모슬램이 섞여있는 복잡한 나라로서 「메주고리에」에서 교통이 가장 잘 연결된 가까운 모스타라는 도시는 모슬렘사원으로 유명하며 얼마 전<국제화보(Nationl Geography)>에 소개 된적도 있다. 「메주고리에」라는 산골 마을은 약 4백가구의 주민이 살고있으며 교통이 불편하고 음식 사먹을 곳이나 숙박시설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수백만의 인구가 지난 6년 9개월동안 세계도처에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도저히 막을 길이 없던 공산당 정부는 국용방송에 두시간 정도 소개해야 했고 외화획득에 도움이 되자 현재 호텔 기초공사를 시작하고 있으며 노점상인들에게 성물판매를 허용함은 물론 우체국까지 만들었다. 예를들어 8일을 기다려야 했던 미국인에 대한 비자도 최근에는 공항에서 수수료 없이 90일을 발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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