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초의 바쁜 업무에 쫓기다 보면 일주일 정도는 눈코 뜰새 없이 세월이 지나가는 것은 학교 선생님들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일것이다. 학급업무를 대강 정리 하고나서 우리반 학생에 대하여 신경을 쓰기 시작할 무렵에 한 학생이 결석을 했다. 환경 조사서를 찾아보니 ㅈ의 집에 전화가 없는것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작년도 담임에게 물어보았더니 잘 모르겠다는 것이며 작년에도 결석이 몇번 있었으나 곧 학교에 나와 별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반 학생 중에 작년에도 같은 반에 있었던 아이들에게 물어 보았으나 아무도 아는 아이가 없었고 다만 ㅈ이 무척 내성적이고 자기나 집에 대해서는 이야기 한적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지난 오후에 ㅈ의 고모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ㅈ의 고모님과 만나 ㅈ에 대하여 자세히 듣고 나서야 그가 결석하게 된 사연을 알게 되었고 상담을 할 준비와 계획을 세웠다. ㅈ의 아버지는 남대문시장에서 의류업에 종사하셨는데 무리한 사업확장에다 불경기등으로사업에 실패하시고 지병이던 고혈압으로 갑자기 돌아가셨으며 2년후 ㅈ의 어머니 마저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ㅈ의 아버지는 월남 고한 이산가족이고 ㅈ의고모님과 ㅈ의 할아버지만 월남하셔서 자수성가 하시려고 애쓰신 분이고 지금은 고모님이 ㅈ과 여동생을 맡아기르고 계셨다. ㅈ의 고모님도 남편을 여의고 홀로 딸 하나를 기르고 계셨기 때문에 무척 어려운 살림이라는 것이다. ㅈ은 늘고모님에게 미안한 마음과 고마움이 뒤섞여 항상 불편해 했으며 친구를 집에 데리고 온 경우가 없으며 공부를 잘해서 고모님께 보답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에 올라 오면서 부터 부쩍 말이 없어지고 무엇인가 쫓기는 듯이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며 자기도 장사를 하기 때문에 아이들과 얘기할 시간도 없어 그냥 지나쳐 버린 경우가 많았다. 지금 ㅈ은 집을 나가고 없어 걱정스럽고 학교에서도 걱정하실 것 같아 찾아오셨다는 것이다. ㅈ의 고모님이 오셨다는 것은 비밀로 하자고 우리는 약속했다.

삼일후에 ㅈ과 마주앉게 되었다. ㅈ에게 환경조사서에 있는 그대로 밖에는 아는 것이 없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결석에 대한 이유를 물어보았으나 아파 결석했다는 것이다. 모른척 넘어가기로 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것인가를 분명히 약속하자고 하고 상담을 끝냈다. 매주 토요일 오후에 만나 이야기했으나 ㅈ은 자기 집안에 대해서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인내와 정성으로 공부얘기며 인생과 나의 경험 등으로 서로 얘기했다.

ㅈ이 입을 열기까지 꼭 한달 반이 걸렸다. ㅈ은 선생님을 속인것에 대해 사죄하며 울고있었다. 그날 저녁 나는 ㅈ을 데리고 우리집에 왔다.

함께 저녁을 먹으며 우리집 아이들의 형같이 지내주기를 원한다는 말을 하고 자주 놀러오라고 권유했고 우리 아이들도 같이 놀러도 가고 싶다고 했다.

ㅈ과 의논하여 고모님 댁에서 나와 여동생과 함께 자취할수 있도록 고모님께 말씀드렸다. 고모님 댁도 방하나에 4식구가 살고있기 때문에 좁고 공부하기에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모님도 찬성하셔서 학교 근처에 방을 구하러 다녔다. 할머니 한분이 아들 내외와 함께 사시는 알맞은 집을 구하게 되었다. 여동생은 할머니와 함께 자게하고 ㅈ이 방을 쓸 수 있도록 해주고 시간날 때마다 방문하곤 했다.

갑작스러운 부모님과의 이별과 그 충격을 어린 마음에 안고 산다는 것은 형벌이며 ㅈ의 성격과 심성에 어떤한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ㅈ은 열심히 살며 바르게 사는 것이 지하에 계시는 부모님께 대한 효도며, 고모님께 대한 마땅한 도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여동생을 지극히 사랑하여공부도 함께하고 지도해주고 있다.

지금도 그와 같은 처지에 있는 학생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우리가 할일은 부모의 역할이리라. 내 자녀만이 자녀가 아님을 모든 부모님들이 생각하신다면 우리 사회는 보다 밝고 환해지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