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나가사키현 이키츠키 박물관에 재현된 가쿠레기리시탄(숨은 그리스도인) 기도방.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가톨릭교회의 전래와 일본문화
일본교회의 삼중대화는 교황청이나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에서 거론하기 이미 오래 전 가톨릭 전래 초기에 시작됐다. 16세기 후반 전란이 계속되는 전국시대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1506~1552년), 알레산드로 발리냐노(1539~1606년) 순찰사로 이어지는 예수회 선교사들은 뱃길을 따라 고아, 말라카, 마카오를 거쳐 일본에 도착했다. 이들은 일본 현지의 문화에 대한 적응주의 선교정책을 채택했다. 이것은 아프리카, 인도, 남미, 동남아에서 유럽중심주의 포교활동을 펼치면서, 미개한 현지 주민은 일방적으로 교화되어야 할 대상이라고 인식한 유럽 우월적 선교방식과는 대조적인 것이었다.
16세기 말 일본 인구는 약 1200만 명, 가톨릭 신자 수는 약 40~50만 명으로, 전체인구의 4%에 달했다. 특히 최전성기인 1580년대에 100명 이상의 서양선교사들이 활동했던 규슈지역은, 전체인구 약 125만 명 중 가톨릭신자가 약 30만 명으로 이 지역 인구의 25%가 가톨릭 신자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영주가 세례를 받으면 영주민이 집단으로 세례를 받는 당시 일본의 관행으로 보아 신앙심과는 별개로 입교한 사람도 많았고 이 숫자가 상당히 부풀려졌다고 생각되지만, 단기간에 얻은 선교 성과로는 믿기 어려운 놀랄만한 외적 성장이었다.
하지만 신자 수가 급격하게 늘어난데 반해, 일본어과 일본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선교사들에게 난감한 문제들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유럽의 선교사들은 일본의 신불(神佛)숭배, 천황과 쇼군(將軍)의 지배질서, 그리고 가난한 삶 속에서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일본 특유의 풍습과 관행 등 문화적 여러 측면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들은 유럽과 이질적인 혼인문화, 특히 타종교 간의 혼인과 이혼 관습, 첩실의 세례문제 등 간단히 해답을 얻기 어려운 윤리·신학적 난제에 직면했다.
무엇보다 타종교 간의 혼인문제는 교회법에서 정하는 단일성과 불가해소성을 일본사회와 문화에 일방적으로 적용시킬 수 없는 상황이었고, 교회법으로는 적절한 구제책을 강구할 수 없었다. 결국 일본선교를 위해 발리냐노 순찰사는 교회의 관면을 자문하게 되고, 1612년 트리엔트공의회 교령에 대한 관면을 공포하게 된다.
이외에도 일본의 관습적인 고리대, 살인, 전쟁과 포로, 우상숭배와 미신 등 이질적인 일본문화에서 비롯된 관습들은 선교사들이 쉽게 풀 수 없는 어려운 문제들이었다.
■ 일본문화와 신불습합(神佛習合)
일본사람들은 유사 이래 거듭되는 지진, 화산, 태풍, 쓰나미 등 온갖 자연 재해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속에 살아왔다. 동시에 자연은 생명 유지와 풍요를 가능케 하는 감사와 경외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래서 자연의 삼라만상에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800만의 신, 즉 야오요로즈노가미(八百萬神)라는 독특한 자연신 숭배가 생활 속에 깊이 뿌리내렸다. 일본 고유의 민족 신앙인 신도(神道)는 800만 신(神)의 정점에 있는 태양신, 아마데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御神)의 후손인 천황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고, 일상 속에 신사참배를 생활화 했다.
한편 불교는 고대 천황제 중앙집권국가 형성시기인 6세기에 백제로부터 전래됐다. 8세기 나라(奈良)시대에 중국으로부터 화엄종이 들어오고, 중세 헤이안(平安)시대에 천태종(天台宗)과 진언종(眞言宗)이 들어와 일본불교의 주류를 형성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학승들이 경전과 교리를 연구하며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고, 귀족과 승려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귀족종교의 성격이 강해서, 일반 민중에 대한 포교활동은 거의 허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가마쿠라(鎌倉)시대에 들어서면서 일반 서민의 구원을 위한 불교, 즉 알기 쉬운 교리와 단순하고 실천 가능한 서민불교가 퍼져나갔고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종파가 정토종(淨土宗)이다. 정토종은 아미타불(阿弥陀佛)의 이름을 진심으로 부르기만 하면 정토 왕생한다(一向專修)는 신앙운동을 전개해 대중적 호응을 얻었는데, 그 후 아미타불의 본원 믿음(信)을 중시하는 정토진종(淨土眞宗, 죠도신슈)이라는 새로운 종파가 파생되었다. 유일신적인 정토진종은 서민불교로서 오늘날에도 일본불교의 최대 종단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신도와 불교는 오랜 기간에 걸쳐 자연스럽게 일상생활 속에서 융합되고, 상호간에 서로 구분하기 어려운 신불습합이 일본사회와 문화, 일반 민중의 생활 전반에 깊숙이 정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