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청소년들의 모진 십자가는 진학에 필요한 학업성적이다. 그렇기로서니 그 귀중한 목숨을 스스로 버리기까지 하다니, 누구를 원망하며 누구를 한(限) 해야할지 망연자실한 어버이를 연이어 두분을 만났다.
한 분은 고등학교 3학년 아들을 잃은 아버지인데 지난 9월 30일 피정 중에 만났다. 그룹토의 형식으로 10여명씩 모여앉아서 피정강론을 토의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심한 갈등을 겪어온 사실을 털어 놓았다.
아들의 자살경위와 자신이 겪은 아들 자살후의 후유증(?)을 비교적 담담한 태도로 술회했다.
상위권에 속했던 아들의 성적이 떨어지자 담임선생으로부터 꾸중을 들었다고 한다. 그 아들은 집 창고 안에 있던 농약을 마시고 죽었다. 어처구니가 없는 행동이다
그리고 또 한 분은 그 후 일주일이 지나서 만났다. 그 어머니는 심한 자책에 빠져 있었다. 왜냐하면 딸 아이는「공부 못하는 불효를 용서하라」는 쪽지를 남겼기 때문이었다.
『그저 저 하나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가면 뭐 부러울게 있겠어요. 내 한을 다 풀어주는 셈이지요. 내가 고생하는 게 다 누구 때문인데요』
눈물도 말라붙었는지 전화속의 쉰 목소리는 좌절과 체념에 빠진 중년여인의 모습이었다. 결국 이런 갈망 속에서 당신의 딸아이는 어머니의 욕구를 채워 드릴 수 없어 끝내 이 세상을 떠나고야 말았다는 것이다.
위의 두 사람은 부질없는 푸념을 털어내듯 안타까운 심정을 띠엄띠엄 술회했다. 말 안하고는 도저히 못견디겠다는 투로 듣는 이도 가슴이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학업성적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꾸중을 듣거나 체벌을 받는다고 다 죽음을 택하는 건 아니다.
우리 기성세대는 우리의 아이들을 어쩌다 이 지경으로 양육했을까. 청소년들과 상담하면서 가치관을 정립하는데 도움을 준다. 잘못된 것을 교정하도록 돕는다. 그런데 지금 이런 상담에서는 어찌해야 하는가. 아이들은 이미 가고없는데 어디다대고 말을 해야 한단 말인가
이 순간 내 아이의 일이 아니라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어버이들이 있다면 이런 사건은 절대로 근절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린 명심해야 한다. 내일의 일이 아니라 바로 오늘의 일이다.
『어머니、옥이도 (딸의 이름) 그런 어머니의 간곡한 소망을 잘 알고 있었을겁니다. 그리고 옥이는 어머니를 사랑한 게 틀림없어요. 그런데 다만 그 애정의 표현이 미숙했다고나 해야 할까요. 진정한 딸, 어머니가 원하는 딸은 공부만 잘하는 딸이 아니라는 걸 몰랐던 것이죠. 착한 딸, 성실한 딸이 먼저라는 걸 미처 깨닫지 못한 게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어머니가 실망하는 걸 차마 볼 수 없다는 어린 생각이 일을 저질렀던 겁니다. 더 큰 실망과 더 큰 아픔을 주게 된다는 걸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나도 그 어머니도 무거운 가슴을 안은 채 공허한 만남은 끝이 났다. 옥이의 속마음을, 수많은 옥이들도 가끔은 똑같이 느끼며 나날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옥이들은 어머니의 진정한 속마음도 잊지 말기를 간절히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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