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안식일이었다. 예수께서 안식일을 어겼다는 것을 유대아인들이 트집잡은 것은 벌써 두번 있었다. 한번은 여행 중 예수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안식일에 밀이삭을 잘라 비벼먹었다고 그것을 안식일 휴식법에 어긋난다고 우스꽝스러운 고발을 했을 때 (마르2, 23이하: 대목 53참고) 이고 또 한번은 예수께서 안식일논쟁을 미리가로 막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신 일 (마르 3, 1이하: 대목 54참고)이었다.
오늘의 논쟁은 예수께서 유도한 것처럼 보인다. 이 논쟁에서 예수께서 당신 자신이 생명을 주는 분이시며 심판자이심을 선언하려는 것이었다. 안식일은 유대인들에게 신성 불가침의 날이다. 그 날은 그들에게 휴일이란 뜻을 넘어서 하느님이 그 백성과 성약을 맺으신 징표로 정하신 거룩한 날이다.
『야훼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러라. 안식일은 나와 너희대대에 걸쳐 세워진 표이니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잘 지켜라. 그러면 너희를 따로 떼어 거룩하게 한 것이 나 야훼임을 알리라. 안식일은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다. 이날을 범하는 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하여야 한다. 그 날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겨례에서 추방되어 목숨을 잃을 것이다…이스라엘 백성은 안식일을 대대로 지킬 영원한 계약으로 삼아야 한다. 안식일은 나와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세워진 영원한 표가 된다』
(출애 31, 12~17)
이 말씀은 모세가 받은 십계명 중 제3계명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종교생활의 중추이며 그들의 사회생활지침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이와 같은 종교적 측면은 예수시대에는 한층 더 강조되어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구체적인 율법해설의 시행령이 39개조나 규정되었고 그 마지막 규정이 안식일에는 어떤 물건이든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기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물건을 옮기지 못하는 금지 명령도 숨막힐 정도로 세분화되어 가령 담요에 병자를 뉘워서 들고 가는 것은 허용되지만 병자없이 담요만을 들고가는 것은 금지되었다.
그러나 하느님이 당신 백성과 성약으로 맺으신 안식일 준수법은 그 근본정신이 인도주의적이라는 것이 구약 인도주의적이라는 것이 구약성서 신명기에 확실히 드러나 있다.『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엿새 동안 힘써 모든 생업에 종사하고 이렛날은 너희 하느님 야훼 앞에서 쉬어라. 너희와 너희 아들 딸, 남종 여종, 소, 나귀 그 밖의 모든 가축과 집안에 머무는 식객도 쉬어라』(5장12~14).
일주 일일 휴식의 법칙은 오늘날까지 모든 사람의 생활리듬으로 보편화되어 있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것은 바로 이와같은 신도들의 정신에서였고 사실 따지자면 노동으로 고치신 것도 아니었다.
유대아인들도 이점을 걸어 안식일법 파계로 몰지는 못하였다. 다만 담요를 걸어놓고 간 사람을 힐난하였다. 이 사람은 명백한 범법자이지만 그의 변명은 받아들여졌다. 자기를 고쳐준 사람이 들고가라고 해서 그랬다는 것이었다. 사실 들고 가라고 명령한 자체는 말뿐이기 때문에 안식일법 위반은 아니다.
그런데도 유대아인들은 치유자를 안식일법 위반자 예수의 증인으로 삼으려고 한다. 그 치유받은 자는 자기를 고쳐준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이라 예수께서는 어디론가 가버려 유대아인들과 불필요한 논쟁에 휘말리지 않아도 되었지만 예수께서는 성전에서 치유받은 사람을 찾아 가셔서 당신이 병을 고쳐준 사람임을 확인시키고 다시는 죄짓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여기서 질병은 죄의 결과라는 인간관계를 말씀하시려는 것은 아니다. 복음서에서 질병치유의 기적이 있을 때마다 그것은 예수께서 악의 세력에 대한 분쇄능력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과 죄를 사할 수 있는 하느님의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병을 고쳐주시고는『네 죄가 사하여졌다』또는『이 사람이 소경인 것은 이 사람의 죄 때문도 아니다. 오직 하느님의 영광 (=죄 사하는 능력) 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시곤 하였다.
하여튼 치유받은 자는 예수를 고자질하였고 예수는 영낙없이 유대아인들에게 안식일법 위반자의 굴레를 뒤집어쓰게 되었다.
베자타연못가에서의 치유이야기의 핵심은 예수의 안식일 논쟁에서 드러난다. 예수님의 논점은 이제는 인도주의적인 것이 아니고 신학적인 것이다.『내 아버지께서 언제나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할 따름이다』하느님께서 6일동안 창조하시고 7일째에 쉬셨다고 했지만 일을 멈추신 것은 아니다. 7일째로 창조된 세상을 움직이도록 섭리하시고 보살피신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일하고 계시다.
요한복음 초두에 말한대로「사람이 되신 말씀은 하느님과 같은 분이시며」그 분이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기회있을 때마다 가르치셨고 증명하셨다. 유대아인들은 이것을 의심하다가 심증을 굳히었고 하나의 율법 위반(안식일 위반)과 신성모독죄 (하느님과 같다고 자처함) 을 발견하였다.
복음사가 요한이 여기서 안식일법 논쟁을 실은 것은 이 복음서가 쓰여질 당시 새 교회에서는 이미 구제로 안식일법 대신 주님의 부활일 즉 현대의 주일을 주님 앞에서 쉬는 날로 대치하였기 때문에 교우들에게 주일을 지키는 것이 주님의 교훈을 따르는 것이라는 교리교육적 측면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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