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일은 한국교회가 설정한「평신도의 날」이다. 다양하고 분업화돼 가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교회가 진정한 몫을 다하기 위해서는, 역시 다양한 분야에 자리하고 있는 평신도들이 그들에게 내려진 탈란트(恩賜)를 다하여 봉사하는 길 밖에는 없다.
다행히 제2차 바티깐 공의회에서 평신도의 역할에 대해 강조하고, 한국교회에서도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많은 평신도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의 사명을 자작하고, 각 분야에서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고 있음은 감사하고 영광스런 일이다.
특히 오늘의 복음은 성직자나 수도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신자들에게 각각 내려주신 하느님의 선물인 탈란트의 활용에 대해 말씀하신다. 즉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가 아니면 안 될 특별한 일들을 맡기셨다. 많고 적고 간에 그 은사(恩賜)를 활용하느냐 않느냐는 오직 그의 자각과 노력에 달려 있다. 따라서 활용한 사람은 아버지 하느님의 영광에 동참하게 되지만, 활용하지 않는 사람은(특히 오늘의 복음에서처럼『내가 받은 탈란트는 겨우 한 탈란트인데 뭐』하고 하찮게 여기고 사용치 않은 사람은) 그가 가진 것까지도 빼앗기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한번 우리 신앙의 모습을 반성하자. 특히 가톨릭신자들은 열심 면에서 남에 뒤떨어지지 않으나, 전교활동이라든가 봉사활동에 있어서는 항상 소극적이다. 교회의 예식이나 전례에 참여하는 신자들은 많지만, 자신의 탈란트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의 수효는 아직도 적다.
사실 신앙이란 주어진 의무나 계명만 지키고, 열심히 기도를 바치는 것만이 아니다. 신앙은 활성화되어야 하고, 가정과 이웃, 나아가서는 사회 안에서 자기의 능력(탈란트)대로 사랑과 봉사로써 신앙을 드러내어, 소금과 빛 (마태오5, 13~16참조) 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신앙인에게는 죄가 윤리나 도덕적인 것에만 있지 않고,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자신의 재능이나 사랑을 활용하지 않는 데에도 있다. 즉 나태하다든가, 인색하다든가, 또는 자기의 재능을 스스로 비하(卑下) 시킨다든가 하는 것들까지가 모두 하느님께 대한 불충(不忠) 이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율법종교(律法宗敎) 와 사랑의 종교를 구분할 수 있다.
율법주의자들은 오직 율법을 지키는 것만으로 그들의 신앙을 다했다고 자만하면서,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을 멸시한다. 그러나 사랑의 종교(그리스도교)는 사랑 안에 살면서 불신자들에게까지도 그 사랑을 나눔으로써, 이웃과 화목하고 인류화합의 장을 여는데 있다.
그래서 오늘의 복음은 사랑의 종교의 특징으로서 의무를 소홀히 한 사람에 대해 경고를 한다. 한 탈란트, 그것을 무시함은 곧 하느님을 무시함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도 이 세상에서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인간의 존엄성을 다시 한번 일깨우신다. 자신의 한 탈란트를 스스로 모멸하거나 타인의 재능을 깔보는 따위 일은 모두「악하고 게으른 종」에 속한다. 그 결과는『누구든지 있는 사람은 더 받아 넉넉해지고 없는 사람은 있는 것마저 빼앗긴다』.
이 말씀은 언뜻 보기에 마치 자본주의의 병폐인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 처럼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영적인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수긍이 가는 지당하신 말씀이다.
사랑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사는 사람의 환희와 평화는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하늘의 보화다. 그 크고 넓으신 사랑이 얼마나 풍성하고 무한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고, 맛보면 맛 볼 수록 온 몸이 그대로 하나의 사랑안에 녹아 없어지는 것 같은 황홀한 행복감에 잠긴다.
그러나 겨우 주어진 계명이나 의무만을 수행하는 자는 첫번째에 맛보던 신앙의 기쁨마저 점점 사라지고, 나중에는 오히려 신앙이 짐처럼 느껴져, 마침내는 냉담하고 만다. 예수님은 바로 그 점을 말씀하신 것이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왔다』 (요한10, 10) 평신도의 풍성한 사명을 완수하여 풍성한 생명 얻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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