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마침내 1904년 2월 러시아에 대해 전쟁을 개시했다.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난 6월에 규장각의 직각(直閣)벼슬을 지냈다고 하는 초면부지의 신성균(申成均)이란 사람이 종현성당으로 찾아와 뮈텔주교를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사연인즉 일본의 침략을 당하고 있는 조선의 사정이 매우 어려우니 프랑스의 도움을 청하기 위해 프랑스 공사와 상의해 줄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주교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며칠후 그는 또 다시 와서 주교에게 프랑스 공사와의 회담 결과를 물었다. 주교는 현재로서는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다고 대답했다. 그후 신성균은 그의 친구인 성주(星州) 군수를 지낸 심선택(沈選澤)이란 사람을 주교에게 소개했다. 그들은 상해(上海)에 망명중인 파브로프(Pavlow 巴厚)주한 러시아 공사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다고 했다. 주교는 그들의 청이 하도 간절해서 거절하지 못하고 중재를 약속했다.
그들은 파브로프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 가지고 7월 13일 주교를 찾아 왔는데, 그 편지의 요지는 이러했다.
『노일전쟁이 시작된 후 대한은 아주 어려운 상태에 놓였다. 이제 일본의 전진을 막으려면 대한과 러시아 두 나라가 힘을 합쳐 서로 도와야 한다. 황제의 이러한 뜻에 따라 종현 천주교당을 통해 편지를 보낸다. 회답이 있기를 바란다』
뭬텔 주교는 불어로 번역한 신성균과 심선택의 편지와 함께 그것을 보내게된 경위를 간단히 설명하는 자신의 편지를 동봉해서 상해(上海)의 빠리외방전교회 경리부로 보내, 파브로프 공사에게 전달하게 했다. 9월18일 상해 경리부로부터 주교의 편지를 잘 받았고, 파브로프에게 보내는 편지도 전했다는 소식이 왔다.
뮈텔 주교는 파브로프 공사에게 편지를 보낸후 고종 황제에게 심선택과 신성균을 추천하는 글을 올렸다. 여기서 주교는 이두 사람은 양순하고 또 충성심이 지극하기 때문에 대한과 러시아·프랑스 세 나라 관계의 중요한 일에 보필을 하도록 추천하는 것이라고했다. 10월 14일 심선택과 신성균이 뮈텔 주교를 찾아와 파브로프로부터 회답이 없느냐고 물었다. 아직 없다고 했더니 그들은 또 편지를 보내겠다고 했다.
그들은 10월 20일 파브로프에서 보시는 두번째 편지를 갖고왔는데 여기서 그들은 일본이 대한을 보호한다는 구실아래 날로 압박을 더해가고 있으니 귀국의 보호를 또 요청하게 되었다고 했다.
뮈텔주교는 이번에도 그들의 편지를 불어로 번역해서 보냈다. 그리고 동봉한 자신의 편지에서 그들이 황제의 위임을 받은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그 심부름을 하는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어 11월1일 상해 경리부로부터 파브로프에게 편지를 전달했다는 소식이 왔다.
마침내 11월 25일 파브로프 공사로부터 뮈텔 주교 앞으로 회신이 왔다. 공사는 주교에게 두 사람의 편지를 번역하고 극비밀리에 전달한 수고에 감사한 다음 그들의 뜻을 러시아 황제에게 전했더니 대한의 립자(自立)으로 보호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그러한 뜻을 대한 황제에게 전하라는 지시도 받았다고 했다.
뮈텔주교는 12월 21일 파브로프 공사에게 감사하다는 자신의 편지와 함께 신성균과 심선택의 감사편지를 상해경리부 앞으로 보냈다. 그러나 러시아와의 약속은 결국 패자의 약속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소식이 항간에 누설되었던지 이상하게도 한성신보(漢城新報)는 바로 12월 21일자로 천주교를 야우하는 글을 실었다.
『아라사파 중에서 꾀가 많은 사람들은 법국 천주교(프랑스교회, 즉 오늘의 명동성당)에 들어갔는데 그 이유가 재미있지오. 아라사하고 법국은 동맹국인데 표면으로 아라사편을 들면 세상의 평을 듣기 쉽지만 법국천주교에 입교하면 종교문제가 되어 별로 이상하지 않고, 또 만약의 경우에는 교회로 도망하면 누구도 그들을 붙잡지 못할 것이니 그것이 묘책이라는 것이지오.
이 묘책때문에 천주교에 들어간 사람이 크고 작은 관리중에 참 많아요. 그 이름을 좀 대볼까요(閔丙奭, 朴齊純등 19명)기이한 것은 천주교를 받드는 사람 중 절반은 요사이 노룸꾼으로 변했지오. 종교와 도박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지? 글쎄요. 짐작이 잘 안가요.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면 대관들이 다투어 천주교회당으로 도망갈 것인데, 그때의 야단법석을 정황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요.
천주교도 이런좋은 신자가 있으니 영예 지극한 일이라고 할만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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