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마음 쓰라림
몇해 전에 나는 어느 종합병원의 응급실로 불려간 일이 있었다. 전부터 잘 아는 부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늘 말썽을 부리던 열여덟살인 그들의 외아들이 수면제를 많이 먹고 자살을 기도했다고 그 부부는 나에게 말했다. 그들은 특히 어머니는, 아들에 대해 대단히 분노하고 있었다. 외아들이 죽을지도 모르는 순간에 어떻게 그렇게 까지 분노할 수 있을까하고 나는 생각했다.
슬퍼하는 사람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 크게 분노하게 마련이다. 어떤 사람들은 잃음의 대상 뿐 아니라 보다 더 넓게 의료진이나 친척들이나 성직자 또는 장의사에게 분노할 수 있다. 소중했거나 사랑하던 사람이 죽었을 경우에 분노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때 사목상담자가 해야할 일을 슬픔에 잠겨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분노를 충분히 발산하게 하는것이다. 덮어놓고 참으라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어떤때 내담자에게 공감을 표시하는 뜻에서 상담자도 같이 분노의 표현을 하는 것이 치유적일 수 있다. 어떤때 사목상담자와 내담자의 윤리관이 달라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데、이런 경우에는 내담자를 같은 윤리관을 가진 상담자에게 보내야 한다.
어떤 때 내담자의 분노가 사목상담자에게 돌아오는 경우가 있다. 분노 뿐아니라 내담자의 사랑이 사목상담자에게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이런 현상을 전이 (轉移) 라고 하는데, 이런 때에는 사목상담자가 내담자의 분노나 사랑에 말려들지 말고 다만 그의 느낌의 표현에 귀를 기울여서 그 느낌을 발산시켜야 한다.
어떤 때 분노가 심해서 화풀이가 따로 필요할 경우가 있다. 실컷 울거나, 운동을 하거나, 생생한 공상을 하는 것이 치료적일수 있다.
내담자가 실컷 울고 싶을때, 울라고 하든지 또는 현명하지 못하고, 『울고 싶은 심정이 이해가 갑니다』라고 말하면서 울고 싶은 느낌을 공감해 주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강한 감정을 없애는데 생생한 공상이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 한번은 40대의 한 여자가 나를 찾아왔다. 17세의 그의 딸이 불륜의 임신을 했다는 것이었다.『신부님! 나는 평생 천주교 신자로서 교회에서 하라는 대로 착실히 살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우리 가정에 일어날 수 있습니까?』 이렇게 말하는 그녀는 교회에게, 아니 하느님에게 배반당했다는 강한 느낌을 표시했다.
나는 그녀의 말을 공감하는 마음으로 충분히 듣고 하느님께 대한 분노를 큰소리로 말해보라고 했다. 그리고 하느님의 입장에서 대답해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하느님이 그녀의 분노를 받아들이시고 용서해 주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나에게 말했다. 이와 같은 생생한 공상은 분명히 치료적 가치가 있다.
분노와 마음쓰라림은 좋은 징조일 수 있다. 이러한 강한 감정은 발산될 때 가끔 내담자가 치유되어 가고 있다는 징조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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