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있어 삶이란 무엇이며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은 인간에게 불안과 두려움을 주며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오지만 그리스도교 신자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새로운 삶에로 옮아가는 고귀한 의미를 지닌 것이다.
가톨릭의대 이경식 박사의 호스피스 진료수기「사랑이야기」「새로운 생명」「서로 사랑할때」는 이러한 관점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과정이며 영원한 삶에 대한 새로운 관문임을 환자들과의 임삼체험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전해준다.
수많은 말기암환자들과 가족들이 죽음 앞에서 느껴야했던 처절한 고통과 애절한 사랑이야기들,「임환자들의 죽음 앞에서 함께 죽음을 느끼며 울고 있을 때 그곳에 서계신 예수님을 체험했다」는 의사의 신앙적 고백들이 감동깊게 담겨있는 이 책들은 죽음에 대한 묵상서들과는 달리 또 다른「죽음의 신비」를 느끼게 한다.
암환자들과 가족들의 눈물겨운 사연들뿐만 아니라 죽음 앞에서 인간의 껍질을 벗고 벌거숭이가 될 때 새생명이 태어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이경식 박사의 진료수기는 또한 환자들이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새생명 속에서 그들과 함께 하시며 부활의 세계로 이끄시는 하느님을 알아보기 시작하며 이때 삶을 하느님의 선물ㆍ천국을 위한 준비기간으로, 죽음을 거쳐가야하는 하나의 관문으로서 받아들임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출판동기를『여기에 실린 이야기들은 실지로 내가 체험한 이야기들이다. 암환자들과 그 가족들의 고통 속에서 아름답게 피어난 사랑이야기들이다. 그 하나하나의 사건들은 마치 보석들과 같이 내 마음속에서 찬란히 빛나기에 그 아름다움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도리라 생각되었다』고「사랑이야기」머리말에서 밝히고 있으며「서로 사랑할 때」서두를 통해『나는 이글을 읽게 되는 이들이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서로 사랑할 때、그 사랑은 죽음을 이기고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게 한다는 진리를 알게되기를 기도드린다』고 바람을 적고있다.
이경식 박사의 진료수기 중 위암과 신장암으로 투병하다 사망한 김씨와 박씨정씨의 사례를 간추려 본다.
40대의 위암환자였던 김씨는 외과에서 위암수술을 받던 당시 이미 전이된 상태에서 생명연장을 위해 항암화학요법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부작용이 심해 더 이상 치료를 못받겠다고 하여 암전문의인 저자에게 보내졌고 힘든 항암치료를 잘 받아들여 얼마동안 사랑하는 아내와 지낼 수 있었다. 병이 다시 악화, 병원에 입원하게된 김씨는 이때 위암이 복강내에 퍼지고 장폐색으로 아무것도 먹을수 없는 상태였다.
통증은 없었기에 김씨는 다행히 자유스럽게 사고하고 말할 수 있었다. 김씨부인은 헌신적인 사랑으로 간호를 했다. 의료진들도 아내의 태도에 감동하여 정성을 보였다. 그 부인은 찡그리거나 귀찮아하는 내색을 전혀하지 않았으며 누구에게나 친절하였다. 김씨가 식욕은 있으나 아무것도 먹을 수 없어 힘들어 하자 김씨부인은 남편몰래 식사를 했고 그 앞에서는 아무것도 먹지를 않았다.
남편도 아내를 끔찍히 사랑하여『정말 저는 제 아내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려요. 제 아내는 저와 한몸이며 저의 이상적인 여성상입니다. 다시 태어난다해도 제 아내와 살고 싶어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김씨는 사망을 앞두고 심한 통증이 복부에 있어 매우 괴로워했다. 그 부인은 김씨의 임종이 가까워오자 남편의 귀에 대고『예수님을 잊지마세요. 우리는 또 만나요. 천국에서 만나 같이 살아요』하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남편은 희미한 의식 속에서『그래 알았어. 또 만나. 예수님、내 영혼을 받아주십시오. 사랑하는 내 아내를 돌보아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서 아름다운 작별을 하였던 것이다.
70대 노인이었던 박씨는 위암이 전이된 상태에서 입원하였다 이때는 이미 말기상태였다. 힘든 치료를 잘 참아내던 박씨는 경과가 좋아져 퇴원을 했으나 상태가 다시 악화돼 호스피스병동에 재입원 했다. 이때 박씨와 한방을 쓰던 환자가 예비자였던 관계로 박씨는 종교에 관심을 갖고 가톨릭교리를 배우는 영환자를 주의깊게 관찰하곤 했다. 또 호스피스ㆍ삶ㆍ죽음에 관한 책들을 열심히 읽던 박씨는 수녀들을 자세히 관찰하며 깊이 사색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던 어느날 영환자가 사망했다. 이는 박씨에게 큰 충격이었다. 죽음을 목격한 후 우울과 절망에 빠진 박씨는 집에 가기를 원해 퇴원을 하였다.
그러나 박씨는 상태가 안좋아져 다시 호스피스병동에 입원、마지막 날들을 보내게 되었다. 박 노인은 낯익은 수녀ㆍ간호사들을 만나자 매우 반가워했다. 그간 매우 쇠약해 있었던 박 노인은 치료가 시작되자 상태가 호전、입원당시의 호흡곤란이 좋아지고 말도 좀 더 잘하게 됐다. 임종을 준비하는 시한이 생겨 다행이었다.
박 노인은 그사이 수녀의 주선하에「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대세를 받았다. 박 노인의 얼굴에는 깊은 평화가 보였다. 대세를 받은 날 저자가 병실을 방문하자 박 노인은 손을 잡으며『나는 진리를 찾았소! 진리는 바로 예수님이오!』하고 말했다. 너무나도 숙연한 박 노인의 얼굴에서 마치 예수님 앞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잔잔한 평화와 기쁨의 미소가 흐르는 그의 얼굴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후로 박 노인은 참으로 평화롭게 지냈다. 방문 때마다 평화의 눈빛을 보내곤 하다가 며칠이 지난 뒤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건강한 생활을 해오던 정씨는 어느 날 소변에 피가 섞여나와 진찰을 하러왔다. 신장암이 전신에 퍼져있었으며 특히 폐에 광범위한 전이가 있는 것이 발견됐다.
큰아들이 의사였던 정씨는 병이 심상치 않았을 눈치채고 가족에게 병명을 물었고 의사아들도 여생을 정리하는 기회를 드리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사실대로 암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놀라지는 않았으나 허탈감에 빠진 것 같았다. 진료가 시작됐으나 상태는 점차 나빠졌다 병원에 입원하게된 정씨와 그 가족들은 죽음이 가까워옴을 잘 받아들였고 정씨는 마지막까지 가장ㆍ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모범을 보였다. 그 가족은 사랑하는 남편ㆍ아버지ㆍ오빠의 병간호를 위해서 하나가 되어 그 고통을 함께 나누고 짊어졌다. 부부간의 사랑은 모든 이를 감동시켰고 정씨와 그 부인은 서로를 걱정했다.
어느 날 정씨는 고해성사를 본 후 기쁨에 찬 모습을 보이며『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겼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이니 그분이 거두어 가시는 것을 원망치않습니다. 이제야 눈이 뜨였습니다. 제 죄를 사해주시고 새롭게 태어나게 해주신 주님을 생각하면 절로 눈물이 나옵니다』라고 정말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날 이후 정씨는 깊은 평화를 맛본 것 같았다. 항상 감사하며 모든 고통을 끌어안았다.
상태가 나빠지면서 정씨는 숨을 잘 쉬지못했고 산소호흡에도 피부는 꺼멓게 되어 의료진들을 안타깝게 했다. 죽음이 가까워오자 부인과 동생수녀에게 정씨가 사망하리라고 말해주고 임종을 잘 맞이할 수 있도록 방을 옮겼다 방에 옮기자마자 정씨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었고 동생수녀는 정씨 귀에 입을 대고는『오빠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기세요. 천국에서 또 만나요』하고 소리쳤다 모여있던 사람들이 임종기도를 바치는동안 정씨는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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