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전통에 의하면 부활성야 미사가 시작되어 사제가 『예수께서 부활하셨습니다』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내안에 우리 공동체 안에 어떤 모습으로 계셔야하고 또 실제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계신지 살펴보도록 하자.
『예수께서 왜 사람이 되시어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하고 물을 때 『우리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라고누구나 쉽게 대답을 하게 된다. 얼마나 강론시간에 들었는가? 그러나 엄밀히 따지자면 이 대답은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데에서 오는 결과이지 그 원인은 아니다.
예수께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신 것은 아담과 하와의 불순명으로부터 나온 분리(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를 꿰매서 인간이 하느님의 생명에 다시 참여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 인간의 죄를 용서해주고 구원시켜야만 인간이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하느님의 생명은 어떤 삶을 말하는가?
하느님의 생명은 성부ㆍ성자ㆍ성신 성상위의 사랑의 삶을 나타내므로 예수께서는 하늘에서의 성삼위의 사랑의 문화를 이 세상에 가져오기 위하여 오셨고, 인간들은 하늘의 성삼위의 관계를 이 세상에서 이루기를 바라고 있으므로 치프리아노 성인은 『교회는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일치에 바탕을 두고 모인 백성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세상의 모든 이들이 사랑ㆍ행복ㆍ평화를 애타게 갈망하며 찾고 있다. 이런 결실을 맺기 위하여 많은 이들이 개인적ㆍ사회적ㆍ국제적으로 크고 작은 만남, 회합, 조약을 맺고 연설을 하는 등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노력을 하고 있으나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오는 것은 드물다
목표는 좋으나 합당한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십자가 없는 부활을 원하고 수고하지 않고 열매만 바라기 때문이다. 밀알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않는다면 이름답고 온전하기는 하지만 자기홀로 남아있게 된다. 그러나 만약 죽는다면 그 수가 붙어나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요한 12,24 참조)
예수께서 이 세상에 가져오신 성삼위의 생명에 참여하기 위하여는 먼저 우리 자신이 죽어야 한다.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가 된 우리는 이미 예수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과연 우리는 세례를 받고 죽어서 그 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예전의 우리는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죄에 물든 육체는 죽어버리고 이제는 죄의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로마 6,4~6)라는 바오로사도의 말씀처럼 나의 죄, 이기심 질투심, 집착, 아집, 거짓, 게으름, 변덕스러움 등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야한다.
나의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 우리는 예수께서 이 세상에 가져오신 행복에 도달하기 위한 유일한 길임을 알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 자신을 비우지 않고는, 순교자들처럼 나의 생명을 요구하지 않는 시대이지만 나의 작은 생각을 버리고 애착을 끊고, 선입관을 버리고, 하기 싫지만 행하고 하고 싶지만 포기하는 삶이 될 적에 부활하신 예수께서 내 삶의 맨 윗자리를 차지하시는 부활의 삶이 될 것이다. 나 자신이 이웃과 다투거나 불편한 관계가 되었을 적에 성체 안에 예수님이 멀리 느껴지고, 예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음을 느끼고 기쁨을 잃어버리고 감사할 줄 모르는 어두움의 생활이 되었던 것을 체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똑같은 예수께 하늘에도, 성체 안에도, 형제 안에도, 내 안에도 계시기 때문이다. 똑같은 예수님이신데 어느 예수님께는 잘해 드리고, 어느 예수님은 냉대하고 박해하는 어리석음을 우리는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가져오신 성삼위의 사랑의 삶을 산다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우리들 사이에 모시고사는 삶을 뜻한다. 『둘이나 셋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마태오18,20)라고 하신 말씀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을 모시고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삶을 뜻한다. 예수께서 부활하시기 전에 십자가를 통하셨듯이 우리각자도 자신을 비우고 낮추면서 온전히 내어놓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이웃 안에서 예수의 모습을 바라볼 적에 특히 이웃의 영신적, 육체적 어려움에 온 마음을 다하여 참여하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우리 모두가 형제, 자매라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하여유일한 기도로「주의 기도」(우리 아버지)를 주셨고 우리 형제ㆍ자매들이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를「내」계명이고「새」계명이라고 하시면서『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주셨다. 특별히 성체는 우리가운데 계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현존으로서 우리자신을 이웃이 먹을 수 있는 음식과 음료수로 내어놓음으로써 우리가 하나되기를 원하신다.
이 세상의 모든 이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원하고 있다. 『자기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남에게 줄 수 없다』는 우리교회의 지혜로 가득 찬 격언처럼 내가,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그분이 주시는 평화, 기쁨, 자유 속에 살지 못한다면 어떻게 이웃에게, 세상에게 예수님을 줄 수 있을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각자의 삶속에서, 우리공동체 안에서 온전히 당신의 권능과 사랑을 발휘하실 수 있도록 우리 삶의 맨 윗자리를 그분께 내어드리도록 하자. 그럼으로써 우리 모두 마음으로부터 나오는『예수께서 부활하셔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대답드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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