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합식량협의회는 『아무리 줄잡아 추산한다 하더라도 오늘의 세계 내에는 그런 사람들이 가히 4억6천만을 넘고 있으며 그들의 숫자는 증가하고 있다. 그들 중의 적어도 40%가 어린이들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그런 사람들」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같은 UN문서는 계속해서 설명하기를, 그들은 『영속적으로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이며 정상적인생활을 영위할 자신의 능력을 구현할 수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실과 그 밖의 서계기아문제에 관한 사실들에 대하여 나만큼 혹은 나보다 더 잘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오늘아침 이곳에는 틀림없이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기아에 관하여 환등이니 녹음이니 영화니 도표니 서적이니 연설이니 결의안이니 하여 어쩌면 시상할 정도로까지 맹렬한 추궁을 받아왔습니다.
미국에서만 하더라도 수백개의 기구와 단체와 기관들이 있어서 직접 간접으로 기아를 퇴치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로마에서는 국제연합이 3천명이상의 사람들을 채용하여, 전세계의 기아와 싸우기 위하여 연구하고 노력하는 일에 전적으로 종사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세계가 점점 더 부요해져감에 따라 현실은 더욱 악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죤F·케네디는 대통령으로 취임할 때에 미국국민 앞에 두개의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그 하나는1960년대가 끝나기 전에 인간을 달에 보내는 일이요, 다른 하나는「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기아를 퇴치하도록 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의 현대문명에 대한 슬픈 노평이 됩니다마는, 기술적이며 과학적인 첫째목표는 장엄하게 성취된 반면에, 보다 인도적이며 사회적인 둘째목표는 더욱 더 붙들기 어려운 먼 곳으로 물러났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해결하기에는 문제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까.
물론 기아와 영양실조는 널리 만연되어 있으며 예측 할 수 없는 기상에서부터 급격히 증가하는 인구에 이르기까지 온갖 요인들이 복합되어 일어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편 전문가들이 말해주고 있는 바에 의하면, 실은 식량자원을 잘 이용할 수만 있다면 훨씬 더 큰 숫자의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가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결방안에 참수해야 할지를, 어디서 출발해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입니까? 여기에는 또다시 여러 가지 복잡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및 심지어 문화적인 요인들이 있는 것이고, 세계 기아문제에 대하여 하나의 영속적인 해결책을 찾아내자면 이런 요인들이 고려되어야합니다. 그러나 인간을 달에 도달하게 하기위하여 우리들 자신과 우리의 방어하기위하여 우리가 자원을, 기술을, 인간 독창성을, 그리고 사회공학을 그다지도 눈부시게 개발해온 터에 단순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혹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는 것은 맑은 양심을 가지고는 할 수 있는 말이 못됩니다. 근본적으로 부족한 것은 자원이나 기술이나 지식이 아닙니다. 그러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무엇인가 하고자하는 우리의 의지일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원과 기술과 지식을 정돈하여, 비단 우리가 우리들 자신의 필요와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것만이 아니라 또한 사실로 타인에게 가장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도 충족시키고자하는 우리의 결의일수밖에 온 사람이든 가난한 나라에서 온 사람이든, 우리는 가장 궁핍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필요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임에 있어서, 그리고 이러한 자주 진지하기는 하나 막연하고 무력한 우리의 관심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김에 있어서, 충분한 동기를 가지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세계기아의 문제는 일차적으로는 경제적인 문제나 사회적인 문제나 심지어는 정치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도덕적인, 정신적인 문제입니다.
세계의 식량기근은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시었듯이 인간이 단지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서도 살줄을 알 때에 비로소 해결될 것입니다. 순전히 자기이익이나 탐욕이나 야심만이 아니라 내적인 사랑의 법이 우리의 개인적 및 집단적인 존재를 지배하고 우리의 정책의 정신이 되며 우리의 사회적인 구조와 제도를 규제할 때에 비로소 해결될 것입니다. 식량에 대한 세계의 갈증은 인간이 하느님을 갈망할 줄 알 때에,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의 정의에 굶주려할 줄 알 때에 비로소 충족될 것입니다.
<1976년 필라델피아성체대회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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