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자 요한의 마지막 증언
(요한 3장 22~30)
마태오, 마르꼬, 루가, 삼복음서는 예수의 전도생활을 갈릴레아 땅에서 시작하신 것으로 전하고 있다. 그전에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성전을 정화하고 어느날 밤 니꼬데모와 대화하셨다. 요한 복음서는 이 일이 있은 후 갈릴레아를 가시기 전 얼마동안 유다땅에 머무신 일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이 일이 있은 뒤에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다지방으로 가셔서 그곳에 머무시면서 세례를 베푸셨다』한편 살림에서 가까운 애논이라는 곳에 물이 많아서 세례자 요한은 거기에서 세례를 베풀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세례를 받았다. 이것은 요한이 감옥에 갇히기 전의 일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니꼬데모와의 대화 이후 예루살렘을 떠나 갈릴레아로 가시기 전에 유다땅에 얼마동안 머무르신 것이다. 예루살렘은 유다의 수도이니까 예수께서는 아직도 유대아인의 나라에 머물고 계셨던 것이다. 그곳에 머무르시는 동안 예수께서는 당신 제자들과 함께 계셨고 그 제자들은 세례를 베풀었다고 하였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실 때에는 가족들과, 새로 만난 제자들과 함께 가셨다. 그들 중 어머니와 가족들은 고향인 갈릴레아로 돌아가셨을 것이고 베드로와 안드레아, 필립보, 나타나엘 등 첫 제자들은 생업에 매인 사람들이라 각기 자기집을 오가며 예수와 접촉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예수께서 하느님의 사업을 세상에 펼 원대한 계획을 눈앞에 두고 아직도 동조자들이 더 필요하셨다. 예수께서 갈릴레아에서 전교를 시작하기 전에 유다땅에 머무신 것은 거기서 협력자들을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곳에서 모은 새제자들은 유대아인들이 있었고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도 있었다.
예수를 따르는 유대아인들 중에는 예수께서 돌아가신 후에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내어달라고 청하였던 아리마테아의 요셉이라는 사람도 이때 알게 된 사람이다. 그는 산헤드린 의회의 의원으로 하느님의 경건한 사람이었다(마르 15장 43). 예수께서는 아마도 이 사람 집에 머무셨는지 모른다.
그리고 유다 지방에서 세례를 베풀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4장 2절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예수께서 직접 세례를 주신 것이 아니고 실은 예수의 제자들이 베풀었다. 이곳이 어디였는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으나 살림이라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세례자 요한은 처음 세례를 베풀던 요르단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살림 근처 애논이라는 곳에와서 세례를 베풀고 있었고 그와 함께 있던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의 일행도 세례를 베푸는 것을 보고 요한에게 이 사실을 알린 것으로 보아 요한은 그리 먼 곳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4세기에 팔레스티나의 가이사리아의 주교였던 유세비오는 쉬토폴리스 남쪽 베이산이라는 곳이 예수의 세례가 베풀어졌던 곳이라고 했다. 이 지역은 샘물과 저수지가 많은 곳이었다. 요한이 세례를 베풀던 애논은 샘골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요한에게 와서 세례를 받았다. 당시의 세례는 온몸을 물에 담그는 침수세례였기에 큰 물이 있는 이 지방이 적지였을 것이다. 이렇게 요한의 세례를 받는 사람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 일행이 세례를 베푸는데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든다고 항의 조로 알린 것을 보면 예수께서 세상에 임했을 때에 사회적 변혁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을 복음사가 요한은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대아인 사이에 정결예식에 관한 논쟁이 벌어졌던 것이다. 구제도와 새제도 사이의 논쟁이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선포하는 더 새로운 제도는 성령의 세례였다. 그 성령의 세례는 물로 씻는 세례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고 그 세례를 영성화하는 세례이다.
성령의 세례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높아 달렸다가 부활하신 후에 그리스도 신자들이 받게될 세례이다. 아직 예수께서 영광을 받지 않으셨기 때문에 성령이 사람들에게 와 계시지 않았다고 요한 복음서는 말하고 있다(요한 7장 39). 세례자 요한이 성령의 세례를 알지는 못하였지만 예수가 예언된 메시아라는 것과 자기는 그분이 오시는 것을 준비하는 사명을 띤 사람이라는 확신에는 추호의 변함도 없었다.
그래서 투덜거리는 자기 제자들에게 다시한번 예수께 대한 증언을 천명했다. 이번에는 신랑과 그를 축하하고 기뻐하는 들러리라고 설득하였다. 신부를 맞을 사람은 신랑이며 들러리가 그 신랑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하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신랑의 친구는 신랑을 마음으로부터 축하하고 함께 기뻐해야 하지 않겠는가. 혼인은 인류가 시작될 때부터 인생의 즐거운 때를 표시하는 상징이다. 구약성서에서는 하느님과 그 백성과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에 비겨 표현하는 공통된 풍유(諷諭)를 세웠다.
그래서 하느님은 신부인 당신 백성에게 충실성을 요구하였고(예레 2장2) 신부인 백성에게 사랑을 표시하며 보살펴 줄 것을 맹세하셨다(에제 16장18). 이러한 신부 신랑의 표상은 신약시대에 와서. 사도들은 예수와 당신교회의 관계를 신부와 신랑으로 비겨 표현하였다.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서를 쓰면서 혼인잔치의 기쁨을 천상 잔치의 기쁨으로 바꾸는 것을 주된 사상으로 삼았다. 신랑이 신부를 맞게 되었으니 들러리는 사라질 때가 온 것이다.
<서울가톨릭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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