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진리를 초기 그리스도 교인들은 분명히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말해주고 있는 바에 의하면 그들은『한 마음이 되어 날마다 열심히 성전에 모이고 집집마다 돌아가며 빵을 나누었다』했습니다. 그리고 이 구절은 즉시 계속해서 이르기를 그들은『기꺼이 관대하게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각자의 필요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사도 2, 45~46)고 했습니다. 이구절의 메시지는 분명하고 단순합니다. 그들이 아무도 모자라는 사람이 없도록 자기가 가진 것을 공동으로 나누어 가진 것은 함께 기도하고 함께 성체성사에서 주님의 빵을 나누어 먹는 일의 전제조건일 뿐 아니라 그 직접적인 결과였던 것입니다. 같은 메시지를 성 요한과 성 바오로는 코이노니아(Koinonia)라는 한단어로 힘차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상통」「일치」「사귐」「친교」따위로 번역될 수가 있는데 두 분이 다 같은 말을 사용해서 세 가지의 다른 수준의 친교관계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와 아버지하느님과의 친교: 『만일 우리가 어두움 속에서 살아가면서 하느님과 사귀고 있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진리를 쫓아서 살지 않는 것입니다』(I요한1, 6)
둘째로 성체성사를 통한 우리와 그리스도와의 친교:『우리가 감사를 드리면서 그 축복의 잔을 마실 때에 우리는 그야말로 그리스도의 피를 나누어 마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우리가 그 빵을 뗄 때에 우리는 그야말로 그리스도의 봄을 나누어먹는 것이 아니겠습니까?(I코린10, 16)
셋째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가지기에 이르게 하는 우리들 각기 상호간의 친교:『성도들의 딱한 사정을 서로 돌봐주십시오』(로마12, 13)
그러나 중요한 점은 세 가지의 친교관계가-모두다 Koinonia라는 같은 단어로 표현되거니와-실은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동일한「친교」나「서로 나눔」의 다른 측면이며 서로 떼어 놓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들 상호간의 친교가 없이는 하느님과의 친교관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성체성사는 이 친교관계를 표시하는 동시에 실지로 실현하도록 도와주는 가시적인 유대입니다. (교회일치 교령, 2항 참조). 그것은 우리가 하느님과 일치하고 같은 인간들과 일치함을 실효적으로 상기시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성체성사의 사회적인 차원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점을 재발견하는 것은 오늘날 지대한 의의가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영성체가 형제애와 일치의성사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함께 한 식사에 참여하여 같은 식탁에서 같은 빵을 먹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 바오로가 분명히 말해주고 있듯이, 『빵은 하나이고 우리 모두가 그 한 덩어리의 빵을 나누어먹는 사람들이니 우리 많은 사람이 다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I코린10, 17) 바꾸어 말해서 우리는 성체성사에서 비단 그리스도만을, 몸의 머리만을 받아 모시는 것이 아니라 그 지체들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에서 직접 실천적인 결론이 나옵니다. 성 바오로가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고 있듯이, 『하느님께서는…몸의 조화를 이루게 해주셨습니다.
이것은 몸 안에 분열이 생기지 않고 모든 지체가 서로 도와나갈 수 있도록 하시려는 것입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할 때에 다른 모든 지체도 함께 아파하지 않겠습니까?』(I코린12, 24~26)어디서든 몸 안에 고통이 존재한다면, 어디서든 몸의 지체들이 궁핍하거나 압제를 받고 있다면, 우리는 그 동일한 몸을 받았고 그 동일한 몸의 일부이기에 직접으로 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형제를 따돌리고『나는 네가 필요 없다. 너를 도와주지 않겠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로써 이제 어째서 기아에 관한 심포지움이 세계성체대회의 필요불가결하고 중요한 일부가 되어야 하는가하는 이유는 명백하다고 하겠습니다. 12년 전 봄베이에서열린 제38차 세계성체대회의 일부였던 식량과 건강문제 세미나의 개회사에서 그라시아스(Gracias)추기경은 말하기를『동시에 물질적인 빵을 제공함이 없이 만인을 영적인 빵에 참여하도록 일치시키기를 바란다는 것은 하나의 환상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그 어느때 보다도 오늘에 있어서 더욱 옳은 말입니다. 우리는 궁핍한 사람들과 더불어 생명을 위한 빵을 나누어 가지지 않고서는 생명의 빵을 온당하게 받아 모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관심은 바로 그 자체의 성질상으로 세계적인 것이 아니면 안 됩니다.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몸이 모든 백성들에게 속하는 것이고 인종이나 재산이나 계급이나 문화와 같은 어떠한 장벽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면, 당연히 그 지체들에 대한 우리의 헌신도 꼭 같이 보편적이라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둘러앉아있는 주님의 식탁은 세계의 식탁입니다. 지금의 우리의 이웃은 비단우리가 길가에서 지나치는 강도질 당한사람만이 아닙니다.
부풀어 오른 배를 가지고 푹 꺼진 눈을 가지고, 질병이나 격렬한 고통으로 신음하는 육신을 가지고, 우리의 텔레비전 화면을 가로지르고 있는 수많은 남녀노소들도 역시 우리의 이웃입니다. 이들은 우리의 형제자매들이며, 우리는 성체성사에 의하여 이들과 결합되어 있는 것입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