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유지들의 발기로 여자중학교가 설립되었으나 경제난과 인재부족으로 난관에 처해있었다. 이무렵 스페인어말문이 트인 나는 이 학교 개교 때부터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 이 학교를 인수하기 전 로이트너 신부님은 내게 의견을 물어왔다. 나는 이곳의 여성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으므로 어떻게든 이 학교를 살려야한다고 강렬하게 주장했다.
로이트너 신부님은 학교를 인수했고 나는 학교에 매점을 열어 그이익금으로 가난한 아이들 10명에게 장학금을 줄 수 있었다. 하이센베르그 신부님이 20여명의 조합원으로 시작한 신용조합도 신부님에 대한 신뢰가 컸기 때문에 급격히 발전했다. 이곳의 정미소는 대개 중국인들이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은 갑부로 알려져 있다. 농자금이 필요한 농민들이 이들에게서 비싼 이자로 농자금을 융통하다가 신용조합에서 저리융자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뜨개질과 바느질을 가르쳐주겠다니까 처음에는 호기심에 마을마다 30여명씩 몰려들었다. 점차 상당수가 떨어져나가고 5, 6명씩 남아 꾸준히 뜨게질을 배워 조끼, 스웨터, 침대보 커텐, 애기 옷 등 작품들을 만들었다. 난생처음 자기네 손수 옷을 짜낸 부인들이 스스로를 대견해 했고 아내로 부터 조끼선물을 받은 남편도 감격해서뜨개질을 배운다면 자전거로 아내를 태워다 주기도 했다.
이렇게 작품들이 모이자 본당신부님은 전시회를 열자고 했다. 2년간 8개 마을에서 나온 작품들을 모았다. 본당 내에 각 공소별로 대발을 세워서 어설픈 작품이나마 보기 좋게 진열해놓고 구경 오도록 소문을 냈다. 사흘 동안 열린 이전시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구경했다.
본인들은 물론 주위 사람들도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데 대해 놀라워했으며 남자 중에서도 뜨개질을 배우겠다는 사람이 나왔다. 물건을 보고 사겠다는 사람도 있었으나 난생 처음으로 만든 작품을 아무도 팔려하지 않았다.
하이센베르그 신부님이「다울레」지구 지구장이 되시고 동시에「다울레」본당을 맡게 되어 떠나셨다. 로이트너 신부님이 뒤를 이어「살리트레」본당 신부님이 되셨다가 오지리에서 데려온 제자신부에게「살리트레」본당을 맡기고 로이트너 신부님과 나는 정든 살리트레 사람들과 그곳에서 벌인 모든 일들을 떠나「베드로 가르보」본당으로 이동하게 됐다. 「과야길」대교구 대주교님께서『이 본당은 나의 아픈 이빨과 같다』고 하시면서 로이트너 신부님과 내가 이곳에 와서 일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이 지역은 경제적으로 급성장해서 신앙적으로 기들을 잡아주지 않으면 향락과 공산주의 사상의 침투를 막기가 어렵고 여러 지역의 경계에 놓여있어 그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제부족으로 본당은 버려져있었다. 「베드로 가르보」본당 소속 주민은 5만명이고 90여개 마을로 구성되어있다. 주민 1만여명인「살리트레」에 비하면 엄청나게 큰 곳이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몰몬교가 성했다. 일주일 동안 본당상황을 파악한 후 성당의 유지들을 모아 회의를 열었다. 첫영성체 교리반과 성인교리반을 조직했다. 여기서 성인 교리반은 어디까지나 세례 받은 신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태어나면 모두가 세례를 받고 언젠가 첫영성체 행사를 치르고 죽을 때가 되면 다시 성당을 찾는 것이 에콰도르신자들의 생활하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은 전혀 없고 일생동안 종교행사 몇 가지를 치를 뿐이다. 혼배라는 것은 아예 예식도 없다. 이런 신자들을 상대로 로이트너 신부님은 로이트너 신부님은 성인 교리반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나는 우선 사회사업보다 대주교님의 뜻을 받들어 사목을 돕는데 만 전념하기로 했다. 나는 성인교리를 맡는 한편 첫영성체 준비반을 맡을 교리교사들을 지도하고 본당 안에 두개의 레지오마리애 쁘레시디움을 창단했다.
미사해설과 성가선창도 해야 했다. 나의 시원찮은 스페인어 발음은 언제나 말썽이어서「그리스도는 내구원의 바위」라는 노래를 부를 때 그 바위라는 발음을「로까(roca)」라고 해야 하는데「로까(loca)」로 발음하여「그리스도는 나의 미치광이」로 만들어버려 신부님과 사람들을 웃겼다.
본당신부님께서는 흩어져있는 90개 마을을 묶어 50여개 공소를 조직하기로 했다. 신부님과 안내인들 두어명과 더불어 공소에 나가 실태조사를 했더니 25년 전 스페인신부님이 세운 공소가 6개있었다. 그 후 25년 동안은 완전한 공백상태였다. 따라서 격식을 제대로 갖춘 세례식도 없었고 위급할 때『물 뿌린다』는 자기들 나름의 불완전한 세례예식이 있었을 뿐이다. 25년 동안 몰몬교ㆍ개신교계통이 거쳐 갔기 때문에 처음에는 가톨릭신부가 설마 여기까지 우리를 찾아 왔으랴 하는 눈치로 경계를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또 신부님의 엄숙한 미사를 대하고는 경계심을 풀었다. 일주일동안 4, 5개 공소를 돌면서 한 달 동안 기본적인 집중교리를 한 후 정식세례를 베풀었다. 세례를 받으면 즉시 성체를 영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두 달 동안 더 교리를 배운 후 비로소 성체를 모시게 된다. 이들 중 14세 이상 성인들을 가려 견진교리를 한 후 견진성사를 준다.
25년간의 공백 때문에 성사에 참여한 경험이 없어 모처럼의 세례식은 긴장과 당황으로 많은 촌극을 빚기도 한다. 예를 들면 아기에게 부모의 성을 붙이고 양쪽이름 두개씩을 붙여주는 풍습이 있어 이름이 4개가 된다. 그래서 아기이름을 제대로 외지 못하는 부모가 있는가하면 세례 받을 아기 이름을 호명할 때 긴장한 나머지 안고 있던 아기를 오히려 내려놓고 부모만 튀어나온다든가 막상세례를 주려고하면 마이크를 잡고 있는 해설자에게 머리를 들이밀고 주례신부에게는 엉덩이를 들이밀어 엄숙한 세례식 내내 본당신부님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 이렇게 목표 50개 공소 중 현재 24개 공소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현재 이 24개 공소에는 규칙적인 교리가 계속되고 있고 정규적인 공소예절이 있으며 22개 레지오마리애 쁘레시디움이 조직되어 활동 중이다. 공소에는 모일장소가 없는 곳이 많다. 교회측에서 쉽게 모일장소를 마련해 줄 경우 사람들은 교회에 대해 능동적인 태도를 가지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에는 야외에서 모임을 갖는다. 뜨거운 햇볕과 도로변의 먼지를 뒤집에 쓰면서 모임을 갖기 때문에 모두들 불편함을 느낀다. 본당신부님은 자치적으로 일하도록 유도, 공소사람들이 공소터를마련하고 벽을 쌓아올리면 본당측에서는 비로소 공소지붕을 얹어 마지막 마무리를 해준다. 한국에서 원조 받은 돈으로 로이트너 신부님은 7개 공소의 지붕을 얹어주고 신자들에게 한국교회 원조로 이루어진 것임을 강조하셨다. 폐허화된 공소를 재건하는 것을 포함, 현재까지 12개의 공소집을 마련했다.
공소에 나갈 때는 신부님이 나와 다른 교리 교사들을 짚차에 태워다 준다. 각기 맡은 공소에 흩어놓으셨다가 일이 끝나면 데리러 오곤 했다.
그동안 신부님께서도 다른 공소에서 일하시는 것은 물론이다. 어떤 때는 데리러 올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을 때가 있다. 몇시간 후 고장난차를 버리고 신부님이 걸어서 나타난다. 길도 제대로 없는 발길을 6km정도 걸어오면 밤12시가 되는 것이 보통이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면 억수같이 퍼붓기 때문에 비를 흠뻑 맞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나마 어설프게 나있던 길이 물에 잠겨 몇 시간을 헤매기도 한다. 공소에 나갈 때도 마찬가지다. 한번 차가 고장 났다하면 모든 행사가 서너 시간씩 미뤄지는 것은 보통이다. 그래도 주민들은 꼼짝 않고 그 자리에서 투정한마디 없이 기다린다. 그 인내심에 탄복할 때가 많다. 불편하게 사는데 익숙해서 그런 것 같다.
처음엔 고물 짚차 한대에 11명 내지 12명을 태우고 다녔다. 이 짚차는 결국 폐차되고 현재 폐차 위기에 있는 고물차 1대와 오스트리아 미바에서 보내온 2대를 포함, 모두 3대의 차량이 풀가동되고 있어 그만큼 기동력이 늘어났다. 한국 미바와 오스트리아 미바에서 보내준 돈을 합해서 차량 1대를 더 구입할 예정이므로 나도 운전을 배웠다. 혼자 시골길을 달릴 땐 겁이 나지만 걸어 다닐 때를 생각하면 한없이 편리하다.
통신수단이 미비해서 외국에서 오는 우편물은「과야길」시 중앙우체국에 본인이 직접 가서 찾아와야 되는 실정이고 국내 우편물도 1달 이상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전화역시 대도시에만 있어서 시골에는 통신수단이 거의 없다. 「과야길」대교구에는 가톨릭방송국이 있다. 대주교님이 직접 매일아침 6시부터 30분 동안 교구 내 소식과 사목계획을 짧게 전해주시고 교리를 해주신다. 이곳에서 일하는 우리들의 하루일과는 아침6시 이 방송을 듣는 것으로 시작된다.
월요일 아침7시 기도로 일주간의 사목계획, 주안점을 두어야할 교리내용, 정보교환, 문제점, 애로사항 등을 나누는 사목회의가 시작됨으로써 일주일간의 활동방향이 설정된다. 이 자리에는 본당신부님, 종신부제님, 콜롬비아에서오신 새 신부님 이종창 신부님(마산교구)나, 다섯 사람이 참석한다. 우리는 금요일마다 아침7시부터 8시까지 성체 앞에서 함께 침묵기도를 한다. 목요일저녁에는 저녁미사 후 본당 전신자들이 1시간 성체조배를 한다. 신부님들은 평일에도 미사를 두ㆍ세대 드리는 것이 보통이다. 공소에서 미사를 드리기 때문이다. 저녁 레지오가 끝난후 숙소로 돌아오면 대개 밤 열한시쯤 된다. 앞에서 말했듯이「베드로 가르보」지역 역시 강물과 호수 물을 식수로 사용했다. 이런 물들은 건조기 8개월 동안에 모두 말라버려 당나귀를 타고 수십키로 떨어진 곳에서 물을 길어오거나 사먹는 수밖에 없었다. 이종창 신부님께서 물길을 찾아주시고 독일과 한국교회원조로 우물을 여섯군데 팠다.
에콰도르에는 일부다처제가 성행하고 있다. 일부다처제라기보다 12ㆍ13세가 된 남녀가 서로 좋아하게 되면 둘이서 도망을 가 며칠 살다 오면 가정을 이루게 된다. 한 남자가 서너명의 여자를 데리고 사는 걸 더 남자다운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가정은 영구적이 못되고 쉽게 헤어지며 또 다른 짝을 찾게 된다. 로이트너 신부님은 부모들 교육 없이 어린이들만 교육시켜 첫영성체를 시키는 것이 큰 효과가 없음을 경험하고 부모들 교육에 주안점을 뒀다. 교리반 조직을 하는데 있어서도 첫 영성체 준비를 시킬때 반드시 그 부모들을 따로 교육시킨다. 부모들이 교리반에 나오지 않으면 어린이들 첫영성체를 시키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으면 부모들이 꼼짝없이 나온다.
첫영성체의 의미와 중요성을 알아들어서가 아니라 세례와 첫영성체는 일생 중 꼭 치러야할 하나의 종교행사로 믿고있기 때문이다. 부모들의 교리에서는, 혼인성사의 중요성과 아름다움을 강조함으로써 성사에 대한 원의가 생기도록 유도한다. 이들이 비록 젊었을 때는 이중삼중 생활을 했다 해도 과거 10년 동안 한 남자와 한여 자가 서로에게충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에 한해서 본인들이 원할 때 혼인성사를 준다. 처음에는 특히 남자들이 한 여자에게 충실해야 된다는 혼인서약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말하자면 남자가 병신이 아닌 이상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것이다.
겨우 설득을 시켜놓으면 혼인성사를 받되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몰래 하겠단다. 공적으로 반 남자내지 병신선언을 하기 싫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놀림감이 되는 것이다. 첫해에 9쌍의 부부가 혼인서약을 했다. 이들은 자녀들의 첫영성체가 있기 전 혼인성사를 받고 정식부부가 된 후 첫영성체 날 자기아이 양편에 서서 아이와 함께 성체를 받아 모신다.
둘째 해에는 50여쌍의 정식부부가 탄생했다. 이때 만해도 남자들은 쑥스러워하며 시선을 어디에다 둬야할지 쩔쩔맸다. 60여쌍이 탄생한 지난해엔 모두들 의젓한 모습이었고 기뻐하는 사람, 개중에는 감격스러워 하는 이도 있었다. 이들 중에는 20대 젊은이가 있는가하면 손자손녀들을 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있었다. 이들의 지속적인 신앙생활을 돕기 위해 매월 하루 부부피정이 있다. 어떤 면에서 이 혼배자의 수가 늘어나는 것은 이곳 사목활동의 성과를 가능 하는 척도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본당 내에서 효과적인 결실을 거두고 있는 분야는 청소년사목이다.
매주일 규칙적으로 미사에 참례하고 있는 신자층은 젊은이들이고 이들은 숫자 면에서 뿐만 아니라 전례나 신심 활동면에도 적극적이다.
본당 내 청년 레지오마리애 쁘레시디움이 4개나 되며 이들이 청소년 모임을 주도하고 공소선교도 적극적으로 도우며 교리교사로도 활동한다. 공소의 경우에도 레지오단원의 반수이상이 청년으로 구성되어있다. 이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본당 신부님께서는 방학을 이용, 교리특강 코스를 마련했다. 구세사, 성서, 교회사, 성사론, 교리교수방법론, 사도신경, 피정 등의 프로그램으로 2박 3일 동안 함께 지내며 집중교육을 시킨다. 이런 것들을 통해 청소년들이 성소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이들을 따로 모아 매주 기도와 구체적인 생활지도와 신앙교육을 실시하며 한 달에 한번「다울레」지구내성소희망자들을 한자리에 모아피정을 시킨다. 남자 성소자중에는 이모임을 통해 6명이 대신학교에 들어갔고 현재 이모임에 꾸준히 나오는 숫자는 18명이다. 여자들의 성소모임에 꾸준히 나오는 사람은 7명이다. 이런 결과를 두고 볼 때 훌륭한 사제들이 삶을 통해 모범을 보이고 성소계발에 열성을 쏟는다면 에콰도르의 성소전망은 매우 밝다고 하겠다.
현재 에콰도르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 사람들은 7명이다. 이 자리를 빌어 한국의 모든 은인들에게 감사드리고 계속 성원을 빌면서 이글을 맺는다.
김용숙(엘리사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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