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하느님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에 전력투구하셨다. 자신을 선포함으로써 사명을 수행하지 않았고 다만 하느님 나라를 설교하고 실현하기 위해 오신 분으로 자신을 넌지시 드러내신다.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세례자 요한의 질문(마태11, 3ㆍ5참조)에 대해 예수는 자기의 행위들 즉 하느님을 대신하여 인간을 위해 수행하는 일들을 언급함으로써 답하신다. 자기신원을 밝히기보다는 과업을 보여주려는 관심이 드러난다. 하느님나라의 선포와 실현이 예수의 사명이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시오』(마르1, 15). 마르코는 예수의 설교를 요약하고 그분의 핵심메시지를 전한다. 마태오는 하느님의 이름을 직접 발설하기를 꺼리는 유다인들의 기분을 참작하여「하늘나라」표현으로 대치하였다. 「하느님의 나라」용어가 복음서에서 1백22번 나오며 90번이나 예수의 입에서 발설된 것으로 나타난다. 그분의 설교와 활동의 중심이 하느님 나라이다. 그 나라는 예수의 소신이고 하느님의 구원행위와 관련하여 예수의 사명을 이해시켜주는 열쇠이다. 그분의 기적과 선포는 그 나라를 위한 행적들이다. 그분의 삶이 온통 그 나라에 집중되어 있다.
하느님의 다스림
하느님의 나라는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친숙한 개념이었고 그들이 애타게 갈망하였던 대상이었다. 그것은 하느님이 약속하셨고 인간이 희망하였던 모든 선의 총체적 실현이며 하느님의 전적 자유에서 나온 은혜로운 선물이다. 『밭에 묻힌 보물』(마태13, 44-46)잔치(마태22, 1-14)비유들 및 행복선언은 그 나라가 인간의 자격과 행업을 앞서고 엄청난 기쁨을 가져다줄 것임을 보여준다. 선물은 주는 사람이 주도권을 갖고 은혜로이 베푸는 것이고 받는 사람도 자유로이 받는 것이다.
하느님나라는 하느님이나 인간에게 자유를 전제로 한다. 회개와 복음의 수락은 그 나라를 받아들이는 인간의 자유로운 태도이다.
이스라엘은 신실하고 의로운 왕을 염원하면서 그 희망의 성취를 기대하였다. 정의로서 공정히 다스리는 통치자에 대한 희망의 총체적 실현이 하느님나라이다. 하느님의 정의 및 모든 사람들 사이에, 그리고 개인과 우주의 영역에서 구현되는 하느님의 평화의 성취이다. 따라서 나라 개념은 영토나 권위의 개념을 배제시킨다. 그 나라는 하느님이 친히 백성을 다스리시는 주권인데 이를 위하여 예수가 하느님에게서 파견되셨다 예수는 하느님의 직접 통치와 인간의 총체적 구원을 자신 안에 실현하러 오셨다.
하느님 나라의 세 요소
(1)하느님의 계시 : 그 나라는 하느님의 주권을 뜻할 뿐 아니라 그분의 자비롭고 거룩한 면모를 드러낸다. 하느님은 조건과 한계가 없는 사랑의 주권을 행사하신다. 기적은「가난한」자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이 육체적, 정신적, 영신적 차원에 걸쳐 인간에게 베풀어짐을 보여준다. 예수가 선포하신 나라는 사람과 친숙하신 하느님 즉 아버지 하느님을 계시한다. 그분은 악인에게도 똑같이 햇볕을 쪼여주시는 아버지(마태5, 45), 무엇이든 들어주시는 아버지(루가12, 30),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마태7, 11), 못난 자식을 끔찍이 아끼시는 아버지(루가15, 11~32)이다. 「아버지호칭이 복음에서 170번 이상 나타나고「압바」(Abba)는 예수가 하느님을 부르실 때 사용하신 아라메아어 호칭이다. 그분이「아빠」라는 호칭으로 하느님을 직접 부르고 말씀을 건네신 것은 극히 경거망동한 짓이었다. 아버지는 인간을 자녀로 삼으시는 하느님의 참신한 이름이다.
(2)인간의 구원 : 하느님 나라의 도래는 은총의 해가 시작된 것이다(루가4, 18). 은총의 해는 안식년으로서 7년씩 묶어 일곱 째 되는 해이다(출애23, 10~12).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임을 자각해야하고 따라서 형제가 되어야 한다(신명15, 12~15). 자유, 화해, 용서, 정의는 안식년의 근본요소들이고 치유기적들은 하늘나라가 그것들을 가져다 주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나라의 비유들은 구원이 우선 죄의 용서임을 알려준다.
자격과 공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하느님의 자비를 입고 새 탄생의 기쁨을 누린다. 「행복선언」은 인간의 모든 기준상황이 뒤바뀜을 선포한다. 하느님의 자비로운 권능은 인간의 가치기준을 훨씬 넘어서므로 인간과 세상을 변혁시킨다. 그래서 그 나라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기쁜 소식이고 모든 인간을 위한 온갖 선의 총합이다. 그것은 구령(救靈)이 아니라 전인(全人)의 구원이고 세상의 근원적인 개혁이다. 요한복음은 하느님 나라가 인간의 근본적이고 총체적인 요구를 충만히 충족시키는 것임을 설명하기 위하여 그 개념대신 생명ㆍ빛ㆍ진리 따위의 용어를 쓴다. 나이가 하늘나라는 하느님의 단순한 베품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내어줌이다. 하느님은 인간과 함께 계시고 당신을 전적으로 주시기 위하여 예수라는 구체적인 사람의 인격 안에 나라를 실현하신다.
(3)예수의 인격 자체 : 예수는 그 나라가 자신 안에 도래함을 선언하신다(루까4, 21)하느님나라는 정확히 예수의 말씀과 행적 안에 즉 인격 안에 왔다(마태11, 4-6:루까10, 23이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를 쫓아낸다면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루까11, 20). 치유기적으로써 예수는 자신으로부터 실제로 용서가 베풀어짐을 입증하신다(루까5ㆍ20이하). 용서, 해방, 화해를 선포하는 예수의 말씀이 그 효력의 실재를 조래함을 드러내 보이시기 위하여 기적을 활용하신다.
하느님나라는 결국 예수의 신원을 암시해준다. 그분은 그 나라의 전권을 가지고 그 권능을 행사하신다. 『그러나 나는…말한다』『행복하여라』『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따위의 선언은 그분이 해설자나 말씀의 전달자가 아니라 말씀 자체이심을 드러낸다.
요한은 이 사실을『나는…이다』라는 예수의 어투로 표현한다. 하느님나라가 예수와 더불어 도래하였다면, 하느님의 이름(아버지)이 결정적으로 계시되었다면, 그것은 예수의 인격이 역사 안에 현존하고 하느님에 대한 계시를 완성하시기 때문이다. 이로써 하느님은 예수 안에서 당신 자신을 인간에게 내어놓으셨는데 이 양도가 곧 하늘나라이다. 그 실현을 위하여 예수는 고된 삶의 여정을 걸으셔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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