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아인들은 안식일법을 무시하는 예수를 건방지게 보았고 자기를 하느님과 같은 일을 한다고 하는 예수를 신성모독죄인으로 단죄하였다. 이것은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이다. 예수께 대한 생명위협이 커지는 만큼 예수의 가르치시는 교리도 점점 심화된다. 그 교리는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권한과 사람들을 심판하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엄청난 교리이다.
생명을 주는 것은 하느님의 특권이다. 유대아인들의 율법전문가 라삐 요한난이란 사람은 하느님 손에 있는 열쇠 셋을 꼽으면서 비의 열쇠(신명 28, 12) 태(胎)의 열쇠(창세 30, 22) 무덤의 열쇠(에제 37, 13)라고 하였다. 이러한 하느님의 특권을 예수는 하느님으로부터 자기가 위임받았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사람들을 심판할 권한까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자신있게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선언은 유대아인들의 분통을 터뜨리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의 생사가 달린 중요한 교리를 가르쳐야만 했다. 그것은 당신 자신의 신원을 밝히는 일이다. 당신은 하느님 아버지와 아버지 아들관계에 있으며 똑같은 하느님이시라는 교리이다.
이 교리를 요한복음서의 근간을 이루는 대목으로서 이미 복음서 초두에 제시되어 있다. 아버지의 품안에 계신 외아들로서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시다. 이 분이 하느님을 알려주셨다(1장18). 이 핵심적인 교리를 예수께서는 제자들과의 친밀한 대화에서 가르치시지 않고 목숨을 노리는 반대자들과의 토론에서 밝히신 것은 한번 집고 넘어가야 할 일이다.
예수의 구세사업, 즉 하느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일을 예수께서는 박해의 고난을 받으시며 완수하실 것을 예비적으로 가르치시고 계신 것이다. 일찍이 하느님을 본적이 없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알리가 없고 그분의 생활을 헤아릴 수가 없다.
모세는 그 옛날에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백성들에게 이렇게 알렸다: 너희는 이제 일어나는 일을 보고 내가 여지껏한 모든 일이 내가 멋대로 한 일이 아니라 야훼께 보내심을 받아 한 일임을 알게 되리라…이제 야훼께서는 여지껏 너희가 들어 본 적도 없는 일을 하실것이다 (민수16, 28-30).
예수께서는 모세와는 달리 당신이 하느님 아버지와 삶을 같이 하며 그 삶의 양상은 아버지의 사랑과 아들의 순종으로 이루어지며 그 하느님의 삶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이가 바로 당신이시라는 심오한 진리를 깨우치신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셔서 친히 하시는 일을 모두 아들에게 보여주시고,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그대로 할 뿐 무엇하나 마음대로 하지 않는다. 이제 아들을 시켜 이보다 더 큰 일을 보여주실 것이다.
여기서「이 보다」의「이」는 베자타 물가에서 하신 기적을 가리킨다. 그 보다 더 큰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죽은 이들을 다시 살리는 일이다. 이 일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이며 아들이 하는 일이기도 하다. 베자타 물가에서 기적의 은혜를 입은 사람은 예수님의 임의선택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활의 은혜를 입는 것도 살리고 싶은 사람을 살릴 것이다.
물가에서 앉은뱅이보고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고 했다 해서 시비를 걸던 반대자들이 죽은 사람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얼마나 놀랄 것인가. 사실 그들은 예수께서 죽은 나자로를 부활시키는 것을 보게 될 것이고 (요한 11, 43~44) 예수 자신이 죽었다가 부활하는 것을 목격할 것이며 마지막 날 예수를 통하여 인류의 부활이 이루어 질것이다 (데살전 4, 16).
이러한 생사의 대권과 죽은 자를 부활시키는 권능은 하느님만이 가지는 대권이다. 생사의 대권에 부활의 권능을 드러내는 것은 사람들의 심판을 전제로 한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부활의 권능을 아들에게 주셨듯이 심판의 대권도 아들에게 주셨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시는 일이 똑같다「사람이 되신 말씀은 하느님과 꼭 같은 분이었다」라고 요한복음서 초두에 선언한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의 직접 말씀으로 해설되고 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영성생활은 이 교리를 받아들이고 믿는데서 출발한다.『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말씀을 듣고 믿는 사람은 죽었다가도 영생을 얻는다. 그러나 그 말씀을 듣고도 믿지 않는 사람은 영원한 단죄를 받을 것이다. 이것 자체가 심판이며 심판의 때는 바로 지금이다. 26절~30절은 지금까지 설명한19절~25절의 반복적인 강조임을 다음에서 발견할 수 있다.
26절 성부와 성자가 가지는 같은 생명권 21절, 27절 성부와 성자가 가지는 심판권 22절, 28절 불신자의 놀램 죽은 자들이 아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25절, 29절 듣고 믿는 자는 살 것이다 25절, 30절 아들은 아무것도 마음대로 하지 않고 보고 들은 대로한다 19절
이 이중적 강조에서 19~25절은 요한당시에 만연했던 그리스도의 재림기대가 예수의 말씀을 듣고 믿는 그리스도교 안에서 영성적으로 이미 이루어지고 있음을 강조하며 그 믿음의 재림은 세상종말에 그대로 이루어 질것임을 후반 26~30절에서 강조하고 있다.
한ㆍ가지 덧붙일것은 그리스도의 생사대권과 부활심판의 권능은 아버지께 대한 겸손한 순종으로 실현되고 사람들에게 나타난다는 점을 강조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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