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의 말씀을 번역 없이 공산권으로 전달할 특권을 가진 나라 폴란드는 닫쳐진 나라에 열려진 사회라는 표현이 적절하였다. 밤늦게 바르샤바에 도착했을 때 진눈깨비가 온 시가지를 덮고 있었는데 끝도 없이 가는 택시에서 그냥 내려 어정거리는 우리를 한 청년이 도와주었다. 굉장히 급해 보이는 그는 신문방송학을 공부하지만 일도 한다고 하더니 내린 장소가 나빠서 고생한다고 하며 호텔까지 짐을 날라다 주고 급히 가버렸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공산권에 도착한 이후 받게 된 모든 친절에 나는 부끄러웠다. 감사할 자격도 없었다. 유고슬라비아에서 만난 희랍정교를 믿는 한 노동자의 친절은 평생 나의 가슴에 날아있을 것이다. 당에서 권력을 쥔 정치가들과 일반국민을 혼동하는 것은 너무나 큰 오류이다. 종교의자유와 경제적인 부를 가진 우리의 가슴속에「아이와 같은」순수함이 더욱 결여되어 있을 수 있다.
남편이 돈 바꾸러간 사이 리비아 남자가 내게 다가와서 추근거리며 돈을 주겠다고 자기 방에 가자는 흥정을 해왔다. 미련하게 생긴데다가 술기운까지 있어 보여 호텔로비였지만 겁이 났다. 나중에 계산하니 그가 주겠다던 돈은 미화 4불 가량이었다.
같은 호텔에서 일주일째 묵고 있다는 일본인이 암달러상에서 돈을 바꾸면 정식 환율의 5배를 받을 수 있다고 하면서 자기는 미화 10불을 바꿨더니 일주일동안 매일 밤 술 마시러 갔는데도 돈이 남았다고 하면서 일본 돈은 미국 돈만큼 좋아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대학에서 영어교수를 하다가 집에서 그룹개인지도로 훨씬 많은 돈을 벌고 있다는 여자를 만났는데 고등학교 졸업직후 영국에서 2년 유학을 했다는데도 남편이 자랑하는 만큼 영어가 시원하지는 않았다.
의사인 그녀의 어머니는 요즈음은 18명 내지 20명이 모이면 외국으로의 관광여행이 허락 된다고 하면서 자기는 시누이와 함께 방콕과 싱가폴로 여행을 떠난다고 하였다. 남편은 대만여행 때에 샀다는 악어표 T샤쓰를 입고 있었고 조선회사의 매니저라고 하는데 표정이나 태도가 아주 부드러웠다. 그 여자는 시누이가 영어를 못해 부자연스럽기는 하지만 내가 시간만 있다면 커피를 대접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불가능하였다.
유고슬라비아의 드브로브니크에서도 민박을 하였는데 폴란드에도 민박을 소개받겠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었다.
드보로브니크에서 민박한 집의 주인은 역사교수였는데 부인이 비행기 시간에 맞추어 차를 가지고 공항버스종점에서 기다리다가 예약 없이 오는 손님을 맞아온다. 바르샤바에는 호텔 앞에서 민박할 손님을 찾아 서성거리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의 반쪽인 북한의 처지를 생각해볼 때 부러운 나라들이었다. 주일미사를 궐하지 않으면서 여행이 가능하고 미화로 거래가 통하는 동구는 닫쳐진 나라에 국민은 열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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