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서품 20일만에 합덕본당(現대전교구) 보좌신부로 첫 발령을 받았다. 지금은 합덕읍이 충남 당진군소속이지만 당시는 면천군에 속해있었는데 합덕본당은 「신자들의 서울」이라고 불릴 정도로 역사가 깊은 곳이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다블뤼 안주교가 살았던 초가집이 그대로 남아있었고 그 지방 출신 순교자들도 많이 있었다.
갓 서품 후 내게 그렇게 신앙의 유산이 가득 쌓여있는 유서 깊은 본당으로 갈 기회가 주어지다니…합덕에서의 첫 보좌시절은 후일나의사제생활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모범적인 사제상을 보여준 주임신부님으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당시 합덕본당 주임은 불란서인 백 신부가 맡고 있었는데 내가 아는 한「교회를 위해서 할 수 있는 한 자신을 그대로 헌신하려고 노력한」모범적인 사제였다.
백 신부는 검소한데다가 무척 똑똑해서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신자들 교무금을 생활형편에 따라「등급제」로 거두었다. 당시에는 영성체를 하는 대인교우를 기준으로 한사람에 80원씩1년에 한번 교무금을 걷게 되어있었는데 이것이 가정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식구 수에 따른 계산법이라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소작을 살고 농토가 없는 집은 식구가 엄청 많고 또 넉넉한 집은 식구가 적은 경우도 있어 불평등을 해소하고 신자들이 고르게, 교무금을 낼 수 있도록 하기위해 과감하게「교무금등급제」를 도입한 것이었다. 결국 이 교무금등급제는 큰 성공을 거두어 다른 본당에서 교무금이 들어 올락말락 할 때 우리본당만은 그전보다 3~5배의 교무금이 걷히는 등 주위의 놀라움을 자아내게 했지만 처음에는 그 실행에 남모르는 어려움이 많았었다.
처음에는 본당 회장들이 백신부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들 멋대로 그전 방식을 따라 교무금을 징수한 것이었다. 본당신부는 회장들을 모아 피정을 시키면서까지「모자라는 사람의 몫을 넉넉한 사람이 보태주는 방식」을 골자로 하는 교무금 등급제의 장점을 누누이 설명했지만 고지식한 회장들은 어떤 생각을 가졌었는지 끝내 그 말을 따르지 않았다.
이런 회장들의 고집은 백 신부의 공소방문이 계기가 되어 마침내 불똥을 맞고 말았다. 어느 날 성사를 주러 주임신부가 공소를 방문했는데 가정 형편이 몹시 어려운 한 신자가 성사를 보러 오지 않았다. 백 신부는 마침 그때가 교무금을 낼 철이고 하니 내심 집히는 데가 있어서 다른 신자에게 성사를 죽는 곧장 그 신자 집으로 찾아갔다. 그 신자는 신부님을 보자 막 울면서 『집이 가난하고 식구가 많아서 교무금을 낼 수가 없으니 성사를 볼 수 없다』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백 신부는 울고 있는 그 교우를 아무 말도 없이 한참을 바라보더니『아무개야, 나를 따라 오너라』하고 불러서 그 교우를 공소회장 집으로 데리고 갔다. 합덕은 교우촌마다 강당이 하나씩 들어서있던 황해도와 달리대부분 공소회장 집에서 모든 모임이 이루어지고 있는듯했다. 주임신부는 회장을 불러서『교무금 때문에 가난한 사람의 눈물을 흘리게 했다』고 호통을 치고 울고 있던 교우에게는 앞으로 교무금을 한 푼도 내지마라고 말했다. 그 공소회장은 이일 때문에『성사를 볼 수 없는 벌』을 받았다.
이 일이 하나의 시발점이 돼 합덕본당내에서는 교무금 등급제가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아나가기 시작했고 그해 가을에는 가을 벼5섬을 교무금으로 주교님께 바칠 수 있었다. 다른 본당보다 근 10배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교무금을 가지고 가자 민 주교님은 백 신부를 직접 불러 등급제에 대한설명을 청하기도 했다. 민 주교는 이 새로운 교무금 거두는 법을 아주 훌륭한 생각이라고 칭찬하고는 특별히 그해「경향잡지」에 교무금등급제를 권장하는 기사를 싣도록 조치하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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