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정체는 빠스카 사건에 의해 결정적으로 밝혀졌는데 복음서들은 그 사건에 비추어 예수의 역사를 기술한 신앙의 증언이다. 공관복음서는 다른 성서들 보다 많이 지상적 예수의 구체적 생애에 관심을 쏟는다. 그분의 역사적 면모들을 묘사하면서 부활이전의 예수와 부활 후 신앙의 그리스도이의 연속성을, 그분의 생애와 부활안에서 결정적으로 계시된 하느님의 새 모습에서 제시한다. 예수가 신명(身命)을 다 바쳐 보여주려 하였던 당신 자신의 모습을 하느님은 부활로써 확증하셨음을 공관복음서들은 증언한다.
공적생활의 면모
예수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공적활동을 개시하시고 그와 관계를 맺지만 그와의 근본차이를 보이신다. 둘의 차이는 율법과 복음, 약속과 성취의 차이이다. 요한에게 있어서 선포의 중심은 임박한 심판, 위협과 경고, 회개의촉구이지만 예수에게는 하느님나라, 자비와 구원과 기쁜 소식이다. 예수는 죄인들이 회개하고 세례받기 전에 그들에게 구원을 베푸신다(루가19, 1~10). 회개의 동기가 심판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하느님의 무한한 선에 대한 신뢰이다. 갈릴레아에서 전도활동을 시작하면서 하느님나라의 도래를 선포하시며 그 나라의 표징(기적)들을 행하신다.
마음에 드는 사람들을 뽑아 제자로 삼고 그들과의 공동생활을 영위하신다. 그들을 상대로 특수교육을 실시하고 자신의 전도활동에 적극 동참시키며 하늘나라의 씨앗으로 삼으신다. 아무런 차별을 두지 않고 모든 이들과 교제하면서 특히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신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갈릴레아 전도활동의 전환점으로 생각하신다. 그 이후로 예루살렘을 향한 도정이 시작되며 예수의 관심은 자기 주변의 소수 무리에 집중된다. 군중이 실망하여 예수를 등지며 권력자들에 대한 그분의 비판은 잦은 충돌을 빚는다. 고난과 혹독한 죽음에 대해 수차 예고하신다(마르8, 31:9, 30:10, 32). 예루살렘 입성 후 예수는 자기의 비극적 종말을 앞당겼을 몇 가지 사건을 일으키신다. 사두가이파와 부활논쟁을 벌이고(바르12, 18~27)성전정화사건으로써 종교 및 정치당국으로부터 심한 반발을 사신다. 입성 때에 메시아 희망에 부푼 소수대중의 열렬한 환호를 받지만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않으신다. 극도의 위기상황 안에서 제자들과 이별의 식사를 마치고 체포당하고 재판받아 처형되신다.
예수를 비극적 최후에로 몰아붙였던 당국과의 충돌은 어디에서 연유하였는가? 그분의 하느님 이해와 여기에 근거를 둔 예수의 확신에 찬 태도였다.
예수의 하느님
예수의 신(神)이해가 종교체제를 흔들었고 당국과의 충돌을 일으켰다. 그분의 하느님도 여전히 성조들의 하느님, 백성을 구원하고 그들과 친숙한 하느님이시다. 구약에도 하느님의 개입이 역설되었지만 예수의 언행은 전혀 새로운 면모를 보인다. 유다인들도 하느님의 자비와 은혜를 인정하였지만 의인들에게 유보된 것이었다. 예수의 하느님은 은총과 자비 넘치는 분으로서 인간의 간구, 참회, 행적보다 훨씬 앞서가는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의 무조건적 사랑이라는 절대 기준 앞에서 율법, 예배, 규범이 상대화된다. 그분은 마음을 중시하며 「율법 준수자」에게 국한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관심을 쏟으신다. 그분은 새 하느님이 아니고 변함없이 계약의 하느님이시다. 「다른」하느님이 아니라 유다인들이 전혀 상상하지 못한 면모의 하느님이시다. 참신한 모습의 하느님을 계시함으로써 예수는 하느님의 궁극적이고 최종적 계시자임을 드러내신다. 예수자신이 선포한 하느님과 그분이 맺고 있는 관계는 어떠한가?
혁신적 생활태도
유다인들을 당황케 한 예수의 소신은 그분의 신이해와 직결되어있다. 그분은 자신에 대한 회개와 신앙이 아니라 하느님과 그분의 사랑에 의한 다스림에 대한 신뢰를 촉구하셨다. 그러나 그분의 하느님나라에 대한 선포 안에는 하느님과 관련하여 독특한 그분의 관계가 엿보인다. 예수는 하느님에게서 파견되었지만 권위 있게 가르치고(마르1, 27) 모세보다 위대한 분으로 자처하신다. 하느님나라를 선포하지만 그 나라와 자신을 동일시하셨다.
예수를 배척함은 그 나라를 거부하는 것이고 그분과의 일치는 완성된 나라에서의 친교이다. 그분은 「압바」호칭으로써 하느님과의 독자적이고 유일한 관계를 드러내 보이신다. 그분은 설교로써 뿐 아니라 생활과 태도로써도 하느님의 참신한 모습을 보여주려 애쓰신다.
예수의 이른바 전권(全權)주장과 혁신적 삶이 동시대인들과의 갈등을 초래하였다. 그 주장과 자유로운 삶이 당대 하느님의 모습을 근본적으로 재 숙고하게 하였으므로 충돌의 동기가 되었다. 동시대인들이 예수의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분의 전권주장과 생활태도를 용납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이 충돌, 그리고 처형의 숨은 동기였다. 부활 이후에 최로 공동체에 의하여 이 주장이 어떻게 이해되었는가?
선포되시는 예수
부활로써 예수의 주장과 삶이 옳았음이 입증되고 따라서 하느님과 그 나라를 선포하셨던 예수가 이제 선포되시는 분이 되셨다. 부활이후에 그리스도로 계시되신 예수에 대한 선포가 공동체에 의하여 실행되었다. 예수의 설교와 삶의 중심에는 하느님이 계시는데 반하여 교회 공동체의 설교 중심에는 그리스도, 그분의 생애 특히 빠스카가 자리 잡는다. 이는 신약성서가 예수의 역사적 변모에 충실하였음을 명확히 반영한다.
한편 부활은 하느님 모습의 결정적 계시가 되었다. 예수의 부활안에서 하느님은 계약에 충실한 분, 이스라엘이 믿었던 생명의 하느님, 부당한 고통을 겪는 의인들에게 정의를 실현해주는 분으로 당신을 계시하셨다. 이리하여 하느님을 계시하신 「예수의」복음 선포가 자연스럽게「예수에 대한」설교로 이어질 수 있었다. 둘 사이에는 근원적인 연속성이 있다. 신앙의 그리스도는 역사의 예수이시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단언하는 것은 그분 안에서 최종적으로 하느님의 모습이 게시되었음을 분명히 하는 것과 떼일 수 없다. 신명을 다 바쳐 하느님을 계시한 예수의 삶 및 죽음과 부활안에서 비로소 하느님은 당신의 새 모습을 결정적으로 계시하셨는데, 그분은 하느님의 참 메시아이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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