ㅈ이 상담실에 온 것은 방과 후 한참이나 지나 퇴근을 준비하고 있었을 때다. ㅈ은 망설임과 쑥스러움으로 어정쩡하게 서서 무엇인가 말을 하려는 듯한 표정이었다. ㅈ을 자리에 앉도록 권하고 전등불을 켰다. ㅈ는 고등학교2학년학생이고 얼굴이 익지 않은 학생이라 몇 반 학생인지를 물어보았다. 그는 불쑥『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라고 혼자 말처럼 했다. 그때의 그의 눈은 무엇인가를 골똘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의 눈동자처럼 조금은 공허하게 느껴졌다. ㅈ의 아버지는 모 보험회사의 중견간부이고 외아들로 자란 공부를 썩 잘하는 분이셨다. 명무대학을 나와 사업을 하셨으나 몇 차례의 실패로 재산을 많이 써버리셔서 할머니의 애를 태우셨단다. 그 후 지금의 직장에 취직하셔서 지금까지 근무하시고 계시며 어머니는 엄격한 가정에서 자라신 분으로 아버지와는 여러모로 다른 면이 많으셔서 부모님의 사이가 별로 좋지 않으셨다. 그러나 언제나 어머님이 참고 견디시는 편이시고 아버님의 무책임한 행동에 대해 무척 많은 고민과 아버님이 가정에 충실하시도록 열심히 부처님께 비시는 독실한 불교신자 이시다.
그러나 결국 아버님과 어머님이 이혼하시기에 이르렀고 이혼수속을 끝내시고는 아버님이 나가셔서 홀로 하숙을 하고 계시며 ㅈ의 형제들은 어머님과 함께 지내고 있다. ㅈ은 형이하나 여동생이 하나있다. 그러는 와중에 형이 금년대학입시에 실패하게 되었고 여동생은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이 여동생은 자기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느 날 어머님이 어디서 데리고 오셨다. 여동생은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이복동생인 것이다. 어머니께서 아버지와 의논하시고 데리고 와서 교육시키기로 합의를 보셔서 데리고 왔으며 그 여자와의 관계를 청산하셨단다.
그러나 어머니를 통하여 알게 된 것은 아버지께 몇 명의 여자가 더 있다는 것이고 그 때문에 자주 외박하신다는 것을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자세히 알게 되었으며 부모님의 이혼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르는 것으로 이미 예견되었던 일이라는 것이었다. 아버지를 만날 때마다 ㅈ은 느끼고 있어 가능하면 부모님의 재결합을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마음같이 되지 않아 아버님이 불쌍해서 자주 찾아 뵙고 보니 아버지의 입장도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는 것이다. 지금은 오히려 아버지께서 어머니의 결점과 이렇게 된 것에 대한 일부의 책임이 어머니에게도 있다는 것으로 생각되어졌고 형이 재수를 시작하면서 자취하고 싶다는 것을 강력히 어머니께 요구했고 자기도 형과 함께 어머니를 떠나 자취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적극 반대하시지만 아버지께서는 은근히 권유하시는 편이란다. 아버지께서는 호로사시면서부터 용돈을 풍부히 주셨고 지금은 어머니께 용돈을 타 쓰지 않고 아버지에게 가서 용돈을 타 쓰며 친구사이에서도 자기가 용돈이 풍부한 편이라 그들에게 선심을 쓰다 보니 주위에 친구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날 후 ㅈ에게 어머니를 뵐 수 있도록 주선해 달라 얘기하고 ㅈ에게는 자취하는 문제를 며칠만 연기하자고 권유했다. ㅈ의 어머니께서 오셨다. 그분은 모든 것에 적극적인 분이신 것 같은 인상이었으며 자기의 생각을 강력하게 주장하시는 분이셨다. 어머니와 의논하여 ㅈ의 자취를 일단 허락받았다. 허락하지 않았을 경우 ㅈ의 성격으로 보아 가출할 소지가 있었기에 어미님께 자취를 허락하시되 자주 자취방에 가셔서 돌봐 주실 것을 권하고 했다.
그리고 ㅈ의 아버지를 만나 보았다. ㅈ의 아버지는 중후한 50초반의 신사였다. 그분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려하지 않았으며 아이들이 어머니와 함께 있는 것을 바라지 않으셨다. 그러나 재혼을 할 의도도 없고 재결합할 의사도 없다고 하신다. 아이들이 이제 다 컸으니 독립하여 생활해도 좋다는 의견이셨다. 그러나 그 독립은 진정한 독립이 아니고 교육부재 현상만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며 자녀교육에 협조해주실 것을 적극 말씀드렸다. 지금 ㅈ는 형과 함께 자취를 하고 있다. 그러나 어머니와 계속 관계를 유지하며 자주 찾아뵙고 어머니도 자주 찾아 그들의 뒷바라지를 하고 계신다. 별 탈 없이 그들이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것을 나도 자주 찾아다니며 확인하고 그들과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언젠가는 부모님과 함께 살 수 있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올 수 있도록 지켜보며 자기의 앞길을 용감하고 떳떳하게 개척하며 부모님들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기를 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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