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극동함대 사령관인 보몽(Beaumont)제독을 만난 고종 임금은 곧이어 뮈텔(閔)주교를 만나기 위해 그에게 알현을 허락했다. 알현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임금이 주교를 만나고 싶어서 자청한 것이었다.
고종은 왜 주교를 만나고 싶어 했을까? 물론 그는 보몽 제독에게 요청했던 일 즉, 조선정부에 대한 프랑스의 각별한 보호를 주교에게 다시 한 번 부탁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오직 조선의 이익만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주교에게 그의 말할 수 없는 외로운 심정을 토로하고 싶었을 것이다. 당시 고종은 러시와와 일본의 세력다툼사이에서 정치적으로 외로웠을 뿐만 아니라 왕비인 민비를 잃은 직후여서 개인적으로도 더욱 외로웠을 것이다.
8월 28일, 뮈텔 주교는 임금을 알현하기 위해 정오가 좀 지나서 주교관을 떠나 프랑스공관에 들러 공사를 대동하고 입궐했다. 대기실에서 30분간 대기하고 있는 동안 그는 궁내부(宮內府)의 고관들과 잠시대화를 나누었는데 이때 프랑스 말을 아는 수녀의 신분으로 그런 직책을 맡을 수 없다고 하며 난색을 표명했다.
마침내 알현실로 안내되어 2시에 알현이 시작되었다. 프랑스 공사의 소개가 있은 후 주교와 임금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고갔다『전하, 이제야 문안드리게 되어 인사가 너무 늦었습니다』
『주교님, 우리나라 말을 잘하십니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주교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 주교님에게 알현의 기회를 드린 것도 실은 주교님이 오로지 우리조선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천만입니다』
『조선에 오신지는 얼마나 되시는지요』
『16년전 입니다. 당시는 숨어있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조선의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숨어있었지만 그러나 조선의 이익을 위해서 였습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정사를 말아보기 시작한 이후로는 박해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전에 있었던 박해는 나와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이 죽었지요』
『그 때문에 우리는 10년 동안 조선에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그때는 무서웠지요』
『아닙니다. 무섭지가 않았습니다. 전하께서 친정(親政)을 하기게 된 후에야 우리는 조선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때 어떤 복장을 하셨던가요. 조선 사람들의 보통 옷이었든가요. 아니면 상복이었든가요』
『상복을 입었습니다. 특히 저는 서울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상복을 벗어본 일이 없었습니다. 부모님이 생존해 계셨지만 5년간 상복을 입고 지냈습니다.』
뮈텔 주교는 또 임오군란(1882)때 모두가 서울을 떠났지만 혼자 서울에 남아있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고종은 주교가 살아남은 이야기에 새삼 놀랐다. 그리고 보몽재독의 소식을 물으며 조선의 이익을 위해 계속 노력해줄 것을 당부했다.
『제게 무슨 권한이 있고 무슨 영향력이 있습니까. 저는 단순한 선교사일 뿐입니다. 그러나 조선에서 살다가 조선에서 죽게 되어 있는 프랑스인이기 때문에 조선 사람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힘은 적지만 선의는 큽니다. 전하의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성심껏 일하겠습니다』주교의 이 말이 임금을 몹시 기쁘게 했는지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중대한 일이 생기면 반드시 주교님의 선의와 헌신에 호소하겠습니다』
뮈텔주교는 오른편의 왕세자도 주교에게 기대한다는 말을 했다. 임금은 다시 주교에게 최근 프랑스공사와 제독에게 말한 것과 같이 프랑스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으며 프랑스정부에서 가능한 한 빨리 조선정부에 전권공사를 파견해주면 기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답했다.
『그 일은 공사나 제독이나 제게 달린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미 전하가 제독에게 그 말을 했으므로 틀림없이 프랑스정부에 전달될 것이고 또 프랑스정부가 가능한 한 전하의 소망에 부응하기위해 최신을 다할 것입니다.
이렇게 알현은 끝났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