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회「교무금 등급제」라는 의욕적인 사목방법을 소개한 적이 있지만 당시는 교회전체가 신자들을 확보하기 위해 의욕을 불태우던「전교의 시대」였다.
신자라는 이유하나만으로 사람을 잡아 죽이던 탄압의 시대를 이겨내고 마침내종교의 자유를 얻어 본격적인 전교활동을 펼쳐나갈 무렵에 나의사제생활도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나 엄청한 박해 때문에 교회내의 인적자원과 물적 자원은 제대로 형성돼있지 않았고 또 때마침 미국에서 장로교파가 들어와 선교활동을 펼치는 통에 우리는 전교라는 큰 명제를 앞에 두고도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실지로 내가 아는 많은 교회어른들은 그 혹독한 박해를 겪었으면서도 종교의 자유를 얻었다고「술 한 잔 실컷 나누어 마실 일」이 없을 정도로 자신을 비쳐 신앙을 지켰지만 이제는 깊은 산속이 아닌 광명천지에서 말씀을 전할 수 있다는 자유가 주어졌을 뿐 전교를 하기에는 한마디로「기가 막힌 상황」이라고 한탄을 했다.
이 시대에 우리교우 중에서 외국유학을 갔다 온 신자로는 이효상씨(당시 일본유학중)ㆍ 장면씨(미국유학중)와 일본에 유학을 갔던 황해도출신의 교우까지 합쳐 한손가락으로 꼽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만큼 교회를 이끌어나갈 지도자들이 없었다는 말이 된다.
게다가 엄청난 자본을 기반으로 급격히 교세확장을 해나가던 개신교는 평양에서 전교를 시작하면서『가톨릭이 마리아를 믿는 교지 예수교는 아니다』라는 잘못된 선전을 일삼아서 그나마 어려운 우리의 전교활동을 더욱 힘들게 했다.
어떻게 보면 순교선열의 피로 잘 닦아놓은 신앙의 토양에 개신교 쪽이 먼저 들어와 전교의 씨앗을 뿌린 셈이었다.
그러나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한국 신부들은 성경을 열심히 번역해 신자들에게 도움을 주었고 가톨릭을 쉽게 설명하는 서적들도 펴냈다. 1971년「공동번역 신약성서」가 나오기 전까지 60년간을 한국천주교회의 유일한 복음서였던「사사성경」이 이때 간행됐고 (1910년) 진리와 참 종교에 대해 저술한「진교변호」가 김성학(아릭스) 신부에 의해 쓰여 졌다. 이밖에도 질문과 대답 형식으로 교리를 다룬「문답참고」가 여럿 선을 보였다. 신심과종교심 양성을 위한 번역서「성체조배신경」외에도 알퐁소 성인의 행적을 다룬 서적 예수 성신공경에 관한 책들이 속속 번역돼 오랜 기간이었는데 나중에는 덕원의 성 베네딕또회 수사들이 직접영사기를 가지고 다니며 전교활동을 펼쳤다.
한국교회 내부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다른나라의 수도회들도 들어왔다. 1909년경에 들어온 독일 베넥딕또회의 진출은 이시기의 대표적인 신자로 꼽을 수 있는 안중근 의사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안중근의사는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민주교에서 민족교육을 위한 대학설립을 건의했으나 거절당했는데 민주교는 이때의 제안을 잊지 않고 사범학교설립과 운영을 계획으로 베네딕또회를 초청한 것이었다.
그 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등 세계열강 간에는 싸움이 끊이지 않았지만 신부끼리는 원수가 없다는 말대로 한국에 진출한 각국의 수도회는 신앙의 표양을 보이며 생활해 나갔다. 이런 가톨릭의 모습은 일반시민들에게 많은 감명을 주었던 것 같다. 해방 후 소련군이 평양으로 진군했을 때 나는 이북의 지식인들로부터 『천주교 밖에 믿을 데가 없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런 말은 그간에 모범적인 모습을 보인 교회의 노력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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