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권의 첫 날밤부터 계속되던 흉흉한 꿈자리는 북경에서 최악의 상태가 되어 한밤중에 깜짝 놀라 잠이 깼다.
낮 동안의 생활은 젖혀 불안하지 않고 피정기간보다 더 맑은 정신으로 밟는 땅마다 축복을 구하고 목도리로 가린 입으로 추워서 벌벌 떨며 계속 기도하고 다니는데 그랬다. 다음날을 위해서 잠은 자야겠다고 이미 성수(聖水)도 효험이 없었기에 성당에 가서 고해신부님이 나찾을까 해도 괜히 긁어 부스럼인지 누가 진짜 사제인줄 알겠는가 하는 의심까지 들어왔다. 모스크바에서도 악몽으로 일어나 6시간이나 기다리면서 두고 온 아이에게 전화도 해 보고는 등 원인을 찾으려했으나 별도리가 없었다.
심장이라도 멎을 듯이 놀라 일어난 나는 갑자기┎메주고리에」에서 가져온 성모메달을 몸에 지니자는 생각이 났다. 험한 크리제바츠산의 돌 십자가 부근에서 강제로 끈을 끓은 것처럼 보이는 깨끗한 스카풀라 하나를 주웠을 때 이미 알아야 했는데 그냥 짐 가방에 넣어두었고 남에게 주겠다며 수십 개씩 들고 다니는 메달을 자신은 착용도 안하는 우둔과 오만을 깨달았다. 그날 이후로 괴상한 꿈은 사라졌고 나는 포로가 되어 성모의 군대에 잡혀있다.
원래 우리는 중국에 일 년 동안 있을 계획으로 가의할 학교까지 내정되어 있었고 중국에 가져간다고 루르드의 성수 약 오천미리리터를 보관하고 있었는데 예정은 바뀌었지만 성수 한 병과 평화의 여왕메달 및 손가락묵주들을 북경에 있는 남당(南堂)과 상해의 주교좌성당에 드렸다.
1605년에 리치 신부가 흉가를 구입하여 기초를 닦았다는 남당의 입구는 양반집 대문처럼 기와로 되어있고 기둥은 우리나라의 사찰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꼭 같은 원주형에 붉은색깔이다. 대문의 오른편에「북경시 천주교 애국회」라는 간판이 붓글씨로 씌여 있으며 담장은 회색벽돌로 견고하게 지어졌다. 대문을 들어서니 어른 키에 한배반 정도가 되는 높이로 루르드성모를 모신 동굴이 눈앞에 들어오고 겨울인데도 온갖 종류의 꽃으로 장식되어있었다. 동굴의 오른편에 다시 낮은 담장이 있고 담장 한가운데 뚫린 동그란 대문을 넘어가면 회색벽돌로 지은 웅장한 성당건물이 있다.
본부제대 외에 여러개의 소제대가 있는데 본부제대에서 미사가 진행되는 도중에 소제대에서 노인신부님이 또 혼자 미사를 드리고 계셔서 장엄한 성가대의 목소리와 함께 정신이 조금은 혼란하였다. 속이타서 피부색조차 변해버린 듯한 도무지 연세를 짐작할 수 없는 무표정의 신부님, 아마 50대 초반일지도 모를 그분은 내가 가까이 갔을 때 상당히 긴장하셨으나 상세한 소개를 드리고 성물을 전했을 때 고맙다고 하셨다.
바깥에서 사진을 찍다가 다시 뵙게 되어 함께 찍으실 수 있느냐고 여쭈었을 때 비로소 미소로 답례하셨다. 제대는 구형으로 사제와 교우들이 같은 방향을 향해 미사를 드리며 제의도 옛날 것이고 미사후의 성체강복 등 모든 예절에 옛 전통을 그대로 지녔으며 성당 벽의 십사처그림까지 어릴 때의 내가 다니던 존당의 성화와 꼭 같아서 반가웠다.
제대 뒷벽의 대형 성모그림 및 그 주위를 장식한 꽃과 리본은 대단히 중국적인 운치를 풍겼다.
북경의 교우들은 거의 노인층에 가까웠으나 상해에서는 소년복사들도 있어서 놀랐는데 최근에는 어린이들이 교회에 가는 것을 막니 않는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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