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우린 크고 작은 일에 끝없는 결정을 내려야만한다. 설렁탕을 먹을 것인가 만두국을 먹을 것인가를 결정해야 할때도 있거니외 끝없이 반복되다 보니 전혀 새롭게 느껴지질 않는 출근따위도 사실은 어떤 결정이 앞서고서야 뒤따라오는 행동이며 경우에 따라선 성당 신축금을 얼마나 내놔야 체통(?)이 서겠느냐는 특별한 결정도 있음을 본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런 수많은 결정들이 너무 손쉽게 습관적으로 이러어지고 있거나 혹은 당연시 되고 있다는 것이다.
잘못은 갖가지다. 특별히 나를 포함해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결정을 성급하게 서두르고 있다는것이다.
재빠른 결정은 또다른 결정을 낳고, 그 결정은 끝없는 후회를 불러 일으키는데도 마냥 습과적으로 잘도 굴러만간다. 더욱 희한한것은 그 결정에 따른 결과를 두고 잘잘못만 따지지 어떻게 결정되었기에 이런 결과가 나올수밖에 없었다는 것에 대해선 전혀 생각하려 들지않고 곧장 또다른 결정으로 뛰어들곤 해버린다.
모로가나 기어가나 서울 남대문만 가면 그만이다. 철저한 결과우선주의에 찌든지 오래다.
나도 변명할 건덕지가 없는것이 아니다.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나라도 어차피 그렇고 그런데 뭐가 어쨌다는 것이냐!
세상만사가 되는일도 없고, 안되는일도 없는 판국에 내가 살면 몇백년을 살 것도 아니고 너라고해서 별 수가 있겠느냐하는것이다.
기막힌 결정이다
우리가 결정함에있어 몇가지 함정이 있음을 본다.
첫째 역할을 정해놓고 있다. 따라서 역할에 따른 책임만을 추궁하다 보니 문제도 출제되기 전에 답이 나와있다.
대화가 필요없다는 것이다. 사제는 권위의식에 따라 결정하면 그만이고 평신도는 그냥 따르면 된다는 것이다.
더 이상의 문제도 필요없고 답도 필요없다.
둘째로 모조리 쓸어잡아 해결을 하려든다. 눈앞에 나타난 것만 결정해 버리면 그 다음에 따라오는 것도 그런 색깔로 이미 결정된 것이다.
마침내 장님이 천방지축 파밭으로 기어들어간 것이다
세째로 예외없이 전문지식을 앞세운 나머지 다른이의 간절한 충고같은 것은 전혀 상관치 않는다. 모두가 제잘난 맛에 얼씨구 절씨구다.
네째로 비판이 앞선다.
비판이란 보복심리에서 비록하며 어떤 형태이든 상처를 남긴다는 진실에 대해 조금도 귀기울임이없다.
다섯째로 믿질않는다. 하기야 이래서 속고 저래서 속는 판에 믿는다는 자체가 사치스럽다.
이외에도 함정은 수도없고 한도 없다. 도대체가 어떻게 결정하는 것이 좋은 방법인지를 생각해 본 일도 없고 무엇을 결정해야 할지 문제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많다. 주는 떡이나 먹고 하는 굿이나 구경하겠다는 소극적인 정신자세도 지적되어야겠고 결정을 했다가 나중에 결과에 따라 책임추궁 당할 것이 두려워서 체념하거나 포기하는 상태도 있다.
그런가하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서 더좋은 결정을 피해버리는 잘못도 있음직하다.
결국 이런 일들이 되풀이 되면서 스스로가 환멸에 빠져들고 가치관을 상실해 버리거나 외면하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한층 더 두려운 것은 다른 사람이 나를 더 사랑해 줄 수 있는데도 그것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오나가나 성전신축 때문에 야단법석들이다. 이 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깊은 상처를 받고 있는가.
중요한 것은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란 사실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
짓기만하면 그만이라는 결정이 이미 나와있다. 잔소리하면 역적(?)이다.
역적이 되기싫으면 죽치고 남이 하는대로 따라가면 그만이다.
이런 문제는 성당을 짓는냐 마느냐 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방향을 달리하고 있다. 애써 잘잘못을 가려서 책임을 묻겠다는 것도 아니다.어쩌면 가장 잘못된 결정으로 부터 성전신축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어떻게 결정되었느냐가 이미 상실되 있기 때문이란 말이다.
한 발짝, 혹은 하루 늦은 결정이 가장 좋은 결정일 수도 있다는 말을 난 안다. 늦었다고 판단되었을 때가 최선을 다하고있는 상황이었음을 나는 보았다.
그런데 이 글을 쓰고있는 자신부터가 가장 빠른 결정을 내리기가 일쑤이니 장차 이일을 어찌 할런지. 가끔은 하느님은 웃기는 양반이라고 생각된다. 빠른 결정이 빠른 후회를 낳는다는 사실을 빤히 알고있는데도 나로 하여금 번번이 함정에 빠져들게 만드시다니…
혹시 진짜로 웃기는 양반이 따로 있는 것인지….
새해에도 곰곰이 생각해 볼 작정이다. 내가 잘못하고 있거나 하느님 그 양반이 잘못 했거나 둘중에 하나 일테니까.
나이 쉰살을 넘기자니 별 놈의 생각이 사람속을 뒤집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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