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창조의 말씀. 구원의 말씀 (요한복음 1장 1-18절)
단떼는 인간지성의 상징인 비르질리우스의 아내로 지옥과 연옥을 편력하였고 교회의 상징인 베아뜨리체의 안내로 천당에 올라 당대의 성인 베르나르도의 소개로 성모 마리아를 뵈었고 성모의 주선으로 하느님을 직접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일찍이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고 하느님 아버지의 품안에 계신 외아들이 우리에게 하느님을 알려주셨다(요한1, 18)그러니 하느님을 알려면 성서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이제 사도 요한을 따라 성서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그는 우리를 시간이 시작되기 전 영원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며 영원의 세계에서 구원의 세계로 이끌어줄 것이다.
태초에 한 처음에 천지가 창조되기 전에 말씀이 있었다. 이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이며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시라(요한 1, 1-3) 빛이 생겨라 창공이 생겨라 마른땅이 드러나라 물이 모여 바다가 되어라(창세1, 1-10)라는 말씀은 하느님의 지혜이며 힘이다. 인간의 말이나 힘은 한 인간의 속성이지만 하느님의 말씀은 그것이 무엇이 될 수 있는 하나의 실체성을 가진다.
하느님의 말씀은 위격(位格)을 가진다. 그러므로 신학에서는 그분이라고 부른다. 이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요한복음서는 그 첫머리에「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 같은 분이셨다」라고 한 것이다. 하느님과 함께 계신그분은「아버지의 품안에 계신 외아들로서…하느님을 알려주신 분」이다. 하느님과 그 말씀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이며 이 관계는 요한복음서 전체에 흐르고 있다. 교부들은 이 관계를 성부(聖父)와 성자(聖子)의 관계로 신학적으로 발전시켰고 삼위일체교리가 형성된 것이다.
이 말씀을 통하여 하느님은 그 모습을 드러내셨고 그 모습은 삼라만상, 산천초목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있게 하는 활동으로 나타났다. 그 말씀은 우주에 질서와 자연의 이치를 심어주었다.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라고 한 말씀은 말씀자체가 신적(神的)이라는 뜻으로 하느님의 능력을 가졌다는 뜻이다.
그 말씀은 우주의 빛으로 나타났고 그 안에 있는 것의 생명이 되어 살게 하신다. 빛과 생명은 신적(神的)인 것으로 어두움을 걷어내고 죽음을 물리친다. 어두움과 죽음은 하느님과 반대되는 세력이다. 장점적인 어두움은 생명을 쉬게 해주지만 오랜 어두움은 생염을 죽여버린다. 사람은 생명체의 표본이기 때문에 어두움자체는 아니지만 어두움 속에서 삶의 길을 읽고 있다. 이 어두움을 비치기 위하여 하느님의 말씀은 강생(降生)하여 사람이 되셨다. 이 사건은 말씀이 빛이 되고 생명이 되며 만물이 생겨나게 한 창조의 사건보다 더 굉장한 사건이다. 세계 창조시에는 영원한 하느님의 말씀이 자연세계라는 시간 속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그 빛과 생명의 이치로서는 역시 신적인 영원성을 간직하였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심으로써 신적인 것이 육신을 취하는 말하자면 일대 비하(卑下)겸행(謙行)이었다. 이것은 이스라엘민족이 하느님의 말씀이 새겨진 십계명판을 장막 안에 모시고 하느님이 현존하신 지성소로 흠숭하던 상징을 실체화한 것이며 인간 어두움을 비추어 살길을 가리켜주는 구원(救援)의 새 창조 이다. 이 새로운 창조사업은 사랑으로 나타나 하느님이 이제는 지성소에 현존하지 않고 그 거처로서 인간육신을 택함으로써 달성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말씀이 세상에 빛과 생명을 줌으로써 표현되었지만 제2의 창조인 강생은 빛으로 길을 트고 그 생명이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토록 하는 제2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창조에서 만물에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났다면 제2의 창조인 강생은 인류를 구원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함으로써 영적인 참 영광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실로 하느님과 인간이 합쳐졌다는 것은 크나큰 신비이다. 이 신비의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인간에 모아진다.
모든 사람들은 이제부터 자연의 아름다움과 질서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간접적으로 듣지 않고 그 분의 입에서 직접 하느님의 말씀을 듣게 된다. 이제 하느님을 알려면 예수를 알아야 하고 예수를 알면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 안에서 서로를 참되게 알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됨으로써 하느님의 외아들로서 받는 영광이 드러난다. 구약에서는 장막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적힌 십계명을 모시는 것을 영광으로 삼았다. 계명은 이스라엘 민족의 활로를 찾는 보증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은 자신이 보증인이 되어 온 세상에 복음의 말씀을 전해주고 온전한 희생으로 인류를 구하여 하느님 나라로 모아들이면서 드러낸다. 이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교회에 물려줄 영광이며 은총과 진리가 가득찬 영광이다.
이상에서 요한복음서의 첫대목(1, 1~18)은 6절~8절과 15절을 빼고는 초대교회에서 찬미가이며 요한복음서 전체의 주제가 되는 대목이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이러한 분이심을 다시 묵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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