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평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 시대는 혼란의 시대이기도하다. 폭풍전야의 고요기에 처해 있다고나할까. 히로시마에 이는 세계핵전쟁이 없을 것이라는 보증은 참으로 빈약하기만하다. 세계적으로 볼 때 1960년대는 혁명에 관심이 쏟아졌고, 70년대는 환경, 생태계에 대해서 그랬으나, 작금에는 엄청난 열정이 평화를 향하고 있다. 세계의 맥을 짚어보는 사람이면 누구나가다 세계가 위협하고 있다는 것, 3차 세계전쟁은 모든 것의 끝장을 의미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교회는 태어나는 첫 순간부터 평화를 선포하고 또 창출하라는 사명을 받고 파견되었다. 평화가 위협당하면 당할수록 교회는 더욱더 평화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된다.
약속된 평화
사람이면 누구나 마음속깊이에서 평화를 열망한다. 하지만 역사는 인류가 평화를 창출할 수도, 유기할 수도 없음을 보여준다. 이스라엘인들은 평화란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이르렀는데 이것은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
그리스도인이나 로마인들은 평화를 질서 있는 평온(Tranguiltas ordinis)으로 규정하면서, 평화가 무기와 신들에 의해 확립될 수 있다고 믿었다. 반면에 이스라엘은 전쟁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뢰를 두지 않는 경향이었고 평화를 하느님의 선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더 강했다(이사48, 22:54, 10:57, 20). 예언 문서에서 평화는 중심적-메시아구원 시대를 나타내는 데골자가 되는 말-이다(이사57, 19:66, 12:예레33, 6:에제34, 25:37, 26).
이 평화의 약속은 궁극적으로 나자렛 예수 안에서 성취되었다(루가7, 50:8, 47). 예수께서는 병든자들에게 평화가 함께 하라는 말씀으로 인사하셨고,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예찬하신다(루가7, 50:8, 48:마태5, 9). 부활 후에 그분은 제자들에게 평화를 비는 말씀으로 인사하시고(요한20, 19ㆍ26), 평화를 위한 원대한 사명을 부과하여 그들을 떠나보내신다.
정치적인 의미는 일단 접어놓고, 우리는 예수께서 철저한 평화주의자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분은 결코 파리 한 마리도 다치지 않으셨다. 그분은 그야말로 이상을 추구하는 분으로서 백성들에게 삶의 대안적(代案的) 모델을 제시해 주셨다. 그것은 나눔과 섬김으로 드러나는 하느님의 나라, 평화 공동체인 것이다.
제자들의 과제는 바로 당신백성들 가운데 살으시고 수난하시고 죽으셨으며 하느님에 의해 일으켜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열매이자 선물인 평화를 선포하는 것이었다.(로마1, 7:1고린1, 3:로마8, 6:14, 17참조) 평화를 뜻하는 히브리말은 바로『샬롬(Sh-alom)』으로, 이것은 그리스도교 메시지의 핵심이요, 예수께서 인류에게 특별히 주신 선물의 핵심이 기도하다.
평화의 왜곡
세계를『평화케 하는(Sh-lomatizc)』것이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의 공동체인 교회의 과제이다. 즉 교회는 하느님의 사랑과 평화의 빛 안에서 세계를 완전히 바꿔놓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를 적대하는 이들은 외쳐댄다. 『어디 보자 너희가 평화를 실천하는지!』어떤 사람들이 보기에 교회는 외부인들에 대해, 유대인과 믿지 않는 이들, 이교도들과 열고들에 대해 대단히 배타적이고 독단적이었다. 이 상황에서 우선 그와 같은 태도의 변경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4세기 이래 교회는 권력과 특권하고 동맹을 맺었다. 이로해서 영지를 보유한 국가교회가 되었다. 식민주의와 선교는 가장 최근 시기까지 계속되어왔는데, 이 둘은 전혀 분리되지 않은 상태로서, 현 20세기에 이르기까지도 사람들은 다신교도나 우상숭배자들은 회개하든지 단죄 받든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도식을 고수해왔던 것이다.
이런 태도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한 예는 성 프란치스코가 이슬람의 술탄 방문사건에서 찾아볼 수 있다(1219년). 프란치스코는 십자군과 술탄간의 전쟁을 멈추게 하고자 노력하였다. 하지만 교황 대사, 뻴라지우스 추기경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바랬다. 프란치스코는 진솔하게 술탄을 찾아가서 그의 손님으로서 그와 함께 지냈다.
그러면서 그는 모든 이들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을 이야기함으로써 술탄의 우정을 얻기에 이른다. 술탄은 처음으로 한 그리스도인을 십자군군사, 적으로서가 아니라 친구로서 보게 되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가 술탄에 대해 칭찬하는 말을 했을 때 그 누구도, 바로 그의 형제ㆍ수도자들까지도 그를 믿으려 하지를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요점은 이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교 서교역사에서 고운면은 공정하게 보지를 못하고 추한 면은 무시해 버린다는 사실, 라틴아메리카의 마란다(MirandaㆍJㆍP)는 「마르크스주의에 맞선 마르크스(Marx against Marxism)」라는 제목의 책을 썼는데 그는 여기서 마르크스는 「그리스도교 인본주의자」였다는 사실을 밝혀주고 있다.
발베르트 뷜만 신부는 신학박사로서 스위스 루체른에서 출생(1916), 스위스 프라이부륵大 선교학연구소(1954~71)와 로마 그레고리안大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카푸친회선교 활성화 사무총장에 재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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