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관복음서와 대조해보면 바울로에게는 역사의 예수에 대한 무관심이 두드러진다. 복음서가 나자렛 예수의 설교, 행적, 생활태도 안에 나타나는 하느님나라의 신비를 다룬다면 바울로는 빠스카 신비 즉 그리스도인들이 세례와 성체를 통하여 동참하게 되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를 주로 고찰한다. 부활하신 분과의 만남으로 인하여 개종하였고 초기 공동체를 열정적으로 창설한 사도는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신도들 간의 관계를 밝히면서 그리스도의 신비를 세단계로 반성한다. ①죽은 자들의 부활과 그리스도의 부활을 주제로 삼아 종말론적 미래의 구세주 그리스도를 묘사 한다(1~2데살:1고린15). ②빠스카의 주제를 다루면서 죽고 부활하신 분을 그리스도인들의 삶 안에 이미 실제로 구원을 실현하는 분으로 고찰한다(1~2고린, 갈라, 로마). ③창조 때부터 하느님의 구원계획의 중심이 되신 그리스도의 신비를 묘사한다(필립, 골로, 에페). 부활하신 주님,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살피고나서 대사제이신 그리스도 즉 히브리서간의 그리스도론을 보려한다.
부활하신 주님
죽은자들 가운데 다시 살아난 분 : 바울로의 종말론은 희랍세계의 우주관과 운명관에 대하여 그리스도인의 희망을 다루면서 제기된 것이다. 사도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주님의 날, 주제로서 희망을 서술한다. 재림(Parusia)이란 왕이나 황제가 어떤 도시를 방문하거나 그곳에 상주하는 것, 또한 그 왕림을 평화로이 축하하고 축제를 벌이는 것을 연상시키는 낱말이다. 사도는 재림을 예언자들의 묵시전승에 따라 묘사한다 : 우리적 재난선인과 악인의 구분, 악과 원수의 패배(1데살5, 9). 구원의 최종완성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직결된 것이다.
그래서 구약의「야훼의 날」이「주님의 날」이라 불리운다. 1데살1, 9~10은 최초의 그리스도론본문이다. 역사에 개입하고 인간의 구원을 위해 애쓰는 살아계신 하느님은 예수의 부활에서 당신모습을 결정적으로 계시하였다: 당신아들을 살리신 생명의 하느님으로 계시되셨다 : 부활하여 종말론적 심판주가 되신 아들 안에서 하느님은 사람들과의 친교를 이루신다 : 그리스도는 구원의 최종완성을 위해 대림하실 하느님의 아들이다.
신도들안에 살아계시는 분 : 사도가 전수받은 초기 전승(1고린15)에서 이미 부활이 십자가상 죽음과 자연스레 연결되어있다. 예수의 죽음은 부활의 조건일 뿐 아니라 그 자체 구원의 가치를 지닌다. 그리스도는 참으로『우리 죄 때문에 죽으셨고』『우리를 위해 자신을 죽음에 맡기셨다』(갈라2:로마8). 예수는 하느님의 종으로 아버지의 뜻에 절대 순종하셨다. 이간을 죄에서 구하시려는 아버지의뜻과 사랑을 보여주시려고 그분은 인간의 죄를 스스로 짊어지셨다(갈라1, 4:2고린5, 21:로마5, 8). 그래서 죽음도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완벽히 나타냄으로써 생명의 원천이 되다(로마3).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이 십자가 죽음으로 인하여구원의 효과를 발생하게 되었다. 죽음과 부활의 구원효력이 신앙(로마3, 25), 성령(로마8), 세례(로마6, ㆍ이하), 성체(1고린10, 16~21)를 통하여 교회 즉 신도들 안에서 영원히 발생된다. 부활하신 분은 세상종말의 심판주이실 뿐 아니라 영원히 사는 그 순간부터 지금부터 이미『우리를 위해 중재하고 간구하시며』(로마8, 32)그분의 구원행위는 믿는 사람들을 위한 새 생명의 원리가 되신다. 『그리스도는 하느님 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지혜, 정의, 거룩함, 구원이 되셨다』(1고린1, 30).
하느님의 아들(1)
사도의 「옥중서간」들은 창조 때부터 시작 되는 하느님의 구원행위를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신비를 고찰한다. 필립, 골로, 에페 따위 서간들의 찬미가들은 그리스도의 신성,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중심위치, 선재(先在), 창조 때부터의 역할, 우리와 똑같이 지시기 위해 취한 종의 모습, 구원역사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수위(首位)권 등을 주제로 삼는다. 이제 사도는 하느님의 아들이면서 자신을 비워 종의 형상을 취하신 예수를 하느님의 들어 높이시어 만물을 지배하는 주님이 되셨다고 설파한다.
자신을 비우신「아들」:필립2, 6~11은 예수의 길을 하강 및 상승의 도식으로 그분의 정체를 이해하려한다. 6~8절은 강생, 사람 되심의 비하(卑下), 십자가의 비하 등 하강(下降)을 묘사하는데 예수가 하강 움직임의 주체로 나타나신다. 9~11절은 영광스럽게 되신, 현양 등 상승을 묘사하는데 하느님의 상승의 주체로, 예수를 그 객체로 즉 하느님에 의해 상승되시는 그리스도로 그린다.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다. 그런데 그분은 모든 사람과 일치된 삶을 살기위하여 하느님의 「형상」(실체, 본질보다는 모상의 뜻을 지니며 발현, 표현의 의미도 지닌다)을 포기하셨다. 자신을 비우고 낮추셨다. 하느님의 종(이사53, 12)으로서 봉헌, 낮춤, 감춤, 순명, 고통의 길을 걸으셨다. 이는 아담이 걸으려했던 것과 전혀 다른 길이었다. 적극적 비하를 감행하셨다.
하느님의 형상과는 전혀 다른 종의 형상을 취하시어 모든 점에 있어서 우리와 똑 같은 신분을 취하셨다.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셨다』는 표현을 이사53, 8을 연상시키며 지상생애 및 아버지께 대한 순종과 봉헌을 집약한다. 비움, 포기, 비하, 순종의 하강으로부터 상승의 길이 시작된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에 의해 높이 올림을 받으셨다. 현양되신 분에게 「주님」이름이 주어졌다. 그것은 위엄, 권위, 권한, 지배를 가리키는 칭호로서「야훼」이름의 희랍어 번역이다. 주님은 타원과 흠숭의 대상이며 신앙고백을 받는 분이시다(로마10, 9:1고린12, 3).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은 계약의 백성을 특정 짓는다(사도2, 21:4, 12:9, 14:1고린,1, 2). 그리스도는 유일하고 참된 주님이시다. 이리하여 그리스도의 신비는「하느님의 형상」과「우리와 똑 같은 종」사이에 집약된다. 그 사이에 그리스도의 생애가 위치하며 부활이 그 중심자리를 차지한다. 예수는 현양되심으로써 하느님 자신의 이름을 획득하게 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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