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혁명기간 10년동안 문을 닫았던 교회는 상해의 경우 75, 76년경에 외국인에게만 미사를 허용하였는데 물론 사제는 중국인이었다. 78년경부터 중국인도교회에 갈 수 있었고 우리가 있을 때 쿵 주교가 감옥에서 나와 화제가 되었다.
신자들의 미사태도와 표정은 말할 수 없이 진지하였고 말구유가 차려진 성탄기간인데도 미사 후에 매괴 신공과 십자가의 길을 단체로 하는데 일찍 나가는 사람을 못 보았으며 성당에 빈 좌석도 없었다. 유고슬라비아의 미사보다는 분위기가 딱딱하였고 북경의 표정이 상해의 성당보다 더 엄숙하였는데 상해에서는 비디오카메라로 성체강복을 찍는 외국인과 미사처음부터 끝까지 사진기셔터만 눌러대는 해외화교도 보았다.
미사도중 다섯개의 고백소에 신자들이 줄지어있었는데 미사 후에도 노인신부 한분은 교우들을 기다리는 표시로 고해소 옆을 떠나지 않으셨다.
일단 문을 연 성당은 철저하게 잘 가꾸고 보호되지만 문화혁명도중 깨어진 종탑의 십자가가 방치되어있고 성당의 일부는 미곡상회로 사용되는 곳을 보았을 때 가슴 아팠다. 자물쇠로 굳게 채워진 정문 옆에 북경문화재 몇호라고 적혀있었고 건물은 이끼로 덮혀 있었다.
사회주의국가에도 종교를 얻을 자유와 믿지 않을 자유가 헌법상으로 보장되는 데 믿지 않을 자유를 강조하는 것이 다를 뿐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형식적이나마 교회는 여려있는데 우리의 반쪽인 북한은 중국의 과거실수를 그대로 본떠서 아직도 답답하기만 하다.
북경주재 북한의 최고관리 한사람은 내가 만나고 싶은 여성은 소개하지 않고 만나자마자 종교는 자본주의의 앞잡이이며 미국은 선교사를 앞세워 남한을 침범하였다고 종교를 끝도 없이 빈정대었다. 나는 설마 그분이 나 같은 사람 뒷조사할리야 없겠지마는 자기가 먼저 종교이야기 꺼낸 것으로 보아 종교문제에 신경을 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기야 미국의 한 목회지도자는 북경에서 잡지를 인쇄하여 남북한에 배포할 계획으로 있으며 미국에서 교세를 확장한 모교파는 조선인대학의 공학부 건설비로 2백만 달러를 기증했는데 북한에서 중국에 항의를 했기 때문에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교파는 자동차 부속품공장을 설치하여 조선인에게 혜택을 주고 있다고 한다.
미국교포가 북한과 중국간 국경지대에 살고있는 친척방문을 많이 하게 되자 북한당국은 상당히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최근에는 북한의 정보를 수집하였다하여 스파이 혐의로 잡힌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재미동포가 동북지방을 방문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중국당국에서는 권장을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하느님의 부재자리를 공산권내에는 남성들이 차지하고 싶은 것 같았다. 소련여성위원회의 간부를 만났을 때, 자기 집에서는 아이들이나 자기가 모든 일에 남편에게 감사하기를 남편이 바란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중국에 관해 한마디만 더하면 사람이 죽었을 때 무조건 화장해서 밭의 거름으로 사용하는데 종교의 자유가 들어와 성체를 영하는 신자가 많아질 때에 중국당국은『11억인구가 다 무덤가지면 산사람은 어디로 갑니까?』하며 따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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