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4일 서울 논현동성당에서 열린 수험생을 위한 103일 기도 중 신자들이 103위 성인의 전구를 청하며 기도를 바치고 있다.
“103위 순교 성인들이시여, 수험생들을 위해 저희와 함께 기도해주소서.”
8월 4일 서울 논현동본당 지하 1층 교리실. 수험생 자녀나 가족을 둔 신자들의 기도소리가 울려 퍼졌다. 올해 본당의 수험생을 위한 기도는 예년보다 조금 이르게 시작됐다. 일반적으로 하는 100일 기도가 아니라, 103일 기도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른 점은 기도하는 날짜의 수만이 아니다. 매일매일 103위 성인, 특별히 그 중 한 성인에게 전구를 청하며 기도하다는 점도 독특하다. 본당은 이날 고순이(바르바라) 성인의 전구를 청하면서 수험생을 위해 기도를 바쳤다.
이날 기도에 함께한 박남희(데레사·50)씨는 “목숨 바쳐 믿음을 증거하신 분들께서 아이를 위한 엄마의 간절함을 전해주실 수 있을 것 같다”고 소감을 말했다.
논현동본당뿐 아니라 수험생을 위해 103일 기도를 바치는 본당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이미 2년 전부터 103일 기도를 진행해온 서울 방배동본당은 올해도 8월 3일 김대건(안드레아) 성인의 전구를 청하며 기도를 시작했다. 본당은 매일 기도 중 그날 전구를 청하는 성인의 약전을 읽고 기도를 바치고 있다. 또 서울 수서·포이동본당에서도 103일 기도가 운영되고 있다. 수원교구 구산성지는 이미 10년 이상 103위 성인의 전구를 청하는 수험생기도를 열어오고 있다.
본당들이 103일 기도를 준비한 것은 수험생뿐 아니라 수험생을 위해 기도하는 신자들에게도 신앙적으로 유익하기 때문이다. 기존에 많은 본당에서 바치는 100일 기도의 ‘100일’은 교리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 교회에도 9일기도 등 수일에 걸쳐서 기도하는 전통이 있지만, ‘100일’은 불교의 정서에 가깝기 때문이다.
반면 103일 기도는 숫자만으로도 103위 한국순교성인을 떠올리게 해준다. 103일 기도는 통공 교리를 바탕으로 성인이 함께 기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험생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신자들에게 위안감을 줘 호응을 얻고 있다. 또 본당들은 순교성인들을 현양하고 순교신심을 함양하는 데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논현동본당 보좌 박우준 신부는 “그동안 100일 기도는 왜 100일 동안 하는지 목적 없이 기도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103위 성인께 전구를 청하면서 우리가 왜 간절히 기도하는지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신부는 또 “물론 현세적인 목적이 있는 기도이지만, 순교성인들께 기도의 모범을 배우고, 신앙으로 이끌리는 길로 이어질 것 같다”고 밝혔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