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 의거가 일어나자 한국의 프랑스 선교사들이 러시아를 좋아하고 일본을 미워하도록 하는 소위「친로배일」(親露排日)로 한국인 신자들을 유도했다는 일제의 주장을 근거로 하여 우선 프랑스선교사들이 친로적 이었는가를 살펴보면, 그 결과 과연 그들이 친로적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은 무엇보다도 노불동맹(露佛同盟)이란 본국의 국가정책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그것을 이용하여 조선왕국의 국권을 수호하려 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프랑스 선교사들이 과연 배일적이었는가를 살펴볼 차례이다. 이에 대해 우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친로적인 노선이 확인된 이상 그들은 배일적 노선을 취할 수밖에 없었고 실제적으로도 그러했다 기록상 한국의 프랑스 선교사들에게서 대일(對日)감정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은 1894년부터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해에 동학 난이 일어나자 청국에서 군대를 동원해 조선에 보냈고 이어 일본도 군대를 보냈다. 그런데 일본 군인들은 곧 서울과 지방에서 어떻게 행패를 부렸던지 한국 사람들은 물론 서양 사람들까지도 그들에 대해 진절머리를 내게 되었다. 일본 군인들은 도처에서 남의 소유지나 가옥을 마구 침범하고 시비를 걸며 폭행을 자행했다. 그래서 교회도 그런 곤욕을 치르게 되었다.
7월 2일이었다. 이날 일본국인 세 명이 용산신학교에 마구 침입해 들어왔다 이유인 즉 신학교 대지를 통과하는 전화선을 검사하러 왔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신학교의 문지기 교우와 싸움이 벌어졌다. 저녁 식사 중이던 로오(Raux盧) 신부와 베르모렐(Vernorel,張) 신부는 연락을 받고 즉시 현장으로 달려갔다.
두 신부는 군인들이 달아날 경우에 대비하여 증거물로 삼기위해 군번이 적혀있는 그들의 군모를 빼앗았다. 이에 화가 난 군인 한명은 칼을 뽑아들며 로오 신부에게 대들었고 또 한 군인은 담을 뛰어넘어갔다. 달아난 줄 알았더니 이웃 부대에 원병을 청하러간 것이었다. 곧 40명의 군인이 신학교를 포위하고 위협했다. 신부들은 항의했으나 소용이 없었을 뿐더러 문지기 교우를 데리고 가서 심문하겠다는데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들은 다음날 그 교우를 돌려보냈고, 또 대대장이란 자가 와서 사과까지 했다. 일본인 앞에서는 치외법권의 외교관도 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영국영사도 부인과 함께 산책을 하던 도중 일본 군인으로부터 봉변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곧 외국신문에 보도되었다. 그러나 용산 신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은 보도되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 조선교구의 부주교인 코스트(Coste高)신부는 이와 같은 일본인의 만행을 국제여론에 호소하여 규탄함으로써 조선에서 혼란함을 일삼고 있는 일본인들에게 준엄한 교훈을 주어야한다고 판단하고, 상해(上海)의 신문에 기고할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코스트 신부는 종현성당(현 명동성당)을 설계한 사람으로서도 유명했지만 또 한불자전과 한어문전 등을 인쇄하기 위해 일본에 다녀간 체류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일본의 정체를 잘 알고 있었다.
코스트 신부가 작성한 항일기자의 내용인 즉 대략 이러했다. 일본인들은 그들의 교민을 동학 난에서 보호하기위해 조선에 출병했다고 한다. 교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구미 열강들처럼 한두 척의 군함이나 약간의 군대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위험이 사라진 뒤에도 남아있고 또 조선정부와 주한 외교사설단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철수를 하지 않고 있을뿐더러 장기간 주둔할 태세로 계속 군대를 증원시키고 있으며 마치 조선을 점령지처럼 생각하며 방약무인하게 행동하고 있다. 그들은 청군이 떠나면 그들도 곧 떠날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대포를 서울 장안에 끌고 다니면서 시위를 한다. 이 같은 공포로 인해 서울 주민의 반이, 제물포 주민의 8할이 피신했다. 이것이 보호자로 자처하는 자들의 행동이다! 그러므로 일본인에 대한 증오는 전반적이고 또 진정에서이다.
코스트 신부는 이 기사를 상해의 파리외방전교회에 보내 여론을 일으켜줄 것을 부탁하면서 일본군의 철수란 소기의 효과를 얻어내지 못한다할지라도 적어도 불의에 항의했다는데 위로를 갖게 될 것이고 뿐만 아니라 그 기사로 인해 유사한 기사들이 유도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될 때 일본인에게 효과적인 압력을 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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