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성엽씨가 작년 10월 31일 서강대 종교신학연구소와 지난 4월 23일 가톨릭문화연구원에서 각각 행한 강연을 간추린 것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끝난지 4반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도 『교회밖에 구원이 있느냐 없느냐』를 시비하는 가톨릭신자는 드물 것이다. 구원을 베푸시는 이는 우리가 아니고 하느님(「대자대비하신 하느님」)이시기에, 저 니느웨에 선교를 가서도 그곳중생들의 구원보다는 하늘에서 유황불이 떨어지기를 기다릴 정도로 선민의식에 젖어있는 자나(요나 콤플렉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맡기셨다고 해서 그것으로 행세를 하려는 중세기적 교권의식에 사로잡혀있는 교직자는 이제 없을 터이기 때문이다(자물쇠 콤플렉스). 알다시피 키(Key)를 서양말들은 하나같이「자물쇠」(Chiave, clef, der Schlussel)라 하지만 우리말은 너그럽게도 「열쇠」라고 한다.
그러면 한국인은 천주교신자나 성직자가 우리문화 또는 불교, 도교 같은 초우주적 구원관을 가진 종교들이나, 유교 또는 민족정신에 깊이뿌리 내린 민족종교들의 우주적 구원관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최근의 토착화논의에서처럼 『문화를 복음화 한다』『한국문화에 세례를 준다』는 표현을 갖고서, 공자와 석가 등이 그리스도께로 민족을 이끌어오는 선구자요, 모든 믿음은 필히 가톨릭교회에로 정향(定向)되어 있기 마련이라는 편리한 생각으로 임하는 것이 올바른가? 지금처럼 교세가 확장일로에 있는 시점에서 장차 유불교는 한반도에서 사라지리라고 전제해도 되는 것일까?
그리스도교가 세계인구의 32%라지만 아시아인구의 2.5%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근자에 토착화가 활발히 논의되고 관련된 책자들도 간행되고 있다. 몇권 만을 소개한다면 뷜만 「선민과 만민」(분도, 1982), 심상태 「그리스도와 구원」(성 바오로1981), 슐렛테 「신학적주제로서의종교」(분도1984) 등이 읽어볼만하다. 그런데 아시아인의 입장에서 이 문제에 겸손하고 진지하게 접근하는 신학자들이 최근에 세계 신학계의 시선을 끌면서 책자들도 우리말로 소개되고 있으니 하나는 개신교 신학자 대만의 송천성이요, 또 하나는 스리랑카의 예수회신부 알로이스 피어리스다. 송천성의작품은 분도출판사가 「아시아인의 심성과 신학」「대자대비하신 하느님」「아시아이야기 신학」을 냈고, 피어리스의 「아시아행방신학」이 최근 분도출판사에서 나왔다.
선교학의 비판에서 신학적 (전위)轉位로
피어리스는 여태까지 가톨릭교회가 취해온 선교의 자세를 크게 넷으로 요약한다. ①하나는 반-그리스도 종교들을 정복하던 시대, 교회가 하느님 나라와 동일하고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믿어 억지로라도 이교도들을 그리스도께 탈취해내던 시대이다 ②둘째는 비-그리스도 종교들에 적응하는 이론으로 인도니 중국이니 하는 문화와 유교, 불교, 힌두교, 도교 등의 종교 앞에서 그것자체가 좋을뿐더러 복음전파에도 이용가치가 있다고 보았다. 일찍이 교부들이 희랍철학이나 로마문명, 북유럽의 토속종교들을 이용하던 식을 배운 것이다 ③바티칸공의회를 전후하여 타종교들도 구원을 바라고 메시아 같은 존재를 기다리는 만큼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역할을 하고 교회와 연관이 되어 있다고 해석하였다. 그런 종교나 문화를 일컬어 전일(全一)그리스도적이라 한다. ④끝으로 칼라너가 비그리스도인들을 익명의 그리스도신자라고 부르면서부터 소위 성사론이 나왔다. 교회는 모범된 삶과 증언으로 타종교가 쌓아올린 제반가치들을 드러내고 신장시키며, 동시에 타종교와 문화 속에 깃들어있는 하느님의 현존과 활동에 의해서 교회 스스로 복음화 되고 성화된다는 것이다. 교회와 타종교 또는 문화가 서로 성사가 되어준다.
송천성은 이러한 신학적 흐름을 배경으로 소위 전위(轉位)신학을 말한다. 아시아인의 하느님체험(심성, 종교심, 영성)과 인간체험(고난 또는 가난)을 출발점으로 하여 신학을 개진하고 신학의 육화를 도모하려는 의도이다. 그러자면 서구신학이 고수하는 몇 개의 중심을 탈피하여야 한다. 하느님의 섭리가 팔레스티나→희랍→로마→유럽→서양으로 활동의 중심을 옮겨갔다면 왜 이러한 지리적 전위가 제1세계에서 제3세계로 옮겨가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성서적 신앙세계에서 아시아의 종교와 영성세계로 건너가는 작업을 시도하자는 것이다.
서구신학은 이스라엘-그리스도교라는 틀을 중심으로 삼아 구세사를 확정해 두고서 거기서 세계사로 비약한다. 이 둘은 하느님 사랑을 독차지하고 하느님 앞에서 인류를 대표하고 인류는 그들을 통해서만 구원의 축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송천성이 보기에 구약과 신약은 하느님이 이스라엘의 이 중심주의를 어떻게 타파해 오셨는지 보여주는 하느님의 교육학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을 뿌리 뽑아 나그네살이를 시키고 이집트의 안주에서 끌어내시고 약속의 땅에서 귀양 보내시어 당신이 만국의 주이심을 가르치셨다. 『민족들의 빛』이신 분이 오시자 모든 가르침이 그들의 울타리를 무너뜨리는 작업이었고 그의 죽음과 부활은 선민의 중심사상, 민족적 메시아관을 청산하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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