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에즈라ㆍ느헤미아서는 유다왕국의 멸망(587년)으로 바빌론으로 유배갔던 이스라엘인들이 근 48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유다 공동체를 재건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관한 하깨와 즈카르야의 기록을 제외하고 536~432년의 유다의 역사를 말해주는 이 책들은 이스라엘을 일으키는데 크게 공헌한 두 인물, 에즈라와는 헤미야의 이름에 따라 명명되었다.
1, 정경에서의 위치
「역대기 역사서」에 속하는 이 책들은 히브리 성서(마소라)와 그리이스 성서(70인역)에 원래 한권으로 되어있었는데, 라틴어(불가타)로 번역되면서 에즈라서와 느헤미야서로 나뉘었다. 15세기 이후에는 히브리 성서에서도 둘로 구분하여 역대기상ㆍ하의 앞에 놓고 있다. 70인역 성서에서는 이 책들을 역대기 다음에 배영하고「에스드라B」라 부른다. 2역대 36, 22~23의 고레스 칙령이 에즈1, 1~3에 중복됨을 고려한 때문이다.
2, 저자ㆍ편찬연대
칙령ㆍ족보ㆍ편지ㆍ언행록ㆍ연대기 등의 편집인 에드라ㆍ느헤미야서의 최종 편찬자는 역대기사가라고 본다. 그러나 에즈라서의 저자는 에즈라이고, 느헤미야서의 저자는 느헤미야라는 견해도 있고, 에즈라가 기존하는 자료들을 모아 두책을 모두 편찬했다는 주장도 있다.
편찬연대는 기원전 4세기 말 혹은 중엽으로 추정한다.
3, 구분
이 역사서들은 시대 순이 아니라 야훼께 대한 예배와 신앙생활, 사회생활을 지도한 에즈라와 느헤미야의 활동에 따라 기록되어 있으므로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읽을 수 있다.
에즈 1~6장: 첫 귀향과 성전재건
느헤 1~7, 11~13장: 예루살렘 성벽 수축과 종교개혁
에즈 7~10:느헤8~10장: 에즈라의 활약
4, 두 인물과 문제점
에즈라_아론의 후손으로 레위족의 사제이며 율법학자였다. 그는 유배지에서 페르샤 제국의 서기관으로 동족의 문제들을 담당하던 중 아르닥사싸황제로부터 유다 율법의 사본과 그 법을 시행할 수 있는 광범위한 권한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유다 공동체의 정신적 종교적 개혁을 단행한 사함이다.
느헤미야-페르샤 황제 아르닥사싸 1세의 치세 때 왕에게 술을 따르는 지위에 오른 사람이다. 그는 팔레스티나의 어려운 상황을 전해 듣고 왕에게 접근하여 예루살렘의 방비시설을 건설할 권한을 받고 유다의 총독이 되어 사마리아의 행정권에 있었던 유다를 독립된 지역으로 만들었다. 440년경부터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 12년간 예루살렘의 성벽을 구축하여 동족의 현실적 안전을 보장한 그는 페르샤 왕정으로 돌아갔다 1, 2년 후 다시 예루살렘으로 와서 엄격하게 야훼 신앙의 순수성을 옹호하였다. 느헤미야는 대략 424년 아르닥사싸 1세가 서거할 무렵 임기를 끝냈다고 본다.
문제점
1) 기원전 5세기 후반 약 25년 간 유다인 공동체는 느헤미야와 에즈라의 활약으로 붕괴 직전에 다시금 제의 공동체로서 국가의 지위를 확보하고 제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두 사람의 노고로 말미암아 유다 공동체는 성서시대와 그 후 세기들을 거쳐 변화를 거듭하며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에즈라와 느헤미야의 개혁의 시기와 활동의 법위가 중복됨을 고려할 때 에즈라가 예루살렘에 도착한 연대에 관한 의문이 제기된다.
느헤미야의 경우는 느헤미야서와 에집트의 엘레판틴에서 발견된 아랍어문헌의 뒷받침으로 그의 총독기간이 445~433년이었고 그 후 일정기간 페르샤에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에즈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활약한 연대에 대해서는 458년, 428년, 398년의 세 가지 견해가 있다. 편저자가 자료들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연대표기의 오류를 범했거나, 정보 자체가 불확실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하는 입장에서 밝힐 수 있는 것은 에즈라의 도착이 느헤미야보다 늦은 428년이 라는 견해에 반증이나 이론이 가장 적다는 것이다.
2)에즈라가 예루살렘에 가지고 온 법전은「하늘을 내신 하느님의 법」(에즈 7, 12~13)이었는데 그것이 과연 무슨 법이었는지 확실치 않다. 즉 그 분량과 오경 및 사료와의 동일성에 대한 물음이 항상 대두된다. 그것이 유배 이전에 공인된 제관계 법전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에즈라의 법이 유다인들이 전혀 모르는 새로운 율법이었을 것이라는 추론의 근거는 없다. 또한 바빌론에서 에즈라가 모세의 율법에 따라 유다인들의 종교문제를 담당했다고 할 때, 아마도 완성된 모세 5경이 이미 에즈라의 손에 있었으며, 그는 이것을 유다인의 삶의 기본으로 삼아 가르쳤으리라고 가정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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