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3년
9월 21일
나의 주교성성 3주년 기념일. 7시에 미사. 작은 성당안이 가득차다. 교우들이 오늘을 위해 사놓은 아름다운 양탄자가 축제의 화려함을 한층 높여준다. 기(旗)와 정(旌)들이 나부끼다. 「순교자들의 꽃을 피우게하라」「대사제률보라!」「만수무강하소서!」.
9월 24일
비가 내리는 쌀쌀한 날씨. 지방의 곳곳에서 걱정스러운 소식이 당도하고있다. 9월 3ㆍ4일의 태풍으로 농작물이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고. 특히 경상도는 기근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10월 7일
동대문밖에 왕의 거동. 요즈음 심의되고 있는 문제는 모든 공사 및 영사들에게 청국 외교관들처럼 가마를 타고 대궐안에까지 들어가는 특권을 주느냐 마느냐하는 문제이다.
10월 8일
11시경에「페이킹」근방에 있는 위로자이신 성모의 트라피스트회 대수도원장 마리 베르나르 신부가 도착. 그는 마라발 신부의 안내로 중국인 허원 수사인 소품자(小品者)장을 데리고 왔다.
10월 9일
대수도 원장은 조선에 수도원을 설립할 것인지를 아직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자원의 부족때문이다. 그와 함께 수녀들을 방문. 마중나와 있던 2명의 수녀는 프랑스 말로 질문을 받았으며 칸디다 원장수녀는 「사이공」에 관해서 들어온 소식들을 모두 들을 수 있었다.
10월 21일
경상도로 떠나기위해 짐들을 꾸리다. 나는 내일 아침에나 용산에 갈 생각이었는데, 배가 내일 새벽4시 출발인가 보다. 어쩔수없이 오늘 저녁 즉시 용산으로 가야하다.
10월 22일
새벽 2시경에 일어나 2시반에 미사. 이어 아침을 들고 배에 오른다. 배는 거의 정시에 출발했으나, 두세번이다 모래톱위에 올라앉기도하고 또 안개때문에 멈추기도하다. 경북 청국배「한양호」에 추월당하고 제물포에 도착한 것은 4시반경.
10월 23일
어제부터 들어와 있기로 되어있던 히고마루호가 오후 4시가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겐카이호는 오늘 아침에 도착. 드디어 5시경에 히고마루호가 커다란 모습을 드러내다. 기항시간은 2시간뿐일 것이라고한다. 모두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배에 오르다. 배는 중국인들로 만원이다. 20명가량의 조선 사람들은 3등실에서 어렵게 자리를 구했다. 선장은 내게 갑판위의 특실을 주었다. 1등실에는 단 한명의 영국인 승객이 있을뿐이다.
10월 24일
화창한 날씨. 잔잔한 바다. 저녁때 조선 사람들이 단물을 얻으려고 내 선실에 줄을 서다. 배에서는 조선 사람들에게 단물을 주지 않는 모양이다. 낮에도 수많은 물고기 떼가 배를 뒤따라오다. 때로는 물속으로 배를 앞지르기까지한다.
10월 25일
3시에 부산이 시야에 들어오고 곧 부산에 당도하다. 우도 신부가 세관의 배로 우리를 마중 나오다. 짐들을 배에 옮겨 실은 후 우리도 배에 옮겨타다. 집에오니 많은 교우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는 절영도에서 온 교우들도 있었다.
10월 28일
부산 사제관 축성. 9시경에 부산을 떠나 양산의 범살공소로 향하다. 항구에서 약 20리 거리에있는 동래의 성벽 아래로 길이 나 있다. 거기에서 멀지 않은 곳에 몇년전부터 일본인들에 의해 반쯤 개발되다가 조선인들이 마저 개발해놓은 유황 온천에 들르다. 거기에는 남자들을 위한 탕과 여자들을 위한 탕이 구분되어 두개의 탕이있다. 우리가 들어간 남탕는 대여섯명의 욕객이 있다. 땅에서 팔처럼 굵은 물줄기가 샘솟는다. 거기에 손을 댈수가 없을 정도다. 해질무렵에 양산에 도착. 거기서 10리를 더 가서 범실에 이르다. 짐꾼들은 우리보다 두시간이나 늦게 당도하다. 공소는 변마두회장의 집에 마련돼 있었다. 교우들의 집 6채는 같은 수만큼의 외교인들의 집에 에워싸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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