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하장을 받아 펴볼때엔 보낸이의 숨결을 느끼게 된다. 몇자 안되는 글이어도 스며있는 숨결을 넉넉히 감지할 수 있으니 글자는 정성껏 써야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엔 이것 한가지라도 차근히 실천해보고자 나 먼저 마음 먹어본다.
인쇄된 글자나 글만으로는 이런 숨결을 느낄 수가 없다. 육필 글씨가 없는 연하장도 더러 받는 터이라 그런 때엔 삭막함만 받게 되기도 한다.
그러니 육필 글자는 손끝으로 흘러내린 영혼의 자국이거나 아니면 마음의 몇조각인 듯도 싶어져, 글자는 정성스럽게 써야 하겠다는 다짐을 더 하게 된다.
인쇄된 글자만으로 된 연하장 가운데 어떤 것은 뜯어보기가 힘들도록 밀봉된 것도 있다. 애써 뜯어보고 나서 인쇄문뿐일 때엔 받지 아니한 것만 못한 아쉬움이 남게 된다.
연하장에 무슨 비밀스러운 것을 담았다고「완전히」붙여버리는지 알 수가 없은 일이다. 틈없이 붙여진 봉투를 뜯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행여, 안의 것이 상할세라 싶어 종이칼의 뾰족한 끝을 들이 밀어 뜯는다. 하지만 종이칼이 비집고 들어설 틈조차 안 남기고 붙인 것은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으면 완전히 뜯기가 어려워 짜증스럽기까지 된다.
안에 든 사연이나 또는 그 성의가 새어 흘러나갈까 염려되어서 꼭 붙이는 것인지 알 수 없어도, 받는 이를 조금만 생각한다면 한 귀둥이는 남길 필요가 있다.
종이칼이라는 편지 뜯기 칼을 쓰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 우리 실정이다. 가게에서 파는 것도 별로 못쓴다. 그만큼 편지 뜯기의 종이칼이 우리 나라에서는 생소한 편이며, 또 사무용 필수품도 되지 못하고 있다.
외국의 기념품점이나 선물가게에는 의례 있는 종이 칼이다. 그런데 아직 우리에게선 별로 쓰이지 아니하는 것을 보면, 그만큼서신을 주고받는 일이나 사무용 서류문서 왕래에 우리는 아직 익숙치 못한 것일까.
간혹 큰 단체나 외국상사의 창립기념일 때에 초청인사에게 주는 답례품이나 선물로 종이칼을 건네주는 경우가 있기는 하자. 종이칼의 용도를 잘 아는 이는 긴요하게 쓰겠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에겐 시들한 것일 수 밖에 없겠다.
아무리 개인적 사연을 넣은 봉함편지라 할지라도, 반드시 그 한쪽의 귀퉁이는 남겨놓고 붙여 보내는 것이 에티켓이다. 이런 저런 생활에티켓은 어려서 부터 가정에서 부모들로 부터 배워야 손에 익숙해지겠건만 이런 일을 가르치는 가정이 얼마나 되랴 싶다.
하찮은 일이어도 제대로 가정교육을 시키는 집안에서는 이런 것까지도 일러준다.
나는 밖에 나가있는 동안에 보았었다. 이런 것은 고사하고 편지를 쓰는 법조차 안 가르치고 있는 것이 우리 가정 교육의 실정이다.
정말 큰 문제인 것은 요즘 단출한 단위가정에서 보게되는 가정교육 부재의 공백현상이라고 지적치 않을 수 없다.
주일학교에서 성경만 가르치지말고 이런 생활에티켓도 가르칠 수는 없을까 혼자 궁리해보기도 한다. 아니, 정성들여 만들고 글자를 써서 보내는, 그런 새로운 성탄카드나 연하장쓰기를 가르쳤으면 싶다.
영혼이 없는 조각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으나 마음은 짚을 수가 없다. 남을 생각할 줄 아는 마음, 이것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준 가장 값진 보석이 아니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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