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사령관실로 갔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돌아와서 미사를 드리고 정베드로를 지이프에 태우고 출발했다. 우리가 막 떠나려 할 순간에 무어 중령이 민사부에서 나오고 있었는데 그는 함흥에서 기차를 마련하여 신자들을 철수시킨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러나 이 정도는 10군단의 군종원 신부가 그전에 이미 내게 알려준 것이다
우리가 제772헌병대로 갔더니 라이첸백처 중위는 내 저녁도 함께 준비하라고 요리사에게 이른 뒤 헌병대의 2.5t트럭과 운전병 그리고 기관총사수까지 딸려주었다.(그는 차 뒤편의 기관총을 쏘는 군인이다)그리고 김토마스를 딸려 보내어 오도 가도 못하는 신자들을 찾아서 데려오게 했다.
우리가 함흥으로 출발할 때는 사방이 완전히 깜깜해진 저녁8시였다. 베드로가 말한 그 다리근방에는 신자들의 흔적조차 없었다. 그러나 놀랄 일은 아니었으나 군인들의 야간통행금지 조치는 밤이 되면 민간인에게 효력을 발생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함흥역으로 갔더니 RTO사람들이 이렇게 보고했던 것이다. 『신자들을 불러 모으고 저녁 8시까지 대기하기로 하더니 마지막에는 밤10시에 모이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톨릭선교지역과 시내의 신자집 몇 곳을 둘러보았으나 아무도 만날 수 없었다. 사방은 깜깜했고 적막했다. 긴장된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대부분의 미군들은 우리들이 방금 승선 준비하는 곳으로부터 포구쪽으로 이미 철수했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역의 RTO. 에서 만난 미군은 그 헌병 단 한 명뿐인 셈이다. 그 헌병은 항구에서 올라오는 길과 그들이 오른쪽 방향에서 온 함흥 국도가 마주치는 길목에 켜놓은 가로등 밑에서 있었는데 이 가로등이 우리가 이 도시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불빛이었다. 이 가로등은 분명히 군인의창조물이었다.
우리가 시청건물에서 나와 시내를 막 벗어나려할 즈음에 라이첸백처 중위와 또 다른 헌병장교 그리고 한국인 헌병 김중위가 우리를 환호하며 맞이했다. 그들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낚아채듯이 잡아끌었다. 두려움이 역력했다. 중공군이 이미 시내의 북쪽 외곽에 포진했다는 것이다. 뭔가를 알아내려는 마지막 시도로 우리는 어느 프로테스탄트 교회 앞에 멈추고 수색했지만 사람이 숨어있는 기미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그때 갑자기 두 방의 총소리가 탕하고 났는데 우리는 앞으로 나 있는 길과 건너편 집사이의 어디에선가에서 일어서는 추적자들을 보았다.
등골이 오싹한 순간이었다. 우리가 멈춰서는 순간 모든 차량의 헤드라이트가 꺼졌다 그런데 맨 처음 방향을 돌린 지이프 한대가 우리들의 온 곳을 향해 내 달렸던 것이다. 문을 노크하며 낮은 소리로 조심스럽게 한국말로 물어보았다. 우리 옆에 있는 작고 허름한 집안에는 사람이 있는 듯한 인기척이 있었다. 그러나 분명하게 무슨 결판이 날 때까지는 어둠속에 숨어서 숨을 죽이고 있으려는 듯 여겨졌다.
만일 공산군이 점령하는 순간에는 그들이 적들과 타협하여 체포되는 이 최후의 시간이 결코 바보스럽지 않을 것인데…. 이리하여 우리는 이 시간까지 시내에 남아있는 한국인들 대다수는 공산당 지지자라는 것을 쉽게 결론내릴 수 있었다.
총성이 들리자마자 불꽃이 나온 방향의 길과 집들을 깜빡거리며 비추던 지이프의 라이트를 계속해서 비추었고 그동안 우리 일행 모두는 차량 뒤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러나 불안한 정적이 다시 엄습해왔다. 침묵 속에서 한참을 기다린 후 라이첸백처 중위는 철수개시를 명했다. 모두는 잽싸게 명에 따랐다. 모든 차량은 홍남 국도까지 빠져나올 동안 등화관제 라이트만 사용하면서….
나는 정베드로를 홍남 호텔로 데리고 갔다가 제772헌병대본부로 향하던 도중에 헌병 수송대 사무실 근처에서 잠시 멈추고 과열된 지이프 엔진에 물을 넣었다. 제772헌병대에서 나는 라이첸백처 중위 보스톤 출신의 딕난, 그리고 다른 2명의 장교들과 함께 커피도 마시고 담배도 한대 피웠다. 내가 군종 사무실로 가보니 모두들 마지막 짐을 꾸리고 있었다. 나도 짐을 꾸렸다. 우린 밤 12시에 이동할 태세를 갖춘 셈이다.
▲12월 16일 다른 명령은 하달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기거하던 일본식 집으로 돌아가 보니 2층 방의 벽 전체에는 빈대들 천지였다. 그리하여 나는 이걸 내 일기 속에 써넣고 쏟아지는 잠을 물리치며 성무일도를 본 뒤 새벽4시경에 잠시 눈을 붙였다.
그러나 밤새도록 쳐 내려온 공산군의 끊임없는 포대 공격지역에서 그리고 항구를 벗어난 전함 미주리호가 윙윙거리며 함포 사격하는 곳에서 나는 내가 정말로 잠을 잤는지 안 잣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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